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ollective@서울(6) : AI 매터스 편집장 공인희 님
10월 17일 오후 3시 50분, 공인희 님이 근무하는 함샤우트 글로벌 사옥에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사옥 맞은편에서 공인희 님을 기다리고 있자니 사옥을 드나드는 직원들이 보였습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들. 전형적인, '야근을 한 얼굴들'이었습니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시간을 들여 일에 몰입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제안서 시즌이라 그래요."
몇 분 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이 풍경을 이야기하니 공인희 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근무했고 AI로 사업계획서나 IR 자료를 잔뜩 작성해 본 저로선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AI가 엄청난 효율성을 가져다준다지만 여전히 제안 문서의 뾰족함을 만드는 데는 작성하는 사람의 진땀이 필요하니까요.
AI Collective@서울 커뮤니티의 멤버인 공인희 님은 함샤우트 글로벌에서 AI 기획본부장이자 'AI 매터스'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5년간 PR과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2009년부터 이 회사에 다녔고, 12년쯤 일하다 몸이 지쳐 그만뒀습니다. 그만둔 후에는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컨설팅과 실무를 병행했습니다.
그러던 2022년 말, 함샤우트의 대표님이 그녀를 다시 불렀습니다. 이런 말과 함께요.
"다시 돌아오세요. AI로 뭔가 하고 싶은데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초대장을 받아 든 공인희 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그때까지 챗GPT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냥 여러 AI 중 하나려니 했어요. 근데 대표님은 달랐어요. '이건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기술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대표님은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블록체인 시장이 뜨거울 때도 그랬고, AI가 등장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공인희 님은 고민 끝에 돌아왔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재미있어야 하거든요."
돌아온 후 그녀가 처음 한 일은 회사 내부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전체 업무 환경을 점검했습니다. 오래된 프로그램,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데이터, 흩어진 업무 프로세스 등이 대상이었습니다.
회사가 여러 번 이사하고 조직이 바뀌면서 체계가 무너져 있었거든요.
"대표님이 이미 AI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내부에서 경진대회도 하고 워크숍도 하셨어요. 근데 그걸 체계적으로 진행하려면 '구조'가 필요했죠."
이 작업을 시작한 뒤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사람들의 업무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요.
"생성형 AI 기술을 사용하라고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면 제대로 효과가 나오지 않아요. 내부적으로 AI 발전 속도에 맞춰 기본적인 이해, 활용 방법에 대해 전사적 교육과 워크숍, 실습, 경진대회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회사 내부의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분해했습니다.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어느 단계에 어떤 AI를 써야 하는지 정의했습니다. 제안서를 쓸 때는 어떤 챗봇을 만들고, 어떤 스크립트를 짜야하는지 정리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감각으로 일을 해요. AI랑 협업하려면 일을 분절시키고 체계화해서 어디에 무슨 일을 하게 할 것인지 이성적인 정의가 필요하거든요. 우리 회사가 올해 한 해 동안 한 게 그거였어요."
이 과정에서 'AI 매터스'가 탄생했습니다.
AI 메터스는 단순한 AI 뉴스 매체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AI 리포트와 논문을 수집하고, 한국 기업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리포트와 논문은 중요한 정보지만 언어나 분량 문제로 모두가 접하기 힘들어요. 잘 검색되지도 않고요. AI를 활용해 이런 정보들을 읽기 좋게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빠르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맥락화'였습니다.
글로벌 리포트가 말하는 'AI 활용'과 한국 중견기업이 직면한 'AI 도입'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반나절에 8건 정도의 리포트를 정리할 수 있어요. AI가 없으면 불가능한 수준의 생산성이죠. 근데 이 생산성이 일을 줄인 건 아니에요.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진 거죠."
AI 매터스는 '정보 플랫폼'으로 정체성을 잡았습니다.
기성 매체들처럼 취재하고 관계를 맺는 대신, 정보 자체의 유용성에 집중했습니다. 실용적인 AI 뉴스, 글로벌 리포트 발굴, 통찰력 있는 분석을 통해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AI 메터스의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조사했더니 '개인 스터디' 목적이 가장 많았어요. 현재 생성형 AI의 소비는 개인이 주도하거든요. 이를 더 잘 쓸 수 있게 해주는 정보를 알리는 'AI 관련 정보 플랫폼으로서의 방향성'에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들고 있습니다."
AI 메터스가 주목을 받으며 이전부터 진행하던 AI 관련 기업 교육도 더욱 열기를 띠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은 AI를 도입하고 싶어 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공인희 님은 그런 기업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선 만나서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무슨 일이 반복되고, 어떤 일이 정형화돼 있고, 어디서 병목이 생기는지 진단해요. 그리고 돌아가서 그 직무에 맞는 교육을 만듭니다."
교육 현장에서 그녀는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5~6년 차 이상의 경력자들, 혹은 기업의 임원과 대표들이 주 대상이었습니다. 신입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교육에서 주로 하는 얘기가 '축하드린다. 여러분들은 AI로 날개를 달 수 있다'예요. 도메인 지식이 있으니까요. 근데 신입들에게는 너무 안타까운 사회가 돼버렸어요. AI를 썼다고 하면 'AI가 했는데 너는 뭐 했냐'가 되고, 안 쓰면 '왜 안 쓰냐'라고 소리를 듣죠.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제가 아는 한 대형 광고 회사 팀장의 이야기를 공유했습니다.
