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채식주의자 | 정상으로 돌려놓는 마음에 대하여

한강 - 『채식주의자』가 남긴 질문—이해인가, 조정인가

by 노하

한 사람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마음에 대하여


어느 날, 저녁 식탁이 달라진다.

상춧잎과 된장, 쇠고기도 조갯살도 넣지 않은 미역국과 김치.

‘오늘은 이렇게 먹고 싶어’ 같은 설명이 아니라, 그저 단호한 선언처럼.


소설 『채식주의자』 속 사건은 분명 채식에서 시작되지만,

책이 끝까지 보여주는 것은 사실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의 선택이 취향이 아니라 탈출이 되는 순간, 주변의 세계가 어떤 얼굴로 변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줄거리] 주인공의 목소리만 비워둔 채로


소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의 변화를 주인공의 목소리로 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백을 끝까지 유지한 채, 주변 인물들의 시선만으로 이야기를 밀고 간다.


1부는 남편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가 바라보는 주인공은 '특별한 매력도, 특별한 결함도 없는' 사람이다.

말이 적고 요구하지 않으며,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일상에 잘 맞춰지는 사람.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익숙한 균형이 깨진다.

남편의 문장 속에서 주인공의 변화는 이해해야 할 신호라기보다, 관리하고 수습해야 할 문제처럼 다뤄진다.

무엇보다 그가 불편해하는 건 아내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가 자기 생활에 가져오는 균열이다.


2부는 형부의 시선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주인공은 더 이상 가족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재구성된다.

서술은 더 예술적이고 치밀해지지만, 그 정교함은 오히려 폭력을 가린다.


이 장에서 주인공의 몸은 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욕망과 상상을 투사하는 캔버스가 된다.

그리고 그 욕망은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설득'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3부는 언니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이제 이야기는 책임과 현실을 전면에 내놓는다.

언니는 주인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다.


동시에 그 현실은 쉽게 깨닫게 한다.

걱정과 책임감은 분명 진심일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어느 순간 형식적인 의무가 되거나, 혹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만 유지되는 돌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흥미로운 건, 세 사람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남편은 자신의 '평범함'의 기준으로,

형부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수단으로,

언니는 걱정과 책임 의식이라는 명목으로.


각각의 이유는 달라 보이는데, 결과는 비슷하게 수렴한다.

주인공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

혹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불편하지 않게 정리되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이 소설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거창한 악의에서만 시작되는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는 생각들과 행동들 속에서도 자라나는가.


제자리로 돌아오라는 말


가족 안에서의 자리, 관계 안에서의 자리, 사회가 기대하는 자리.

우리는 저마다의 역할에 맞는 자리를 배정받고,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가 나를 지켜주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규정하는 틀이 되는 때가 온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의 저자 클레르 마랭은 '자리를 바꾸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리를 옮긴다는 건 단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나를 정의해 온 자리와 결별하는 일이기도 해서 그 과정에는 떼어냄이 다르고, 때로는 폭력에 가까운 감정이 뒤따른다.

스스로 선택했든, 강요에 의해 밀려났든 말이다.


『채식주의자』속 변화도 그렇게 읽혔다.

'채식'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변화였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의 중심을 자기 쪽으로 조금 옮기는 순간, 주변은 그 움직임을 이상함으로, 문제로, 심지어 배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자리를 옮기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자리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 흔들림이 두려울 때 우리는 상대를 붙잡아 돌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종종 상대의 삶을 되돌리기보다, 내가 익숙한 질서를 복구하려는 요구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소설을 채식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리를 벗어나려는 사람과, 그를 제자리에 붙잡아두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게 됐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악인인가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다.

이 소설이 불편한 이유는, 악인을 쉽게 지목하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질문을 남긴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을 '정상'이라는 자리에 맞추려 한 적은 없었나?

나는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선택을 '고쳐야 할 것'으로 만들어버린 적은 없었나?


『채식주의자』을 읽고


『채식주의자』는 읽는 동안 마음을 편하게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그런데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 생각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믿어온 말과 규칙들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그 무게가 결국 한 사람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나는 이 책이 질문 하나를 또렷하게 남긴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정말 이해하려 하고 있는가.

혹은 걱정과 사랑이라는 말로, 그 사람을 내가 아는 자리로 되돌려놓으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