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인 공장 이야기 <불량품의 가치>

당신의 공장에선 무엇이 생산됩니까? vol.1

by 노창범

감상적인 공장 이야기 1. <불량품의 가치>

* 공장(工場) : [명사] 원료나 재료를 가공하여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설비를 갖춘 곳.


나는 속으로 공장에 매료되는 은밀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
그 이미지는 어떤 경우에는 명확한 형태를 지닌 개체(예를 들면 코끼리)를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공장(코끼리 공장)이며, 또다른 경우에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형이상 공장이기도 했다.
그런 공장을, 나는 가끔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 뜨는 나라의 공장> 중


B급아빠는 공장을 좋아한다. 과정도 결과물도 인과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지내던 20대 후반에는 직접 여러 공장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가 체험한 공장들의 이야기 4편을 이어간다. 주인공은 B급아빠의 이니셜(?) B로 설정한다.



감상적인 공장 이야기 1. <불량품의 가치>


B는 일본의 한 구두 공장에 기숙사 친구들과 일주일간의 단기 알바를 하러 왔다.

하는 일은 구두의 최종 품질 심사. 구두 상자가 가득한 창고에서 박스를 열고 두어 개의 완제품 구두를 꺼내 굽은 제자리에 잘 맞춰진 건지, 바느질의 마감은 문제가 없는지를 살피고 다시 박스에 넣는다.

하룻동안 1인당 몇 백 몇 십 개의 상자를 열어 검사를 하고, 겨우 서너 개의 불량품을 발견해 한 쪽에 쌓아놓는다.


B "창문 너머로 저 사진이 보이는 건 의도한 걸까?"

"설마~ 근데 좀 무섭다. 아직 어렸을 때 받았던 반공교육의 기억이 무의식에 탁 박혀있는 건가?"


B가 가리킨 작은 창, 사각형 틀 안에는 또 하나의 사각형 안에 든 '김일성'이라는 사람의 커다란 초상화가 보인다. 아마 조총련계에서 지배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의 옥상일 것이다. 확실히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오늘은 이곳 근무의 마지막 날. 일본에 와서 처음 하는 일이라 몇 번 전철을 갈아타고 와야하는 기나긴 출근길도 설렜다. 그리고 벌써 마지막이라니.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우리와 같이 알바를 하러 온 중국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척 소란스럽다. 말의 속도만큼 일도 빨랐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 둘의 속도는 반비례인 듯하다.


드디어 일주일 간의 알바가 끝나고 우리는 수당을 받기 위해 관리자 주변에 모여들었다. 50대로 보이는 반들반들한 대머리의 관리자는 이곳에 올 때부터 작업의 안내와 지시를 맡았다. 그는 과묵했지만, 마지막 이 시간에는 조금 수다스러워졌다. 중국인 알바들이 오기 전 그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한다.


"한국인들은 정말 작업 속도도 빠르고 일도 정확하군요. 저들과 작업량에서 차이가 많이 났어요. 그래서 고마움의 표시로 나갈 때 저기서 원하는 신발 하나를 골라가세요."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우리가 골라냈던 불량품들이 쌓여있었다.

사실 경미한 흠이었다. 매장에서 디자인이 정말 맘에 들었는데 사이즈가 그것밖에 남지 않았을 때, 적어도 나 같으면 그냥 구매를 할 만큼의. 하지만 우리에게 제시된 '불량품의 기준'에서 그것들은 골라내야 할 것들이다.

난 갈색 롱부츠를 골랐다. 요즘 TV에서 연예인들이 그건 스타일의 부츠를 많이 신고 나왔다. 물론 같은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디자인에 둔감한 내 눈에는 그게 그거로 보였다.


집에 오는 길, 전철역에서 내린 B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담배를 피워문다. 이 구두, 일본에 온 직후부터 도움을 준 H씨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역에서 집까지의 거리, 그 중간쯤에 있는 주택가에서 B의 걸음은 서서히 느려졌다.


'이 신발, 불량품이다. 내 기준에선 아니지만 품질 검사 기준으론 분명 불량품이다.'


H에 대한 고마움과 불량품이라는 이 구두의 정체성의 틈에서 갈등하던 B, 마음을 굳힌다.


'치즈케이크라도 하나 사가야겠어. 이 불량 구두는 한 몫을 하지 못해...'


겨울다운 차가운 바람이 불던 도쿄의,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밤, B는 피곤한 발길을 돌려 다시 역 근처 제과점으로 향한다.



B급 아빠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이 이야기를 읽어준다.

이야기가 끝나자 조용히 듣고 있던 둘째가 다짐하듯 말한다.


"난 나중에 S사 공장 공장장 할거야."

"공장에서 일하는 건 위험해. 일 하다 죽은 사람도 있는데?"

"돈은 많이 벌 거 아냐. 돈으로는 행복을 할 수 있어. 난 여행하고 게임할 때 행복하거든."

"돈만 생각하면 할 일은 정말 많은데, 하필?"


"다른 직업은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공장은 뭘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거 같아. 그래서 더 쉬울 거 같아."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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