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해결할 문제를 찾는 게 문제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단상

by 노창범

B급아빠는 오랜만에 대학 친구, ‘동자’를 만났다.


둘의 집에서 가까운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만나 오미크론을 피해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골목길, 처음 가보는 꼼장어집에서 마주 앉았다. 둘 다 자녀 있는 가장이라 저녁 자리를 최대한 피하다 보니 두세 달 만이었다.


동자 : "요새 어떻게 지내?"

동자가 물었다.


B급아빠 : "연말연초는 정부지원사업 시즌이라 사업계획서 열나게 쓰고 있지."


"작년에 쓴 건 어떻게 됐는데?"


"… 안 됐어."


"에이젼시 다닐 땐 대기업 비딩 들어가서 곧잘 따오지 않았어? 정부지원사업은 다른가 보네?


(뜨끔!)



B급아빠의 두 번째 직장은 디지털 에이젼시였고 그곳에서 8년을 근무했다. 일을 수주해 오는 별도의 전략팀이나 영업팀은 없었다. 프로젝트의 제안, 구축, 운영 다 팀에서 자급자족해야 했다. 그때 팀원이 9명, 지금은 전 직원이 7명이니 회사보다 큰 팀이었다.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받아 제안서 제출과 PT를 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면 수주하게 된다. 다행히 업력이 오래됐고 긍정적으로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회사라 초대장(RFP)은 끊이지 않았다.


프리젠.jpg 빔프로젝터, 빛이 들어오면 PT '쇼'는 시작된다


B급아빠에게 가장 어려운 건 PT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표 실패에 대한 기억을 촘촘히 쌓아 어느덧 트라우마가 되어버렸고, 대학시절에는 요리조리 피해, 라기보단 "문서작성은 내가 다 할 테니 발표만 시키지 말아 줘!"라며 졸업할 때까지 '발표 0회'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첫 직장은 잡지사였고 발표 같은 건 없었다. 1대 1의 인터뷰는 자주 했는데 대학 시절에도 미팅에 나가면 항상 꽝으로 일관했지만 1대 1의 소개팅은 나름 자신이 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자체 디지털라이제이션을 위해 웹에이젼시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입사 다음 해에 팀장을 맡아 새로운 팀을 꾸리게 되었고 제안을 하지 않으면 팀의 밥줄이 끊기는 자급자족의 삶이 시작됐다.


사내에서 대표님과 간부사원들 앞에서 진행한 현안 발표가 첫 발표의 경험이었는데 그는 현기증을 일으켜 10여 분 간 중단되기도 했다. 처음 대기업 간부들 앞에서 PT를 했을 때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발표가 끝나고 친절한 그 회사 마케팅부장은 한 마디를 했다.


"인상은 참 좋으시네~"


그 뒤로도 두어 번 발표를 회피했으나 벌써 여러 명이 된 팀원들, 즉 부양가족들을 보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깨닫고 자체 각성을 했다. 여전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제안서 각 장표의 타이틀을 구어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적어 하얀 침묵의 시간을 방지했으며 그냥 숙명이려니 하고 부딪히고 또 부딪혀 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사업부에서 최다 PT 진행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사실 여전히 두렵지만 '피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때와는 뭐가 다른 거 같아?"


동자가 소주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꼼장어나 나왔다. 산꼼장어라더니 꼼장어들은 한동안 불판 위에서 필사적인 춤을 췄다.


"에이전시에서의 제안은 프리스타일이랄까? 이 꼼장어들 같은 느낌이야. 파닥파닥, 좀 더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꼼장어들은 금세 움직임을 멈췄다. 동자는 꼼장어들이 겹치지 않도록 정렬을 시켰다.

B급아빠는 그 줄 세워진 꼼장어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해결하려는 문제의 스케일이 다르달까?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의 차이지."


"에이전시에서의 제안은 기업의 '우리 이런 문제가 있으니 해결해줄 회사 손?' 같은 요청에 응하는 건데 정부지원사업은 범위가 큰 조건들을 걸어놓고 스타트업들에 공지를 하는 거지. 작성하는 사업계획서의 맥락은 예를 들어 이런 거야."


"이런~ 아직도 이런 문제가 존재했다니요. 이 데이터들을 보세요, 심각하죠? 이걸 우리 기술로 해결하려 해요. 다른 회사의 유사한 기술보다 이런 점이 뛰어나거든요. 개발 원리는 이런 건데요, 사용하는 기술도 트렌디하고 아이템의 사업성도 아주 좋아요~ 첫 해에는 매출이 크진 않겠지만, 2년, 3년 지나면서 이러저러한 마케팅과 제휴를 해나가면 이런 큰 매출을 거둘 수가 있어요. 덩달아 해외까지 진출해 국위선양을 할 수 있으니. 헉헉, 어때요, 우리를 지원해 주는 게?"