팀원들은 ChatGPT로 기획안을 뚝딱 만들고 퇴근합니다. 팀장은 그 기획안을 손수 '도자기 빚듯이' 다듬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하는 자기는 AI를 안 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자기 빼고 팀원들은 다 AI를 쓰고 있고, 위에 임원들은 시대에 뒤처지면 안 된다고 열심히 AI를 공부하고 있대요."
회사마다 AI와 만나는 풍경이 다릅니다.
어떤 곳은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었고, 어떤 곳은 그냥 챗GPT 유료 계정만 나눠줍니다. 어떤 팀장은 AI 활용에 적극적이었고, 어떤 팀장은 직접 쓸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팀장급들은 정리된 걸 바탕으로 판단하고 지시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역할이 크다 보니, 실제로 ChatGPT랑 채팅할 일이 실무자들에 비해 적어요. 근데 꼭 본인이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팀이 AI를 쓰면서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 체계를 만드는 게 중간 리더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죠."
한국 기업들의 전반적인 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보안 때문에 쉽게 AI 툴을 내재화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그런 일들은 여전히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거죠."
그래서 (다행히) 제안서 시즌이 되면 사무실은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AI를 내재화 해서 각 팀들이 체계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진 만큼 기업에 제안할 수 있는 있는 일이 다양해진 까닭입니다.
최근 공인희 님은 AI 매터스의 트래픽 화면을 보다가 멈춰 섰습니다. 퍼플렉시티와 챗GPT, 제미나이를 통한 유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퍼플렉시티는 지난 4월부터 꾸준히 유입 순위를 높여서 구글과 네이버 다음으로 높은 유입을 기록하고 있어요. 포털 트래픽은 살짝 떨어지고 있고요."
'제로 클릭'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링크를 클릭하지 않습니다. AI가 답을 바로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기업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더 이상 포털에서의 노출만으로는 부족해요. AI가 검색 결과를 요약해서 보여줄 때 우리 브랜드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SAO(Search AI Optimization) 설루션을 만들었습니다. 바이브 코딩으로 직접 만든 브랜드 분석 도구였습니다.
"사람들이 AI에서 검색했을 때 나오는 브랜드의 노출을 데이터화하고 있어요."
그녀 자신도 이미 네이버 검색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네이버 쓸 때는 식당 리뷰 볼 때예요. 후보지는 AI에게서 받고, 그 식당의 방문자 리뷰를 보러 네이버에 가는 거죠."
그가 걱정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AI 관련 정보의 번역자로서 그녀가 만든 콘텐츠의 원문을 AI 때문에 아무도 읽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글로벌 리포트를 정리해서 콘텐츠를 만들잖아요. 그럼 사람들은 그 콘텐츠를 AI로 요약해서 봐요. 원래 리포트도, 우리가 쓴 글도 읽지 않게 되는 거죠. 그럼 우리가 만든 콘텐츠는, 요약된 부분을 뺸 나머지가 군더더기 되는 거잖아요?"
AI 덕분에 콘텐츠를 만들기가 쉬워지다 보니 콘텐츠의 공급 과잉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예요. 영상 만들기가 쉬워지면서 경쟁은 엄청 심하고 만드는 사람은 너무 많아졌죠. AI로 블로그 작성 자동화를 통한 수익 실현에 대한 강의도 많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포스팅도 많아요. 이러다 보니 가치 있는 콘텐츠가 오히려 노출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AI 매터스는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도 오픈했습니다.
링크 4: AI Matters l AI 전문 정보 플랫폼 유튜브
가치 있는 콘텐츠는 결국 필요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웹 트래픽과 함께 채널 구독자 확보가 중요한 목표입니다. 영향력을 키워야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의 문제는 저작권을 비롯해 AI로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공통적이고 명확한 규정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직은요.
이런 혼란한 시기를 비관적으로 봐야 할까요? 그녀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봅니다. 그녀의 두 자녀는 초등학생입니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받습니다. 댓글 다는 법, 딥페이크 판단하는 법, 사진 함부로 옮기지 않는 법과 같은 내용을 말이죠.
"어른들조차 잘 모르는 걸 아이들은 이미 교육받고 있어요. 애들이 훨씬 더 제대로 인식하게 되는 거죠. 이런 교육은 전 세대에 이루어져야 해요."
인터뷰 막바지에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AI 도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요?"
"지구력과 인내심이요. 기술을 내부에서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든 끊임없이 누군가가 리더십을 가지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교육하는 것이 중요해요. 2~3년 AI를 써온 우리 회사 직원들도 여전히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합류해요. 그럼? 재교육, 재교육, 또 재교육이죠."
인터뷰가 끝났을 때 카페 밖으론 가을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인희 님은 저녁에 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참 바쁜 사람입니다. 내일도 그녀는 새로운 AI 관련 리포트들을 읽고 새로운 정보를 생성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겠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 필요한 정보를 다듬어 공유하는 일. 그것이 AI 시대의 정보 번역자, 공인희 님이 하는 일입니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