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인 공장 이야기 <감바레! 다이에 호크스>

당신의 공장에선 무엇이 생산됩니까? vol.2

by 노창범

무진복으로 몸을 감싼 뒤에는 에어샤워실로 들어간다.
에어샤워실이란 문과 문 사이의 협소한 공간인데,
공장에 들어가기 전 말하자면 통과의례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이곳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먼지를 제거하게 된다.
철두철미하다.
양손을 들고 빙빙 돈 다음, 마지막으로 몸을 탁탁 턴다.
약 십 초 후 바람이 멈춘다.
그러면 출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가면 거기가 바로 공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 뜨는 나라의 공장> 중



1990년대 막바지의 에어샤워실은 1980년대에 작가가 적었던 그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정도면 충분했던 것일까. 청결한 상태로 공장에 들어서기 위한 의식의 장소는.


좁은 에어샤워실을 나오니 저무는 가을 아침처럼 차갑고 넓은 공장 내부가 펼쳐진다.

이곳은 도시락 공장이다.

그리고 B가 일하게 된 도쿄의 두 번째 공장이다.


도쿄 북부에서 남부까지, 편도 두 시간이 걸리는 길이지만 통장 잔고는 B의 출근을 강요했다.

그래도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든다는 건 B에게 흥미로운 일이었다.

비밀스럽고 누구나 접하기 힘든 상품을 만드는 것보단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소재가 될 것 같았다.

한국의 기자 아카데미에 보낼 기사를 쓸, 매주 수요일에 들르는 YWCA의 일본인 자원 봉사자들과 이야기할 소재가 B에겐 필요했다.


"이곳은 다이에 호크스(현재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야구단 구장에서 판매되는 도시락을 만드는 곳입니다."


첫 출근에 숱 없는 공장 직원 아저씨에게서 이런 설명을 듣고 상상 속 '아기자기'한 도시락 공장 이미지는 순식간에 야구장의 힘을 받아 웅장해졌다. 에어샤워실도 무진복도, 공장의 규모도 순간 수긍이 갔다.


공장 내부엔 여러 개의 독립된 라인이 있다.

어떤 라인에서는 김밥과 유부초밥이, 또 다른 라인에서는 여러 반찬들이 담기는 세트 도시락이 생산된다.

B는 김밥과 유부초밥 라인을 맡게 됐고 한 라인 당 8명 정도가 팀을 이뤄 공정의 각 단계를 담당한다.

팀원의 구성은 글로벌하다.

무려 4개국 사람들이 모였는데 중국인이 4명, 브라질인이 2명, 그리고 B와 일본인 한 명, M이다.

(알고 보니 공장 전체를 통틀어 한국인 근무자는 B 혼자였다.)


하루 종일 B의 라인은 중국어와 브라질어(포르투갈어)로 왁자지껄했다.

이곳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일본과 브라질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것이었다.

TV에서도 브라질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오고 도쿄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마츠리) 중 하나는 바로 삼바축제였다.

도쿄의 삼바축제


중국인들 중 소란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키 작고 활기찬 청년이 있었다.

함께 일 한 지 이틀 만에 그는 B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며 소개팅을 제안했다.

그것으로 그의 소란한 말들의 진정성은 급락했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김밥과 유부초밥을 만든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벨트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사정은 개의치 않고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그 속도에 맞춰 자동화되지 않은 공정을 진행해야 하는 사람의 손은 분주하다.

포장을 비롯해 유부 안에 밥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준다거나

둘둘 말린 김밥이 잘 썰어지도록 역시 위치를 잡는 일 등이 사람의 몫이다.


이렇게 식재료와 완성된 혹은 불량으로 걸러진 식품 속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점심 식사는 다른 곳에서 오는 도시락이다.

절임 반찬 몇 가지, 생선구이 한 토막, 된장국 조금, 밥 조금, 조금조금조금...


그러고 나서 또 오후에 김밥과 유부초밥 사이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오후 4시쯤 극악스러운 시장기를 맞이하게 된다. B는 혈기왕성한 27살이었다.

그럴 때 B의 시선은 한 곳에 쌓인 불량품으로 향한다.

말이 불량이지 손의 실수로 유부가 약간 찢어졌거나 김이 잘 말리지 않은 김밥 등이다.

정말 먹음직스러운 불량품...


3일째 되는 날 B의 그런 불량한 시선을 눈치챈 일본인 주부 M은 사탕 하나를 꺼내 준다. 유치원생 딸이 좋아하는 거며. 그 사탕 하나에 허기를 달래고 B는 6시까지 겨우 근무를 마무리하고 공장을 나선다.

집까지 2시간. 집 근처 우키마 후나도 역에 도착할 시간이면 대형 슈퍼마켓에서 타임세일이 진행될 것이다. 거기까지만 가면 살 수 있다. 덜컹거리는 전철에서 B는 그렇게 밤을 맞이한다.

전철역 앞 슈퍼마켓, 타임세일


어느새 도시락 공장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중국어와 포르투갈어, 오후의 공복감과 M이 건네주는 사탕, 이 모든 것들이 B에게 조금은 편안하고 심지어는 소중히 느껴졌다.


그런데 오후, 공장 안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정'직원들이 때때로 환호를 했고 왠지 분주히 움직였다.

그 이유는 B가 환복을 하고 공장의 출구에 섰을 때 알 수 있었다.


다이에 호크스가 무려 리그 우승을 했다!


공장에서는 우승을 기념해 큰 선심을 썼다.

공장 출구에는 그날 공장에서 만들어진 김밥과 유부초밥이 질서 정연하게 펼쳐져 있었다.

오후의 공복감은 B만의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글로벌한 노동자들은 맨손으로 허겁지겁 김밥과 유부초밥을 집어 입 속에 욱여넣는다.

심지어 이건 불량품이 아니다.


B도 그들 사이에 끼어 자신이 만든 유부초밥을 흡입하다 M을 발견했다.

M은 그 소란이 왠지 불편한 듯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김밥과 유부초밥 몇 개를 주섬주섬 담기 시작했다.


B는 M에게 사탕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조용히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B를 알아본 M은 깜짝 놀라더니 비닐봉지를 닫지도 않는 채 황급히 자리를 뜬다.


'M에겐 그 일이 자신을 아는 누군가에겐 보이기 싫은 일이었을까?'

M의 뒷모습을 보며 B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장을 나서는데 다이에 호크스의 우승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B는 다이에 호크스라는 야구팀이 다음 시즌에도 우승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여기서 일하는 누군가는 그제야 자신의 손으로 만든 도시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바레 다이에 호크스..."


감바레 다이에 호스크


작가의 이전글감상적인 공장 이야기 <불량품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