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열심히' 일한 파견직, 회식에 초대받다

당신의 공장에선 무엇이 생산됩니까? vol.3

by 노창범
기업은 앞으로, 직접 고용에 의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파견직을 선호할 겁니다!


B급아빠는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다 이 말을 듣고 분주한 손을 잠시 멈췄다. '새로운 정부는 친 경영자 우선의 정책을 펼칠 것'이고, '지금까지 노동자를 위해 꾸역꾸역 만들어 왔던 제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취지의 진행자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가 비정규직(파견직)으로 살았던 과거 몇 달 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B급아빠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에서 지내던 20대 중반의 일이었다.

도쿄 생활을 시작해 한 달 동안 단기 알바를 전전하던 B급아빠는 어느 날 다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하러 떠난 오후의 기숙사에 혼자 있다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됐다. '인력파견회사'였다.


담당자 : "거기 연락처 힘들게 찾았어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한국인들이 생활하는 곳 맞죠? 건축 자재를 재활용하는 공장에서 하는 일입니다. 공장의 부장님이 꼭 한국인 직원을 채용하고 싶다고 했어요. 전임자가 한국인인데 너무 성실하고 일을 잘했다구요."


B급아빠는 다음 날 바로 신주쿠의 그 인력파견회사를 찾아가 면접을 봤다. 가벼운 통장 잔고는 긴 고민을 허락지 않았다. 담당자는 B급아빠의 신분이 확실한지와 몸은 일하는데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파견직'이란 단어가 낯설었던 B급아빠는 담당자에게 그 단어가 현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물었다.


"음... 한 마디로 당신이 어디서 일하든 소속은 우리 회사예요. 그러니 일하다 발생한 문제는 우리에게 얘기하세요."


담당자는 그 대가로 B급아빠가 일 할 회사로부터 수수료를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했다. B급아빠가 최종적으로 받는 금액은 하루 1만 엔, 한 달에 20일을 일해서 20만 엔, 우리 돈으로는 200만 원 정도였다. 당시 한국의 아르바이트 급여에 비해서는 꽤 높은 금액이라 굳이 인력파견회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물어보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온 B급아빠는 신주쿠역 근처 라멘 가게에 들어가 모처럼 혼자 외식을 하며 자축했다.


B급아빠 : '드디어 직장이 생겼다!'


그렇게 '파견직 근로자' B급아빠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0. 몇 달 후, 그날


B급아빠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바닥에 놓인 휴지통과 히비키의 얼굴을 오갔다.


히비키 : "하! 들켰네. 크크크"


히비키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을 둘러싸고 구경하던 일본인 직원들은 가학적인, 그래서 흥미로운 쇼 프로그램의 '다음 시간에 계속'이라는 자막을 본 것처럼 아쉬움에 상기된 얼굴로 순식간에 흩어졌다.

파견직 B급아빠의 너무나 이국적인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은 그렇게 클라이맥스를 넘어섰다.

눈이 펑펑 내리는 1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1. '컨베이어 벨트'의 지배를 받다


출근길은 멀었다. 기숙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역에 도착해 전철을 한 번 갈아탄 후 논 사이로 난 길과 마을, 그리고 작은 공동묘지를 지나니 오래된 공장 하나가 나타났다. 기숙사에서부터 걸린 시간은 총 1시간 40분, 그곳이 B급아빠가 일할 재활용 건축자재 공장이었다.


늦여름의 첫 출근길은 일본라는 낯선 세계에서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본다는 호기심에 조금 설렜다.


공장에는 사무실과 큰 창고 하나 그리고 몇 개의 작업장이 있었다. B급아빠가 속한 작업장에는 중년의 부장과 사모님, 할아버지 한 분, 히비키라는 이름의 직원, 그리고 켄지라는 작고 단단한 체구의 젊은이가 근무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커다란 트럭이 와 스티로폼이나 톱밥 같은, 정체불명의 재료를 쏟아 놓고 간다. 부장은 재료별로 배합을 달리해 각각 크기와 디자인이 다른 비닐 포대에 담아 밀봉을 한 뒤 짧은 컨베이어 벨트에 던져 놓는다.


