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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근 Sep 29. 2024

학습된 분노

목적의식 없는 분노

 분노는 일상에서 피하고 싶지만, 오히려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감정 중 하나이다. 하지만 피하고 싶다고 해서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분노는 단순히 끝나는 감정이 아니며, 때로는 복수와 같은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노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분노를 유발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심에는 자기 중심성과 개인의 경계를 침범당했다는 인식이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사람들이 대화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나’ 일 정도로,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해석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은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설정한다.


 이러한 경계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신체적 경계뿐만 아니라 정신적 경계도 있으며, 인간관계, 신념, 가치관 등 수많은 요소들이 이 경계를 형성한다. 개인의 고유한 경계를 침범당할 때, 그 자신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람은 즉각적으로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분노이다.




 앞서 분노와 경계에 대한 설명을 보면, 경계는 각자가 스스로 설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 고유의 영역이니, 당연히 타인이 대신 정해줄 수 없다는 논리도 합당하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허점이 있다. 인간관계, 신념, 가치관 같은 것들은 사실 스스로만의 힘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세우지만, 역설적으로 그 경계조차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타인이 형성해 준 경우가 많다.


 여기서 '타인으로부터 형성된 경계'라는 말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적응한다. 타인으로부터 형성된 경계란 타인을 보고 스스로가 형성한 것이기도 하고,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학습과 적응의 과정이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왔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고, 시스템적인 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어, 현대 사회에서 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커뮤니티는 정보 공유의 장을 넘어,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의 감정을 교류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은 주제도 다양하고 형식도 다채롭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글은 주로 원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이다. 특히 웃음, 슬픔, 그리고 분노 같은 본능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글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사람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 글에 열광하고, 슬픔을 담은 사연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분노를 자아내는 이슈나 논란에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히 개인적인 반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키며 글의 인기를 더욱 키우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분노를 유발하는 글은 강한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히 그 글의 내용에 분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논쟁으로 이어지기까지 하며 크게 나아가서는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분노라는 감정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반적인 감정 중 하나이기에 분노를 유발하는 글에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분노가 아닌 분노를 학습한다는 점에 있다.




 특정 게시물의 여론은 첫 반응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누가 가장 먼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에 따라 게시물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다. 이를 "초두 효과" 또는 "첫인상 효과"라고 한다. 그러나 게시물이 중립적인 성향이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다면, 그 첫인상 효과를 제어하는 힘이 작성자에게 어느 정도 넘어가게 된다.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하더라도, 작성자는 여론의 흐름을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특히, 분노를 유발하는 글은 이 제어권을 완전히 장악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커뮤니티에서 분노를 유발하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올 경우, 그 글들을 접하는 사람들은 점점 분노를 학습하게 된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시시비비를 명확히 따지지 않고 단순히 분노를 자극하는 내용을 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결국, 이러한 글을 접할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와 같이 자동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반응이 형성된다.


 이렇게 분노를 학습한 사람들은 커뮤니티가 가르쳐준 대로 분노할 뿐이다. 자신이 어떤 대상에 화가 났는지, 왜 그 대상에 화가 났는지, 내가 그 대상과 어떤 관계이고 왜 그 대상에 화를 내야만 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커뮤니티가 지시한 대로 화를 내게 된다. 결국 이 사람들은 자신의 경계가 침범당하지 않았음에도 커뮤니티가 시켰으니 화를 내고 있게 된다.




 때로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커뮤니티 글을 보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내가 화를 내는 대상이 명백히 잘못을 저질렀고, 나는 그 잘못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자신의 신념적 경계를 침범했기 때문에 정당한 분노를 느낀다고 여긴다. 하지만 학습된 분노를 하는 사람들은 분노의 근원이 명확하더라도 과도한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 그들은 어떤 분노 자극제가 들어오든 일정한 강도로 분노를 표출하도록 학습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들 이 정도로 분노하고 있네? 내가 이 정도로 분노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야. 정말로 화가 났다면 그에 상응하는 표현을 해야 해'라는 접근으로 아주 약간의 잘못, 아주 약간의 불평 글에는 분노의 살이 붙기 시작하며 어느 순간 거대한 분노가 되어 돌아다니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작은 불만이나 사소한 잘못이 과장되고 부풀려져, 원래 의도보다 훨씬 큰 분노로 변질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람들은 주변의 반응에 동조하며 점점 더 강한 분노를 표현하게 되고, 그 분노는 커뮤니티 내에서 확산되면서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로 커지게 된다. 이는 감정의 과열을 부추기고, 문제의 본질이 왜곡된 채 여론이 형성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학습된 분노라는 현상은 결국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개인적인 사고와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거짓 정보에 대응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더라도 그곳에서 유도하는 분노에 무작정 동조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사고방식과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왜 이 글을 보고 분노했는가?', '내가 분노한 대상은 누구인가?', '왜 이 대상을 보고 분노하는가?', '이 분노로 인해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커뮤니티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감정적 과열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결국, 인터넷 공간에서의 성숙한 태도란 무분별한 감정적 반응이 아닌, 자기 주도적이고 명확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는 건강한 온라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나아가 사회적 공론장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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