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교향음악 박물관
목요일 오후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와 함께 VIP 그룹으로 있는 Professor Lee 퓨전 한국식당 위챗 그룹안에 아내가 위챗 그룹 매니저에게 한마디를 한다.
토요일 4명 예약할께요.
아내가 집에 오자 물었다.
"왜 4명이야? 우리 3명에 나머지 한명은 누구야?"
"넌 없어. 내 친구랑 내 친구 아들이랑 그렇게 4명이 갈꺼야"
이런 ~~ 또 버림 받은 것이다.
아무런 사전 통지도 없이 말이다.
토요일은 가정의 날이라고 내가 외부 약속을 잡으면 엄청 욕하면서 자기는 아무 사전 고지 없이 나를 버리고 약속을 잡은 것이다.
물론 나도 토요일 저녁 부랴부랴 지인들과 저녁 약속을 잡고 재미있게 놀긴 했다.
하여간 그리고 점심때는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 가게를 간다고 했다.
그것까지 놓칠수는 없었다. 딸아이 학원에 갔다 가니 난 30분 먼저 가서 줄을 선다고 말했다.
미리 줄을 서고 아내가 올때 맞춰서 햄버거와 고구마 튀김이 나오도록 안배를 해 놓았다.
아내와 딸아이가 도착하자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햄버거를 다 먹고 나니
아내 왈,
"이제 됐어. 넌 집에 가!"
저녁 약속이고 오후는 너나 나나 시간이 되니 같이 돌아가니자고 하니 박물관을 간단다.
내가 박물관을 싫어하는걸 아는 아내 그럼 할일 없으니 박물관까지 산책겸 데려다 준다고 했다.
그리고 도착한 박물관
물으니 상하이 교향음악 박물관이라한다.
어라 ~ 박물관은 박물관인데 가정집처럼 생겼다. 슬쩍 안을 쳐다보니 가정집이 이뻐 보여 구경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들어간다고 했더니 친구랑 친구 아들이 온다고 하고, 특히 여기는 3~4일 전에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하루 80명만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름 작전을 쓰고 경비원에게 사정사정을 하고 들어갔다. 나만의 비법으로. 들어올 수 없는데 들어온 나를 보고 신기해 하는 아내 ~
하여간 덕분에 나도 함께 집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도 보아하니 뭔 음악에 관심있는게 아니라 집 구경을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집에 얽힌 스토리가 있다. 그걸 이야기 해주는데 다 못알아 듣겠다.
바이두를 찾아보라고 해서 찾아보고 아래 정리해 둔다.
박물관 이야기가 아니라 이 집에 읽힌 이야기다.
박물관에 관심 있으신 분은 이 포스팅 맨 아래 상하이 저널에서 학생기자가 정리한 내용을 보시구요.
아래는 그 햄버거 가게 주방이다.
엄청 바쁘다. 저 맨 뒤에서는 생고기를 잘라서 패티를 만들고있다.
냉동이 아니라 생고기라 맛있었구나 ~ 싶었다. 하긴 요새 햄버거 맛난곳이 많긴 하다.
의외로 줄이 없어 심심해서 감자튀김과 음료를 시켜 미리 혼자 먹고 있는 나.
아래는 햄버거 앞 도로
찻길에서 맛나게 햄버거를 먹고 있는 우리들...
이상하게 여기서는 괜찮더라 ~ 다들 그러니 말이다.
요놈이다. 지난번에도 맛나게 먹었는데 생고기를 보고 먹으니 패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겠더라.
오후 시내 돌아다니다 들어간 MANNER Coffee 집.
크런치 과자안에 있는 커피, 재밌어 보여서 주문해 보았다.
라떼 다 마시고, 바깥의 과자도 다 먹었다. 막 점심을 먹고 마시니 배는 부르더라 ~
아래 도착한 그 박물관.
정식 명칭은 상하이 교악음악 박물관이다.
10년간 가정집을 개조했다고 한다. 한국에선 1년이면 되었을텐데 뭔 10년이나 걸렸는지... 하여간 그렇다.
주소는 宝庆路 3号 다.
내부 가정집 전경을 사진으로 놓아두며 이 집에 읽힌 이야기 시작합니다.
사실 난 박물관은 취미가 없고 이런 가정집 구경하는 거랑 이야기 듣는 것 좋아한다.
100여년전
당시 상하이탄에는 네 명의 유명한 '안료 왕'이 있었는데, 그들이 살던 저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금의 왕홍처럼 유명하다고 합니다.