여기서 B급아빠의 일은 시작된다.


B급아빠는 여러 개의 못이 촘촘히 박힌 고슴도치 같은 도구로 포대에 바람구멍을 뚫어 옆에 쌓는다. 그리고 일정 수량이 되면 밴딩 머신을 사용해 포대의 크기에 따라 두 개, 혹은 네 개씩 십자로 묶는다. 그 묶음이 또 어느 정도 쌓이면 부장은 신호를 준다. 창고에 가져다 쌓으라는 지시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히 묘사를 할 수 있지만 이 단어들이 일의 현장에서 실제 움직임과 프로세스가 됐을 때 노동량은 엄청났다. 무엇보다 부장이 던져놓은 비닐 포대를 싣고 오는 컨테이어 벨트는 마치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속도로 B급아빠에게 일거리를 제공했다. 어지간히 날래고 눈치 빠르게 일을 진행하지 않으면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 작업장의 지배자는 바로 '컨테이어 벨트'였다.


도쿄의 늦여름, 출근길 아침 공기는 마치 TV 청춘물처럼 상쾌하기 그지없으나 일을 하다 보면 뜨끈하고 눅눅한 공기는 망령처럼 몸에 감겨왔다. 월급을 차감해 구입한 연녹색 작업복은 오전부터 금세 땀에 푹 젖는다.


B급아빠는 일주일 만에 B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의문에 빠졌다. 군대까지 다녀온 B급아빠였지만, 동료들과 강약을 조절하는 군대의 노동과 컨베이어 벨트가 지배하는 이곳의 무표정한 노동은, 그 강도가 달랐다.



2. 그냥, 열심히


2시간 일을 하면 15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B급아빠는 켄지와 구석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켄지는 다음 주면 이곳을 떠난다. B급아빠는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용되었다.


B급아빠 : "일이 너무 힘드네요.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켄지 : "나도 처음엔 그랬어요."


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움직임은 여유로웠고 지친 기색 한 번 보이질 않았다. 그는 여름 한 철 서핑을 진하게 즐기기 위해 나머지 계절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위 '프리타'였다.

B급아빠는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켄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냥(ただ, 타다), 열심히(一生懸命, 잇쇼켄메이)."


'잇쇼켄메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줄기차게 봐 왔던 단어였다. '열심히...?' 그러나 이때만큼은 그 관용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자들의 의미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목숨을 걸고'라... 어찌 된 영문인지 관용어가 되면서 가벼운 일상어가 됐지만 실상 그 한자의 뜻은 묵직했다.


켄지는 그 단어를 관용적으로 얘기했고 B급아빠는 한자의 의미를 느꼈다.


다음 주 켄지는 '수고~'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산뜻하게 공장을 떠났고 B급아빠는 '잇쇼켄메이' 일을 하며 그 공장에서 가을을 맞이했다.


일은 금세 익숙해졌다.



3. 트럭이 오는 날


일주일에 두 차례 큰 트럭이 들어온다. 재료를 가져오는 트럭과 생산된 제품을 가져가는 트럭이다. 트럭이 오고 떠날 때까지 20여 분 동안, B급아빠는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조용히 트럭과 운전사를 관찰하곤 했다.


'가져오는 트럭'은 공사장에서 막 빠져나온 듯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구형 모델이고 항상 같은 사람이 차를 몰고 온다. '가져가는 트럭'은 화물칸의 양옆이 위로 열리는, 신형 모델들이고 운전자 또한 다양했다.


보통은 금발 염색을 한 까무잡잡한 피부의 젊은 남자 기사가 항공복을 입고 트럭에서 내리며 활기차게 인사를 한다. 나이가 있는 운전사는 일을 거들어 줄 조수와 함께한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들이 있다.


