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수 없는 신발

서울, 夢. 14화

by 노창범
당신은 어젯밤 어떤 꿈을 꿨나요?

여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꿈을 꾸는 137만 명의 평범한 40대 중 한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실제 꿨던 이상한 꿈을 기록한 73개의 메모 중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그 꿈의 씨앗이 된 현실과 함께...


* 3월의 봄날 아침, 잠에서 깬 아내는 나를 불렀다.

그리고 몽롱한 꿈의 조각들이 흩어지기 전에 이야기로 꺼내놓았다.



아내는 내 친구 부부의 집을 찾아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왠지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따랐을 뿐이다.

꿈에서는 그런 것들이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의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내는 자신이 집에 신발을 벗어놓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깨끗한 맨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까지 맨발로 걸어왔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이미 와버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집 앞에는 두꺼운 철문이 서 있었다.



아내가 알고 있던 그 집과는 사뭇 달랐다.


철문은 묵직했다.

마치 숨긴 재산을 은닉한 은행 금고실이나 소수의 권력자들만의 생존을 위한 지하 벙커의 입구 같았다.

일반적인 주택의 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견고하고 위압적이었다.



아내는 힘을 줘 문을 두드렸다.


그 무뚝뚝한 철문이 가볍게 열리고 친구가 나타났다.

그는 평소처럼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아내를 반겼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아내가 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아내의 맨발에 머물렀다.



친구가 아내에게 신발을 건네기 시작했다.


검은 구두, 운동화, 샌들, 부츠... 마치 신발 가게의 진열장에서 골라 나온 것 같은 다양한 신발들이 아내의 발아래 놓였다.


"이것들 중에 네 것도 있어."


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내는 그 신발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그중에는 아내의 신발도, 그리고 내 신발도 있었다.

평소 내가 즐겨 신던, 낡고 편한 운동화였다.



'이건 팔 수 없겠는데.'


내 운동화를 본 순간 아내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왜 '팔다'라는 동사가 떠올랐는지 그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신발들, 특히 낡아빠진 내 신발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는 계속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은 충분하다는 듯이.


아내는 신발을 고르려 했지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신발이 의미 있어 보였고, 동시에 모든 신발이 낯설었다.


그 순간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그의 아내가 친구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함께 웃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렇게 함께 있어 왔다는 듯이.



아내는 그녀의 이름을 다급히 불렀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2023년 3월 14일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두꺼운 철문은 명확한 메타포 같았다.


"그 문은 친구와 우리 사이의 경계 같아."


잠시 멍하니 생각에 생각에 잠겨있던 난 불현듯 아내에게 말했다.


"S(친구의 아내)에게 연락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9년 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전까지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는 같은 지역으로 함께 이사를 다닐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그날 아침 출근길에 아내는 S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등장한 S의 봄 같은 목소리에 안도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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