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안정적 직장이란 '태양계' 이탈기

B급아빠는 어쩌다 스타트업에 갔을까?

by 노창범
B급아빠는 을지로역에 거의 도착할 즈음,
다시 발길을 돌려 C푸드 본사의 로비로 향했다.
그리고 케노비에게 전화를 했다.
'얘기 좀 할 수 있겠냐'고.

부쩍 쌀쌀해진 11월 어느 늦은 오후였다.



케노비는 20분쯤 후, 진행 중이던 회의를 마치고 로비에 나타났다. 그동안 B급아빠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현재의 모든 것을 재료로 자신이 이끄는 사업부의 미래를 예측해 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

‘지금은 그가 필요하다.’


로비 바깥, 늦가을 저녁 햇살은 퇴근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그림자로 놀이를 하고 있다.

케노비가 왔고 B급아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케노비와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케노비는 일어서며 얘기했다.

"생각해 볼게요."


케노비는 한 대기업 모바일앱의 UX리뉴얼 프로젝트 PM으로 팀원들과 파견을 나와있었다. 원래 PM은 창업자의 큰아들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프로젝트가 한창인 시점에 회사로부터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케노비는 급하게 투입된 PM이었고 아직 정식 입사는 하지 않았다. B급아빠는 그가 속해있는 디지털사업부의 사업부장, 즉 책임자였다. 나이는 케노비가 다섯 살 많았다.


B급아빠가 케노비에게 그날 제안한 건, 프로젝트 이후 정식 입사였다. 8년 간 다녔던 회사에 사업부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곳엔 오랫동안, 멀리까지 갈 수 있는 동력이 보이지 않았다. 케노비는 오랫동안 한 대기업의 UX파트에서 일을 해왔다. UX 전문성이라는 건, 디자인을 강점으로 브랜딩된 회사의 디지털사업부에는 큰 무기가 된다. 그거라면 어떻게든 지금의 어려운 사업부 상황을 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케노비는 B급아빠의 제안에 대해 숙고를 한 끝에 회사 복귀를 결정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함께한 팀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하면 어떤 프로젝트도 가능하겠다는 자신이 있었다.


케노비가 파견을 나간 사이 회사는 파주로 이사를 갔다. 케노비의 팀은 파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새로운 프로젝트를 얻지 못했고, 케노비의 팀은 임원진으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했다. B급아빠는 강하게 반대를 했으나 결정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결국 B급아빠도 얼마 뒤 사표를 냈다.


어느새 계절은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얼마 뒤, B급아빠는 한 대형병원에서 마케팅 팀장을 하게 됐다. 새 회사의 적응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B급아빠에게 케노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고 했다.


"팀원들은요?"

"다 그만뒀어요. 창업하고 3개월 동안은 일을 만들기 힘들었지. 큰 회사 안에서도 힘들었는데..."


B급아빠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먼저 입을 뗀 건 케노비였다.


"졸업생 중에 똘망똘망한 친구 데려와서 인턴으로 같이 하고 있어요. 어찌나 빠릿빠릿하게 잘하는지,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하하."


그는 한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UX를 가르치고 있다. B급아빠도 한 번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아쉽지 않아요? 아끼던 팀원들이었는데."

"다들 먹고살아야죠. 나도 마찬가지고. 능력 있는 애들이라 다 좋은 곳으로 갔어요. 나중에 꼭 다시 뭉치기로 했구요. 그런데 B급아빠는 나랑 같이 일 안 할래요?"

"에이, 제가 가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그냥 마케팅, 사업기획, 제안, 발표. 해오던 일들요. 막상 시작을 하니까 안 해 본 것들 투성이네요."


B급아빠는 말을 돌렸다. 지금 회사의 규모, 그리고 안전성, 풍족한 예산, 무엇보다 1위 브랜드의 마케팅을 이끈다는 건 그가 포기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그 뒤로 케노비는 견적서를 짜거나 회사 소개서를 쓰거나 계약서 작성을 할 때 B급아빠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했다. 홈페이지를 만들 땐 필요한 텍스트를 B급아빠가 작성하기도 했고, 기술에 대한 프로토타입 영상을 만들 때 B급아빠의 아내의 목소리가 설명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1년 하고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코로나19가 창궐했다. B급아빠의 조직에도 변화가 있었고 1년이라는 사이클을 온전히 경험해 병원 마케팅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가 생겼다. 케노비의 회사는 직원 수가 5명으로 늘었다. 굉장한 경력의 개발자가 CTO로 들어왔고 역시 가르치던 학생 중 2명이 인턴으로, 인턴이었던 친구는 정직원이 되어 '레이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케노비도, 레이아도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이다.)


2021년 1월, TV에선 무명가수전 <싱어게인>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이 한참이었다.

B급아빠는 그 프로그램에 나온 ‘다린’이라는 가수의 <태양계>라는 노래에 마음이 쓰였다.


<태양계>

나의 사랑이 멀어지네
나의 어제는 사라지네
태양을 따라 도는
저 별들처럼 난
돌고 돌고 돌고
그대를 향한 나의 이 어리석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물지 못하는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이 흐르네


이 노래의 가사는 B급아빠의 마음을 참 심란하게 했다. 함께 병원에 근무하는 누군가에게 어느 술자리에서 B급아빠는 이 노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 노래를 듣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더라구요. 아, 난 행성이고 노래처럼 돌고 돌고 돌고... 회사를, 상사를 태양 삼아서요. 그리고 이제 도는 게 좀 지겹더라구요. 나는 항상 종속된 존재라는 게. 그래서 내가 중심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좀 더 나이 먹기 전에... 태양계를 벗어나 보는 것. 불안하고 설레고, 그런 일이었다. 사실 B급아빠는 1년 전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아 왔다. 태양계를 벗어나 낯선 우주를 유영할 노잣돈이었다. 그런 상황에, 이 <태양계>라는 노래가 카운트다운처럼 다가왔다.


2020년 2월, 케노비는 회사 창립 1주년 행사에 B급아빠를 초대했다. 양재역 근처, N사가 운영하는 공용 오피스 건물, 로비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고, 케노비는 같은 층을 쓰는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백설기를 돌렸다. B급 아빠는 백설기를 입에 가득 담은 채 케노비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 사람 뽑나요? 일 잘하는 중년 아저씨 하나 아는데.”


B급아빠는 태양계에서 '툭' 떨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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