Layoff를 이야기하다 [10]
우리 사업부서를 인수하는 회사는 유명하지 않은 중견 소프트웨어 기업이었는데, 성숙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사들여, 비용효율화를 추구하고, 투자보다는 매출을 뽑아내는 형태의 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매각 발표 이후, 회사의 우선순위가 성장이 아닌 비용효율성이라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예산 삭감이 시작되었다. 지속적으로 마케팅 조직 내 내가 지원을 얻어야 하는 업무를 하던 사람들이 잘려나갔고, 그 업무를 나는 더 떠안게 되었다. 리더십에서는 내년도 신규 상품 출시 등으로 우리는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라며 직원들을 안심시키려 하였지만,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engineering예산이 삭감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말에 의구심을 품게 하였다.
내가 맡고 있는 신규 제품출시도 문제가 많았다. 엔지니어링 핵심 인력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경쟁업체로 옮겨간 상황이었고, 제품 런치를 몇 달 앞두고, 실제 개발이 완성된 기능은 원래 계획에 들어가 있던 내용에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미리 만들어둔 마케팅 자료에서 계속 기능들을 지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V0의 소프트웨어 프로덕트라는 것이 원래 모든 기능을 가지기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나, 이토록 기능이 줄어든 상태에서 내가 맡고 있는 제품의 가치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제품 출시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오자 일은 정말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는 도움을 청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혼자 일을 맡아 안고 헉헉대었다. 아이를 재워놓고 다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항상 피곤했다. 그런 상태로 다음날, 미팅에 들어가면 PM들의 무리한 요구에 화가 났고, 엔지니어링팀의 무능력함에 짜증이 났다. 제품은 엉망이어도, 리더십과 세일즈에서는 뭐라도 반짝이는 포장을 해내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내 제품에 자부심이 생기지 않았고, 마케팅 매니저로서 나의 역할에 회의감을 느꼈다. PM은 우리 제품에서 직접 사용할 수 없는 machine learning기능을 강조하라고 요구했고, 내가 거부하자 마치 내가 기술적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매출과 성과에 목마른 이들은 진실보다는 부족함을 포장하기에 급급해 보였고, 나는 그들을 설득해내지도 못하면서도, 동의는 할 수 없었고,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갔다. 지속되는 의견충돌에 나는 조직 내에서 아군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외부적으로 안 좋은 상황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업무능력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보고 방어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당시 미국 회사생활 경험이 부족했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나에게 던져진 일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빨리 알리고 조직 전체의 문제로 만들어내는 법을 몰랐었다. 사실 제품의 기능부족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하려 나선다고 될 문제가 아닌 조직의 문제였다. 그것을 마케팅에서 잘 감추고 포장하라고 남들이 요구했을 때, 직접적으로 이를 문제제기하고 리더십들에게 escalation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부당한 요구에 대해 불만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나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내가 초반에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문제는 나의 문제가 되어버렸고, 내가 해결법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 조직의 실패가 아닌 나의 실패로 인식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무식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의 책임을 떠않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는데, 그 당시 어떻게 이에 대응하는지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상황이 안 좋게 되어서일까, 사람들은 협업하기보다는 자기 방어에 바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행동 또한 매우 거칠었다. 컨퍼런스 콜을 하다가, 음소거를 하고, 통화 상대방에 대해 비웃는 농담을 하기도 했고, 피드백을 상대에게 직접 나누기보다는 뒤에서 매니저에게 고자질을 했다.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공격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협감을 느끼게했다.
나도 좋은 동료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남들을 공격하거나 부당하게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회사에 가져오는데 실패했었다. 너무 많은 업무량으로 번아웃에 시달려서, 나는 항상 날카로운 상태였고, 타 부서들의 실수나 부족함에 passive aggressive 한 자세로 대했었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겨우 이것밖에 못하니라는 삐딱한 마음 말이다. 다른 부서의 의견과 제안에 불만은 많으면서도, 이를 명확히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할 문제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했고, 결국 문제들은 내 앞에 쌓여만 갔다. 타 부서와의 협업이 끊임없이 틀어지기만 하는 상황에 나는 점차 당혹감을 느꼈고, 어떻게 헤쳐 나와야 하는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나는 자신감을 잃어갔다.
업무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만 갔고. 매일 아침 출근하면 실패를 맞닥뜨려야 했다. 나아질 기미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아 우울했다. 회사에 가면 모두가 적으로 느껴졌고, 외롭고 불안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될수록,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그때 경험으로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선택을 밀어붙일 용기도 없으면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 남들의 선택을 따라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는 결정장애에 빠져 허우적 대었다. 그리고 나의 매니저와 동료들은 그런 나를 감싸 안아줄 여유가 없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회사와 함께, 나도 같이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