한 번은 젊고 예쁘장한 여자 운전사가 트럭에서 내리며 모두에게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 '여자니까 도와줘야 하나?'라는 선입관은 쓸모없었다. 그녀는 트럭을 오르내리며 금세 짐을 싣고 또다시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떠난다.


성별과 연령, 그리고 직업, 이곳에선 그 연결고리가 느슨했다.


어느 날은 운전석에서 조그만 할아버지가 내리고 조수석에선 거인 같은 흑인이 내렸다. 할아버지는 이가 몇 개 없어 새는 발음으로 '킬킬' 거리며 무표정하고 거대한 조수에게 들으란 듯 큰 소리로 일을 지시했다. 그에게 그 검은 조수는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고급 승용차 같은 존재였다.


B급아빠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정체와 삶을 멋대로 상상할 수 있는 '트럭의 시간'을 기다렸다.



4. 히비키, 그리고 '아노(あの)' 할아버지


히비키라는 남자는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는 중국인이었다. 하지만 이름은 '히비키', 자신의 중국 이름을 일본 식으로 발음한 그 이름으로 불렸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일을 했고 지금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동글동글 너구리 같은 몸매와 처진 눈을 한 그는 공장의 정사원이다. 부장이 볼 때 성실히 일을 하다가 자신으로부터 시선이 거두어지면 뭔지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며 딴짓을 했다.


공장에 오기 전 단기 알바를 하면서 중국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이 그런 태도로 일을 했다. 그럴 땐 오히려 열심히 하려는 B급아빠 자신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뭐 어쩌겠어, 저 사람이 이곳의 정사원인 이유는 있겠지.'


B급아빠는 공장에서 그저 굼실굼실 존재하고 있는 히비키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왜인지, 그와는 얘기 한 번 나눈 적이 없었다. B급아빠가 딱히 피하려 하지 않았지만, 히비키는 항상 그에게서 거리를 뒀다.


작업장에선 항상 라디오 방송이 BGM 역할을 하고 있다.


'아노' 할아버지의 작업대에는 오래된 라디오가 작업이 시작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적절한 볼륨을 유지했다. 주로 엔카(우리나라로 치면 트로트)가 나오는 방송들이다. 아노 할아버지는 B급아빠와 같은 일을 하지 않지만 항상 가까운 거리에서 일을 했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따로 일본어 학원을 다니지 않은 B급아빠는 공장에 한국인이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고 일터가 곧 학교겠구나 싶어서 내심 기뻐했다. 그리고 아노 할아버지는 그에게 좋은 일본어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에게 처음 말을 걸었을 때,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아노 할아버지의 발음을, B급아빠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개성 강한 지방의 방언인가? 아니면 발음 자체가 이상한 것일까?'


그 뒤로도 종종 서로에게 말은 걸었지만 둘다 대답은 알아듣지 못하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B급아빠의 일본어 실력도 썩 좋지는 않았으니까.


서로 이름은 몰랐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둘의 대화는 서로의 이름이 아닌 '아노(あの)~'(한국 말로는, '저~' '저기요~'의 느낌)로 시작됐다. 그래서 B급아빠는 그 할아버지를 '아노 할아버지'라 멋대로 정해버렸다.


그렇게 B급아빠가 꿈꾸던 직장의 일본어 학원화는 여기서 막을 내리는 듯했으나... 아노 할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아침이면 라디오를 틀어 작업대에 놓았다. 고됨을 잊으라는 건지, 아니면 라디오 들으며 일본어 공부를 하라는 건지.


B급 아빠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5. 그저, 노동자


기숙사의 다른 이들은 보통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오후 몇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와 월세를 충당했다. 이미 일본어를 어느 정도 마스터하고 이곳에 온 이들은 영어학원에 갔다. 그들은 선생님과는 영어로 학생들과는 일본어로 대화를 하며 동시에 두 가지 외국어를 익혔다.


B급아빠의 이른 아침에 출근해 해가 진 뒤에야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를 갈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이 외국인과 프리토킹을 통해 일본어를 익히게 해주는 모임에 나갔다.


