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실직, 나를 위로한 인연들

Layoff를 이야기하다 [14]

by Laugh and Meditate

회사밖으로 쫓겨나듯이 나왔지만, 더 이상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고통스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한편 위로가 되었다. 마침, 남편도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고, 한 달 전에 일자리를 잡은 상황이었고, 영주권은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상황이라, 첫 번째 레이오프에 비해서는 실직으로 인한 변화를 좀 더 감당하기 용이한 상황이었다.


회사를 나와보면, 내가 가졌던 동료들과의 관계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매일 웃으며 인사하고, 얼굴 보던 사이였어도, 퇴사 후 연락 한번 안 오는 경우도 꽤 있었다. 외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외면받는다는 느낌에 그 당시에는 꽤나 실망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나도 떠나간 몇몇 동료들에게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고민하다 연락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막상 회사라는 연결고리가 끊기고 나니 사실 우리 사이에 별로 나눌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경우들도 있었다. 어차피 모든 인연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 하나의 여정이 끝났다면, 거기서 쌓았던 인연들도 많은 부분 정리되는 것이 맞는 이치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그리 가깝지 않았음에도 내게 먼저 다가오거나, 도움을 주려한 이들도 있었다. 말로 하는 위로나 격려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거나, 기회를 알아봐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더 고맙게 다가왔다.


내가 맡았던 제품의 Engineering VP와는 업무 외에 크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사이였는데, 나와 별도로 시간을 잡고, 신제품 출시를 위해서 큰 기여를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동안 이 업무로 많은 비난만 받아왔던 나에게는 너무도 따뜻한 인사였다.) 그리고 마케팅 쪽 커리어를 쌓아온 자신의 친구에게 조언을 받으라며, 소개를 시켜주었다.


이전에 가깝게 일했던 Product manager도, 내가 연락하자마자 바로 자신이 일하는 스타트업의 part-time marketing role자리를 제안해 주었는데, H-1B상황에서는 full-time이 아닌 업무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너라면 당장이라도 같이 일하고 싶어라는 그의 제스처가 고맙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나쁜 동료는 아니었었구나라는 위로도 되었다.


전략업무를 맡고 있던 옆 팀의 팀장은 Korean American이었는데, 사실 그녀를 찾아가서 한 번쯤 조언을 받아봐야지라고 생각만 하고,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아서 개인적인 대회를 못 나누었던 사이였다. 그녀도 먼저 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친구가 hiring manager인 position에 나를 소개해주었다. 그쪽에서 나를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아서, 취업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그녀와 몇 번 커피챗을 하며 조언을 얻을 수 있었고, 우울함과 자신감 부족으로 허우적대고 있던 나에게 "네가 맘먹으면 할 수 있으니, 기죽지 말고, 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투의 똑 부러진 왕언니스타일 조언으로 나를 정신 차리게 도와주었다. 사실 무슨 이유로 나를 도와줄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녀는 내가 개인적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문제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것을 거침없이 나에게 알려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따뜻하거나, 무조건적인 위로가 아닌, 실직적인 조언을 건네었고. 지금 생각해도 몇몇 안 되는 인생에 고마웠던 사람 중 하나이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였었기 때문이기보다는, 그들이 그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기에 도움을 주려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은 그들도 나처럼 한 번쯤은 힘든 시절을 겪어보았기에 내게 연민을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을 레이오프를 겪은 후에, 나 또한 주변에서 누군가 회사를 떠나 힘들거나, 구직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겪고 있으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고 느끼니까. 힘겨운 상황에 누군가 내민 작은 친절의 손길이 얼마가 값진 것인지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몇몇 동료들이 일자리를 알아봐 주었고, 이렇게 퇴사 후 두 달 정도는 이전 동료들을 만나거나, 그들이 소개해준 자리에 인터뷰를 보며 바쁘게 시간이 지나갔다. 한 번은 소개를 받자마자 나와 너무 잘 맞는 역할이 있다며 HR과 바로 미팅으로 연결된 경우도 있었는데, 잘 진행되다가 H1-B비자 스폰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회사에서 알고 난 후, 바로 거절해 버렸다.


그렇게 소개를 통해 연결된 자리들은 모두 물 건너가버렸다. 영주권이 있었다면, 가볍게 일할 수 있는 기회들도 몇몇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할 수가 없었고. 이제 다시 입사원서를 넣으면 구직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매니저의 냉대와 동료들과의 갈등, 신뢰할 수 없는 리더십에 대한 실망감들이 엉켜져 회사생활에 대한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회사에 돌아가도 또 비슷한 일을 겪을 것만 같다는 두려움에 입사지원이 망설여졌다.


'잠시 쉬자'라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상처가 나버린 내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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