4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패윤생: 이름난 '사자숲'
추씨 형제(추신산, 추위경) : 지금은 흥업태고회 옆에 있는 '찰공관'입니다.
오동문: 우닥이 설계한 '푸른 집'(장인 패윤생이 딸에게 준 혼수)
주종량: 보경로 3번지, 제1의 자가화원으로 불리던 것이 지금은 교향음악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야기 하려고 하는건 4명중 마지막에 언급한 주종량이라는 사람이 살던 보경로(宝庆路) 3호집에 대한 이야기구요. 지금 상하이 교향 음악 박물관이 되었구요.
이 글을 쓴 사람도 저와 같습니다.
우아한 교향곡에 대해 잘 모르고 오래된 양옥집과 뒷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하네요.
1930년,
저우종량은 독일인으로부터 거액을 들여 지금 보고 계시는 저택을 사들여 자신과 네 부인의 주거를 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2채의 집을 5채로 증축 했구요.
네부인과 함께 살았군요 ~~ 감히 부럽다고 할수는 없을듯 합니다. 전 한명도 벅찬 사람이라 ~~
자녀들도 당연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네 딸 중 하나인 주운친(周韵琴)은 어릴 적부터 서양 교육을 받아 매우 어린아이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중국 전통학문은 그녀의 단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정교사를 불러왔고 이름은 쉬싱예(徐兴业)였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모와 부유함을 지닌 주운친은 이 평범한 가정교사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를 무시하고, 주운친은 망설임 없이 럭셔리 주택을 떠나, 쉬싱예와 함께 자신만의 사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그들은 두 남자 아이와 한 여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두 사람의 결혼식을 가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었구요.
1948년,
주종량은 네 번째 아내와 맏아들과 함께 홍콩에 정착했으며, 다른 자녀들과 가족들도 차례로 해외로 떠났습니다. 떠날 때, 그는 아름다운 집을 딸 주운친 가족에게 남겼습니다. 1957년, 주종량은 홍콩에서 별세하였고, 주운친은 홀로 홍콩으로 돌아갔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파리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두 아들과 함께 집에 남아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다가 별세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둘째 아들인 쉰 원장은 아버지의 사랑의 유전자를 계승하여 그림을 배우는 아름다운 여자 학생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여자 학생은 결국 집을 떠나 3번 보영로(지금 교향음악박물관)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쉬싱예가 별세한 후, 여자 학생은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쉰 원장(주종량의 네째딸의 둘째 아들)은 홀로 집에서 50년 이상을 보냈으며,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하면서 "상하이 올드 클럽" 댄스 파티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이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은 명문가의 후손들로, 이 장소는 옛 상하이의 상류층 인간들의 만남 장소가 되어 한때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2002년에 주종량의 후손들 몇몇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보영로 3번의 합법적인 상속권을 주장하며 제기했는데, 주운친(주종량의 네째딸)이 사망하지 않아 행방불명인 상태였기 때문에 그 둘의 형제가 대리상속할 수 없었습니다... 이 결과로 그들은 문턱 밖으로 내쫓겼습니다. 법원은 보영로 3번의 재산권을 7,300만 위안(한화 약 130억)으로 상하이 부동산 그룹(공기업)에 판매했으며, 유언에 따라 상속인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계속 집구경하는 사진을 놓아 봅니다.
나가는 길
난 집구경 다했으니 밖으로... 아내와 딸아이, 아내 친구와 그 아들은 조금더 구경한다고 한다.
예약은 3~4일전에 할 수 있다. 빨리 마감되니 오전 9시에 미리 해 놓아야 한다.
지인과 저녁 먹으러...
우캉루에 있는 외국인에게 유명한 사천식당이다.
아래는 저녁때 누군가 찍은 사진 가져왔다. 2층에 있다.
아래 왼쪽에는 사천요리집이라는 것, 오른쪽 녹색으로는 바질 BAR 라고 되어 있다.
더워서 우린 안에서 먹었는데 봄, 가을에는 2층 밖에서 먹어도 좋을듯 하다.
늦은 오후였는데도 창가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각 바질 하나씩.
함께 간 분은 맛있다며 한잔을 더 주문했다.
이런 음식사진 찍는걸 잊었네요 ~~
나중에 부모님이나 동생네 가족 출장오는 지인들중 사천요리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함께 또 가고 싶은 곳입니다.
주소라도 남겨봅니다.
武康路 378号2楼 입니다. 사천요리는 여기 하나밖에 없으니 찾기는 쉬울테구요. 3거리에 있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