처음에는 YMCA에 나갔다. 자원봉사자들은 대학생들이었다. 그리고 모임은 가만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온통 게임과 환호성, 감탄사로 가득 차 있었다. 일을 마치고 아주 오래 전철을 타고 와 녹초가 된 B급아빠는 아쉽게도 그들과 맘껏 어울릴 '활력'이 없었다.


다음에는 와세다대학 근처, 다카다노바바라는 곳에 있는 YWCA 모임에 나갔다. 역에서 건물까지 가는 길가에 헌책방이 줄지어 있는 차분한 분위기, B급아빠는 왠지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모임의 사람들도 편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30대였고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 이야기는 진지했고 모임 후 근처 식당에서 따끈하고 담백한 그라탱과 함께하는 다양한 주제의 대화들은 마치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식사가 끝나고 줄지어 1엔 동전 하나까지 각자 계산하는 와리깡 문화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


KakaoTalk_20220403_100218682.jpg YWCA 모임 사람들과 함께한 등산


모임에 나간 초기에 다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던지는 질문 중에 '한국에선 뭘 하다 왔냐'는 빠지지 않았다. B급아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툭 답을 던졌다.


"그냥 전 여기서 노동자예요. 현재의 모습으로만 봐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고 싶은 26살의 그였다. 선입관 없이, 순수한 육체 노동자로, 여기서는.



6. 낯선 과식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B급아빠의 몸무게는 무려 20kg 가까이 빠졌다. 일은 격한데 먹는 건 부실한 탓이었다.


보통 아침은 밥 한 공기와 인스턴트 햄이나 생선구이 한 조각, 절임 반찬, 그리고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로 때웠다. 점심은 아침과 마찬가지 음식들이 담긴 도시락, 저녁은 퇴근길 동네 마트에서 사 온 인스턴트 라면, 혹은 야채 볶음밥이었다. 마지막으로 자기 전 간단한 안주와 싸구려 위스키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모두는 학원을 다니며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필수적으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했다. 휴일에 종종 같이 여행을 다니는 동년배 친구 경훈은 주택가 일정 지역을 할당받아 우편함에 전단지를 넣는 일을 했다. 덕분에 매일 걷는 거리가 상당해 그 역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급격히 체중이 감소했다.


어느 날 이들은 기숙사 다른 이들로부터 이케부쿠로에 괜찮은 고기 뷔페가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1시간 제한으로 1천5백엔. 둘에겐 필요한 곳이었다. 그 주 주말, 둘은 바로 뷔페로 향했다.


첫날, 둘은 고기에 흠뻑 빠져 허우적거리다 1시간이 맘껏 먹기에는 짧은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2주에 한 번씩은 그곳을 찾았고, 모든 고기의 종류를 머릿속에 담고 있던 그들은 가는 길에 '오늘의 고기 타임 테이블'을 짰다. 가장 효율적으로, 많이 먹기 위한 계획이었다.


한 번은 과하게 고기를 섭취한 B급아빠가 탈이 나고 말았다. 고기가 목까지 차올라 강한 거북함을 느꼈다. 다행히 근처 자판기에서 한국의 '가스 활명수' 비슷한 음료를 발견하고 한 병을 사 벌컥벌컥 들이켰으나 그저 탄산이 가득한 청량음료였다. 배는 더 요동쳤다. B급아빠는 그날 '배가 터질 것 같다'는 말을 완벽히 실감했다.


그 일을 겪은 후, 둘은 좀 더 얌전한 뷔페를 다니겠다며 새로 소개받은 프랑스 요리 뷔페를 찾았다. 시간제한은 역시 1시간, 달팽이 요리도 있고 와인은 무제한, 그리고 가격은 두 배(3천엔)였다.


하지만 둘은 다시 고기 뷔페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뷔페를 가는 목적은 '맛'과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단백질'과 '지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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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지각


늦가을로 접어들어 쌀쌀해졌다. B급아빠는 차가운 공기와 울긋불긋한 자연의 풍경 덕에 약간은 감성적인 상태로 혼자 어딘가로 가는 길이었다.


