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공무원

서울, 夢. 15화

by 노창범
당신은 어젯밤 어떤 꿈을 꿨나요?

여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꿈을 꾸는 137만 명의 평범한 40대 중 한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실제 꿨던 이상한 꿈을 기록한 73개의 메모 중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그 꿈의 씨앗이 된 현실과 함께...


나는 강릉에 살고 있었다.


직업은 강릉 시청의 공무원이었다. 어느 부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공무원'이라는 사실이었다.


출근길은 언제나 같았다. 집을 나서면 바다가 보였다.


아침 햇살이 동해의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해변길을 따라 걸었다.

파도 소리의 리듬에 맞춰 발걸음을 내디뎠고, 바닷바람에 풍성한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이따금 조깅하는 사람들이 지나쳤고, 산책하는 노부부가 인사를 건넸다. 갈매기들은 흰 깃털을 반짝이며 방파제 위로 날아다녔다.


난 이 출근길을 사랑했다.



시청에 도착하면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나면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늘 처리할 서류들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엔 구내식당에 가서 해산물이 가득한 밥을 먹었고,

정시에 맞춰 퇴근했다.


만족스러운 일상이었다.



퇴근 후에는 시청 근처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태보 클래스에 출석했다.


펀치! 킥! 사이드 스텝!


빌리 블랭크스의 구령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몸이 가벼웠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했고, 리듬을 타는 게 즐거웠다.


운동을 마치고 땀에 젖은 몸으로 부딪히는 강릉의 저녁 공기는 서늘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에 젖은 티셔츠에 바다 내음을 입혔다. 하늘은 이미 어두웠고 그 속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바나나우유를 샀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TV를 보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도 똑같았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체육관에 가서 태보를 했다.

그런데 태보를 마치니 음악이 바뀌고 바로 타바타가 시작됐다.


둠칫, 둠칫, 둠칫.

빠른 비트가 체육관을 채웠다. 빌리 블랭크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기계음 같은 타이머 소리가 울려 퍼졌다.


"20초 운동! 10초 휴식!"

둠칫, 둠칫, 둠칫.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피테스트, 마운틴 클라이머, 점프 스쿼트. 리듬은 멈추지 않았고, 내 몸도 멈추지 않았다.


둠칫, 둠칫, 둠칫.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리듬이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붙였다. 태보가 끝나면 타바타, 타바타가 끝나면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될 것 같았다.


둠칫, 둠칫, 둠칫.

체육관의 거울 속에서 내 모습이 흔들렸다. 땀방울이 떨어지고, 근육이 떨렸지만, 나는 계속 움직였다.

나는 제자리에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거울을 보니 몸이 확실히 좋아져 있었다. 어깨가 넓어지고, 배가 들어갔다. 팔뚝에 근육이 생겼다. 만족스러웠다.


그 만족감이 나를 더 격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둠칫, 둠칫, 둠칫.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리듬은 계속됐고, 나도 계속 움직였다.


둠칫, 둠칫, 둠칫.

체육관의 형광등이 흔들렸다. 아니, 내 시야가 흔들리는 건지도 몰랐다.


둠칫, 둠칫, 둠칫.

리듬이 점점 더 빨라졌다. 아니면 느려졌다.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멈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둠칫, 둠칫, 두둠칫.


그리고 깼다.



2024년 5월 7일


아내와 저녁을 먹다 말실수를 했다.

"공무원은 일반 회사원의 압박감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식탁 너머로 아내의 표정이 굳는 게 보였다. 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 시간 이후로 냉전이 시작됐다.


사실 아내의 공무원 신분이 부러웠다. 위태로운 회사 생활을 하면서 더욱 그랬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언제 구조조정이 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그런 것들이 없는 삶이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이런 약속을 했었다.

"공기업에 들어갈게."

아내는 불안정한 상태를 싫어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사실 지키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여러 번 회사를 옮기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고 이제는 스타트업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꿈을 깨니, 오랜만에 혼자 바다에 가고 싶어졌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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