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말자

미국 직장인 일기

by Laugh and Meditate

이번 주에 therapist와 두 번째 미팅을 했다. 2월말 상사와의 performance review후에 맘이 상하고, 마침 몸도 안좋았던 상황과 겹쳐서, 불안감을 많이 느꼈고, 이 참에 therapy를 받아야겠다 싶어 첫 약속을 잡고 이어진 두 번째 미팅이다. (미국회사 의료보험에는 이런 therapist상담이 일 년에 몇 회정도 무료로 포함된 경우가 많다. 정신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은 상황이라도 이용해볼만하다.)


다행히 첫번째 미팅때보다 체력이 회복되었고, 친한 이들과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처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불안감도 거의 사라진 상황. 이번 미팅에서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회사 매니저들에 대해 조금 깊게 들어가보기로 했다. 솔직히 그닦 좋은 경험은 없었다. 특히 최근에 만난 두 명의 매니저 모두 비슷한 패턴이었다.


일이 잘 진행되고 있을때는 별 말이없다. 뭐를 더 잘 하면 좋을지 알려주면 좋을 것같은데, 피드백이 없다. 속으로는 "내가 많이 부족할텐데 왜 말이 없지?"란 생각이 들어 볼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뭔가 예상치못한 일이 발생하고,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때, 갑자기 매우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내게 실망감을 표현하고, "왜 이것밖에 못했냐는"는 투로 나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런 상황에 나는 쉽게 패닉한다. 일주일전의 칭찬받던 나도, 지금의 비난받는 나도 같은 사람인데 도대체 뭐가 달라진 것인가? 본인이 무엇에 우선 순위를 둘지 얘기해주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판단해서 진행했는데, 그것이 잘 맞았을때는 아무말이 없다가, 그것이 틀리게되면 비난을 받는다. 뭐를 바꿔야하는 것인지 나는 혼란스럽다. 늦은 밤에도, 주말에도 열심히 일하며 수많은 일들을 문제없이 처리해왔는데, 한가지 일이 틀어졌다고 비난하는 나의 상사에게 큰 배반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내가 constructive feedback을 잘 못받아들이는 방어적인 사람인 것같아, 내가 개선할 점을 되돌아본다. "그래, 앞으로는 그에게 업데이트를 더 자주 해줘야지, 앞으로는 불분명한 부분은 내가 더 적극적으로 먼저 물어봐야지"라며 가혹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매니저는 또 모든 일이 잘 진행되는 듯 개인면담에서 크게 문제를 삼지도 않고, 나에게 개선이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나는 매니저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내가 완벽하지 않으니, 분명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부분에 책임은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팀장으로서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할지 방향성을 주기보다는, 나를 비난하는 쪽에 서는 매니저에 대해서 나는 실망한다. 아니 결국엔 다시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다. "내가 매니저에게 신뢰있는 모습을 보이고, 좋은관계를 만들지 못해서, 힘겨운 상황일때 보호받지 못하는구나."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내 맘속의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향하고, 이는 아프게 내 맘을 파고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therapist와 대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나의 매니저들은 transactional한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줄 때는 만족스러워하다가, 내가 그렇지 못할때는 바로 나에게 책임을 떠넘겨버리죠. 좋은 매니저라면 내가 업무를 만족스럽게 하고 있을 때, 더 잘할 수 있도록 나를 challenge했어야하고,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을때는 어떻게 함께 이를 해결해나갈지 고민하는 coach의 역할을 했었을텐데, 제가 만난 매니저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지난 10년간 나는 매니저와 관계에 대한 문제의 원인을 신뢰부족으로 많이 생각해왔었는데, 이 문장을 밖으로 내뱉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팀원에게 지금 당장의 성과를 원하는 전형적인 미국인 상사들이었다, 나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법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고, 어떻게 하면 나와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나에 대해 더 알려고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전가해버림으로써 그들은 조직간의 misalignement나 process상의 허점을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일반적으로 함께 일하는 기간이 짧은 미국에서는 전형적인 매니저 유형임에도 내가 이 부분을 놓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첫째로, 나는 상사들에게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업무에 대한 기대보다는, 개인적인 관계면에서 말이다. 나 스스로 회사안에서 나를 많이 내보이고, 관계를 깊게가져가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나의 상사들도 나처럼 그것을 원하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관점이 내 시야를 흐리게했다.


두번째로, 내 매니저들이 업무지식이 뛰어난 사람들이다보니, 후광효과가 있었다. 일을 잘하니, 매니저로서 사람관리도 잘 하겠지라고. 하지만 이 두가지는 완전히 다른 스킬이기도 하고, 사실 두번째를 잘하는 매니저들은 매우 드물다. 나의 높은 기대가 오히려 그들에 대한 나의 실망감을 높였고, 나 또한 그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때마다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그들의 피드백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내 자신에게 있었다. 내가 겪어온 매니저들도 그저 자기 앞가림하느라 정신없는 직장인의 하나이고, 내가 그들의 "미성숙" 한 시기에 만난 것 뿐이었음으로 바라보고 나니 그들에 대한 분노나 실망감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상대방이 다가올 생각을 하지않는데,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될 상황이 아니었구나라고 깨달으니, 나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던 자책감의 무게도 덜어진다. 회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업무성과평가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을 깨닫게된다. 평가시스템은 매일 매일 일어나는 업무의 다양한 변화와 개개인이 가진 독창성을 다 담아내기 어렵고, 때로운 운에 따라서, 때로는 주변 환경에 따라서 나의 업무평가는 많이 좌우된다. 그래서, 언젠가 김은주님께서 "평가를 잘 받았다고 우쭐할 필요도, 못받았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는 글을 올리셨을때 크게 공감이 되었다.


나라는 한사람의 깊이와 가능성과 다양함을 평가시스템이 담아내는 것은 한계갸 있다. 특히나, 평가자가 나란 사람을 이해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쏟고 있지 않을때, 그 사람이 주는 피드백은 매우 단편적이고, 편협할 수 있다.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큰 무게를 둘 필요도 없다. 아무리 높은 권위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하여도, 나에 대한 애정으로 주는 피드백이 아니라면 적당히 흘려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 때문에 나를 불필요하게 바꾸지 않도록 않도록 내 중심을 더 잡아야할 것이다.


이번 고과면담때 받은 부정적인 피드백때문에, 이렇게 긴 한풀이의 글을 쓰게 되다니. 결국 정신승리만이 회사생활을 버텨나가는 힘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이민자로서 자꾸 위축되는 미국 회사생활에서라면 더욱 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두 번째 실직, 나를 위로한 인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