B급아빠는 기숙사에서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B급아빠가 기숙사에 오기 전 먼저 머물고 있던 이들은 하나의 '선주 세력'을 이뤘고 그 뒤로 한둘씩 추가되는 이들에 대해 노골적인 텃세가 있었다. 덕분에 B급아빠와 함께 온 이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거주지를 옮겼고 지금은 일행 중 B급아빠 혼자 기숙사에 남아있었다.


사람 때문에, 특히 집단 때문에 힘들 때 B급아빠는 기숙사 근처 공원을 찾았다. 벤치에 앉아 마트에서 사 온 간식을 꺼내놓으면 어느새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경계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자주 나와 먹이를 주다 보니 나름 따르는 애들도 있었다. B급아빠는 그 고양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좋고 편했다. 그는 불온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눈'과 마주함에 지쳐있었다.


B급아빠는 우에노 동물원에 가는 길이었다. 고양이들과의 눈 맞춤에 위로를 얻던 그는 문득 동물들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쉬는 날 혼자 길을 나섰다.


전철을 탔다. 평일 이른 오후의 전철은 한산했다. 갑자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기숙사 사람이다. B급아빠가 쉬는 날인 걸 알고 그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야, 어디야? 빨리 와봐. 법원에서 사람들이 와서 집안 여기저기 딱지를 붙이고 있어. 우리 쫓아내려나 봐!"


상황만 전해 듣고 전화를 끊었다. 덜컹덜컹 동물원으로 향하는 전철에서 B급아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냥 좌석에 더 깊이 몸을 묻었다.


그는 더 절실히 동물원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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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기숙사 입주민들의 대책회의가 열렸다. 기숙사는 한국의 종교단체가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정해진 날까지 최종적으로 빚을 갚지 못하면 기숙사에서 모두들 나가야 하는 상황, 입주민(대부분 20대 중후반의 한국인)들의 관심은 남은 비자 기간 동안 기숙사에 머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의 불안에 기숙사 관리인의 역할을 하고 있던 종교단체 직원은 '문제를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고 입주민들에게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2주가 넘게 소위 '심야 대책 회의'가 이어졌다. 힘이 있는 선주 세력, 그중에서도 주도하는 이들은 '전원 참석'이라는 강한 규칙을 고집했지만 막상 회의를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또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없었다.


사실 그들은 곧 비자 기간이 만료되는 상황이었고 관심사는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가'였다. 관리자는 종종 찾아와 보증금의 반환을 확실히 약속을 했고 선주 세력은 '어떻게 해서든 보증금을 선지급하라, 그러면 자신들은 바로 이 지긋지긋한 곧을 바로 뜨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일 이어지는 심야 회의에 지친 B급아빠는 어느 날 지각을 하고 말았다. 새벽녘에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은 기숙사에 B급아빠가 유일했다.


평소엔 그런 일이 없었기에 부장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있는 B급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B급아빠의 일본어 실력으로는 자세한 상황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말하긴 힘들었다. 머뭇거리다 나온 한 마디는,


"그냥,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부장은 그 모호한 한마디에도 수긍을 한 듯, 몸을 일으켜 작업작으로 향했다. 그래, 틀린 답은 아니었다.


겨울이 오고 도쿄엔 첫눈이 왔다.


바람은 강하지만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 질퍽질퍽한 눈이었다. 떠나겠다고 한 이들의 계좌에는 보증금이 입금됐다. 관리인은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종종 찾아오는 관리인의 눈을 피해 짐과 몸을 숨겼다. 밤이 되어야 모여들어 술자리를 열었다.


B급아빠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동물원을 생각했다.



8. 치카라 모치


부장 사모님은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사무실에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따뜻한 차를 내주며 조근조근 수다를 떠는 친절한 여성이었다. B급아빠의 사물함에 B급아빠의 성인 한글 '노'와 일본어 '노우(ノウ)'와 함께 적어 붙여준 것도 그녀다.