"그리고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기술을 키워주는 지원사업(R&D)과 회사를 키워주는 지원사업(창업패키지)이 있지. 크고 작게, 그 종류가 무지 많아."


"헐~ 사업하기 좋은 세상이네. 그런데 왜 안 된 거야?"


"차별화된 특허 기술들은 만들어 놨는데 말야, 문제는 그 기술을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지에 대한 거지, 그게 실패였어. 좋은 문제를 짚어내지 못한 게... 일단 작년은 그랬어..."


"뭔가 앞뒤가 뒤바뀐거 아냐?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할 문제라니."


(뜨끔!)



한참을 열변을 또한 B급아빠, 문득 꼼장어가 타는 것도 잊은 채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것 같아 동자의 안부를 물었다.


"넌 요즘 어때?"


"응 당분간 대전에서 일하는데 워낙 코로나가 극성이니 사람 안 만나고 소소한 취미 활동을 하고 있지. 이거 함 보여줄게."


동자는 먼저 아들의 유튜브를 보여줬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의 유튜브 구독자는 1천 명 대, 조회수가 60만이 넘는 영상도 있었다. 레고에 에어브러시를 이용해 실제 캐릭터와 가깝게 색을 입히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난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고 있고.”


요즘 취미의 수준은 이런 건가? 동자가 보여준 건 철제 프레임을 만들고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조명을 설치한 홈가드닝 장치였다.

KakaoTalk_20220326_221712729.jpg 동자의 LED 홈가드닝

"와! 네가 직접 만든 거야?"

"응, 이거 저거 검색해 보면서 직접 만든 거야. 프레임은 이케아에서 구입한 거고. 이 LED가 태양의 역할을 하는데 홈오토를 이용해서 조명의 일정 관리를 하는 거야. 지금은 상추를 키우고는 있는데…"


B급아빠는 금세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불현듯 직업병 같이 사업계획 모드가 '턴-온'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의 땅을 구하긴 쉬워지겠지? 농촌지역 고령화가 심각하니깐. 그렇지. 근데 이건 땅의 넓이가 중요하지 않아. 층층이 위로 쌓으면 되는 거니까. 또 이렇게 조절할 수 있다면 매년 어떤 작물을 키울지만 선택을 잘하면 되는 거야. 농업도 마치 주식 같은 투자 개념이 들어갈 수 있겠구만. 아니지 아예 채소가 소비되는 과정과 최종 소비자까지 연결하면 수요예측이 쉬워지겠네. 난 산와사비를 키워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몇 년 전에 일본 홋카이도에 여행을 갔다가 삿포로에서 현지인들이 찾는 외진 동네의 이자카야를 갔는데 삼겹살에 산와사비를 갈아서 하얗게 얹어주는 요리를 먹어봤어. 그 뒤에 한국에서 보니 녹색 와사비와 삼겹살을 같이 먹는 식당들이 눈에 띄던데 산와사비는 찾기 힘들더라고. (말이 많아 후략)"


사실 B급아빠가 30대 후반부터 다양한 업종으로 이직을 하는 모습을 보며 동자는 부러워했다. 업종이 전문적이고 공기업에 근무하다 보니 다양한 이직의 기회가 열려있는 것도 아니었고 급여 수준이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직장에서 20여 년을 근무했고 중간에 빅데이터와 관련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아 그 학습의 결과를 회사와 가정에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여러 차례 이직을 거쳐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정부지원사업과 씨름하고 있는 B급아빠, 하지만 당장은 성과가 나오질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그에게 평범하고 우직한 동자의 일상이 전에 없이 행복해 보였다.



꼼장어집을 나와 성신여대역으로 걸어가다 동자는 문득 대학 동아리 친구인 ‘석’ 이야기를 꺼냈다. B급아빠와 동자, 그리고 석 셋은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만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도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사업을 시작한 게 그 놈이었는데…"

"그러게, 되게 보고 싶네?"


석은 대기업에 다니다 팀장을 하던 30대 중반에 팀원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반발하며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두 명의 이전 회사 동료와 동업해 회사를 차렸다. 그땐 지금처럼 신생회사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다양한 것도 아니었고 사업분야도 냉동창고를 낀 유통업이다 보니 가장 어려운 점은 직원 채용이었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2명의 직원을 채용해 5인 회사가 되는 것이었고 그땐 꼭 첫 워크숍을 가겠다고 공언했다.


사업 4년 차를 꽉 채웠을 때서야 두 명의 직원을 채용할 수 있었고, 약속한 것처럼 워크숍을 가게됐다. 워크숍 준비를 빙자한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새벽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석이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요즘 같았으면 막 나온 산꼼장어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지 않았을까? 좋은 정부지원사업들도 많고 딱 사업가 성향이니까 그놈은. 그랬을 거야."


사람들은 막차를 타기 위해 급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막차'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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