또 한류 팬이었다. 가끔 그녀가 며칠씩 자리를 비울 때가 있었는데 다시 등장을 하면 한국산 김과 김치가 테이블에 놓였다. 그리고 B급아빠에게 한국에 다녀왔다며 이런저런 장소들에 대해 묻곤 했다.


4개월 정도를 공장에서 일을 했을 때 B급아빠의 몸무게는 무려 30Kg 가까이 줄었다. 그리고 몸은 그곳에서의 일에 최적화되었다.


사모님은 먼지 때문에 일을 하는 현장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 어느 날 부장에게 뭔가 전할 말이 있었는지 현장에 나왔다 일을 하는 B급아빠를 잠시 지켜봤다. 그리고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와~ 노우, 치카라 모치(力持ち - 힘이 센 사람)네?"


그 말을 들은 B급아빠는 쑥스럽게 웃다가 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일이 힘들어 그만두려다 켄지의 무심한 응원, '잇쇼켄메이'에 각성을 했었지. 그때 일을 그만뒀으면 어떻게 됐을까?


'잇쇼켄메이'도 '치카라 모치'도 모두 그들은 별생각 없이 내뱉은 일상어겠지만 결과적으로 B급아빠가 이곳에서의 노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준 '공장의 단어들'이었다.



9. 회식


B급아빠의 기숙사는 공장지대에 있었다. 어느 날 기숙사 일행들과 한국말로 수다를 떨며 길을 가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외모로 보면 동남아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이죠? 나 한국에서 왔어요!"


조금 어눌하지만 분명 한국어였다. 당황해 머뭇거리는 B급아빠와 일행을 향해 그는 주저리주저리 '신세한탄'을 늘어놓는다.


"나 여기 공장에서 일해요. 그 전에는 한국 천안에 있는 공장에서 일했어요. 여기서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그런데 여기 사장 나빠요! 한국에서는 회식도 자주 하고 사장님이 삼겹살도 사줬는데... 여긴 회식이 없어요! 아니 날 안 끼어줘요!"


뭔가 절실한 하소연 같지만 결국 회식을 시켜주지 않아서 사장님이 나쁘다니, 흠... 그런데 생각해 보니 B급아빠도 이곳에선 그와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B급아빠가 일하는 공장도 종종 회식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한 번도 그 자리에 초대를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장님 나빠요!'를 외칠 정도로 절실하진 않았지만,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벽이라 느껴졌다. 정직원과 파견직의 벽.


새해가 왔다.


첫 근무일, 출근하는데 눈이 많이 내렸다. 부장과 다른 사무직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오늘 근무를 마치고 시무식을 겸해 회식이 있다고 했다. 대화를 마치고 부장은 B급아빠에게 웃으며 얘기를 했다.


"노우도 오늘 저녁 회식 참석해!"


입사하고 네 달이 지나서야 처음 회식에 초대를 받았다. 드디어 한 식구로 인정을 받는 건가? B급아빠는 조금 설렜다.


하루가 금세 가고 작업장의 직원들은 부장과 함께 회식 장소인 사무실로 향했다. 이 공장에 이렇게 직원이 많았었나? 사무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음식, 갖가지 술들. 사모님은 최근에 또 한국에 다녀왔다며 김치 몇 포기를 썰어서 접시에 담았다.


사장의 신년사 후 일본의 전통 신년 행사가 펼쳐졌다. 달마 얼굴을 본뜬 다루마(だるま) 인형의 한쪽 눈에 눈동자를 채우는 의식이었다. 신년에 소원을 빌며 한쪽 눈에 눈동자를 그리고 그 소원이 이뤄지면 나머지 눈에도 마저 눈동자를 넣어 신사에 봉납하거나 밤중에 태운다고 한다. 사무실에 아주 커다란 다루마 인형이 등장하고 직원 모두가 돌아가며 소원을 빌며 인형의 한쪽 눈동자를 완성했다.


B급아빠도 펜을 들어 눈동자에 작은 점을 남겼다. 그의 소원은 짝사랑하던 그녀와 귀국 후, 인연이 맺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왁자지껄하게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평소 먹어보지 못한 금가루가 든 일본술 몇 잔을 홀짝거리고 있는데 히비키다 다가왔다.


"한국인들은 술 잘 마신다며? 중국인들도 술 잘 마셔. 우리 누가 술 잘 마시는지 내기할까?"


당황해서 뭐라 대답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미 식순에 들어있는 이벤트였던 건지 일본인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B급아빠와 히비키 주위를 둘러싸고 둘의 곁에 캔맥주를 잔뜩 쌓아 올렸다. B급아빠는 처음 참석한 회식의 설렘, 스물일곱의 나이가 주는 호기,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술 내기에서 진 적이 없던 자존심으로 허리를 꼿꼿히하고 승부를 받아들였다.


번갈아가며 맥주 캔 하나씩을 한 번에 비우는 것으로 내기가 진행됐다.


B급아빠는 눈을 질끈 감고 한모금에 캔맥주를 비웠다. 어느덧 일곱 캔째였다. 하지만 맞은 편 히비키의 얼굴이 너무나 멀쩡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여덟 캔째, B급아빠는 맥주를 들이켜다 말고 갑자기 눈을 떠 히비키를 보았다.


그는 머금고 있던 맥주를 테이블 아래 놓인 휴지통에 뱉고 있었다.


그리고 벌어진 상황은, 앞서 얘기했던 허무한 결말이었다.

이벤트는 끝이 났고 다시 모두들 마시며, 웃으며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히비키 역시.


B급아빠는 조용히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섰다. 그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이라 좋아했는데, 파견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들과의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벽이 이제는 허물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회식으로의 초대가 그 증거라고 생각했는데.


문밖으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역까지는 마을 하나를 지나 논 사이로 난 길을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B급아빠는 그냥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의 눈에 논으로 나있는 발자국이 보였다. 논을 가로질러 간다면 좀 더 빨리 역에 도착할 수 있다. B급아빠는 주저하지 않고 그 발자국을 따라 논을 가로질렀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불현듯 걸음을 멈췄다. 논 한가운데서 그 발자국은 갑자기 끊겨 있었다. 그는 논 한가운데서 눈을 맞으며 한참동안, 하염없이 서 있었다.


그는 믿었던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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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지막 출근


B급아빠는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그리고 사정 상 한 달 반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부장에게 얘기를 했다. 부장은 별 표정의 변화 없이 알겠다고 한 뒤, 인력파견회사에도 직접 연락을 하라고 했다.


인력파견회사에 연락해 담당자와 귀국 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계약 종료와 남은 급여 정산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했다. 일 한 곳은 이 공장이었지만 행정상의 퇴사는 인력파견회사에서였다.


부장은 마지막 날만 근처에 있는 다른 계열사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일주일 뒤 B급아빠는 다른 공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그곳은 시멘트 공장이었고 사람들이 직접 시멘트를 운반했다. 몇 달 간, 몸을 쓰는 노동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노동 강도는 훨씬 높았다.


잠시 쉬는 시간, 가끔 작업장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던 다른 직원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는 말했다.


"넌 이곳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어. 원래 일하던 한국 사람이 일을 참 열심히 했거든. 그러다 허리를 다쳐서 그만뒀는데 여기 부장이 또 한국 사람을 뽑고 싶어 하더라고. 그런데 네가 몇 달간 일한 그 공장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게 된 거야. 여기는 이렇게 사람이 많지만 거기는 한 명이 빠지면 돌아가지 않거든. 그래서 네가 그곳에서 일하게 된 거지."


"아..."


B급아빠는 피식 웃으며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어쩌면, 그 시간 동안의 모든 것들, 그냥 다 행운이었나.'


불 붙인 담배의 첫 푸른 연기가 늦겨울 공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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