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ollective@서울(7) : F&B 전문가 안대선 님
안대선 님은 AI Collective@서울 멤버로 F&B 전문가입니다.
커뮤니티 모임에서 만난 그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진지함'과 '몰입'입니다.
그가 궁금해 링크드인 그의 프로필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맞아준 건 투박하게(?) 적은 사명서였습니다.
그의 글을 보다 보니 이 사명서는 십수 년 전에 적은 내용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다짐이나 목표를 적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 글을 현재 자신의 대표 프로필 이미지로 올려놓는 건, 흔치 않은 일일 겁니다.
궁금해졌습니다. 그 젊은 사명서는 현재의 그의 인생에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영향을 끼쳤을지가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이는 안대선 님입니다.
11월 5일, 연차를 내고 건강검진을 받고 온 안대선 님과 금빛 낙엽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던 숭실대 교정에서 만났습니다.
2010년 8월, 호주 마가렛 리버. 안대선 님은 와이너리에서 포도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졸업하고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했어요. 처음 두 달만 어학연수와 홈스테이 잡아두고 계획 없이 떠났습니다."
호주의 퍼스, 카플란 어학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둘과 함께 마가렛 리버로 이동했습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달 정도 낚시하며 지내다가 드디어 일이 잡혔어요. 와이너리에서 포도나무 가지 치는 일을 했습니다."
일을 구하기 위한 '한 달'은 결코 편안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전화번호부를 보며 농장이나 와이너리에 일자리가 있는지 전화를 돌렸고, '건장한 한국인 3명, 전원 군필'이라고 우리를 소개했습니다. 영어가 부족해 서빙 일은 불가능했고, 몸 쓰는 일밖에 할 수 없었죠. 매일 전화하고 직접 찾아가며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한 달 만에 구한 건 빠른 거예요. 운도 따랐던 것 같습니다."
몸을 쓰는 노동. 그 경험은 그에게 명확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몸 쓰는 일을 하면서 앞으로 '몸 쓰는 일을 직업으로는 못 살겠다'는 깨달음을 또다시 얻었어요."
사실 이 깨달음은 한국에서 이미 겪었습니다. 호주에 체류하기 전, 더 과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교 졸업 후 4년제 대학 진학에 실패해 노동부 산하 전문학교에 갔어요. 사실 고교 때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영어도 ABC 정도?"
한 전문대의 호텔경영과에 진학한 그는 1학기를 보내며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한 학기가 지나니까 저와 친하게 지내던 학생들이 하나둘 학교에 안 나오기 시작했어요.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암기'라는 단순한 공부법으로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이 출제 예상 문제를 알려주시면 그걸 통째로 암기하는 방식으로 1학년 1학기 평점 4.5를 받았습니다. 졸업 때 학점은 4.4였어요."
영어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학교 내 IH(International House) 어학원에서 회화를 처음 체계적으로 배웠고, 방학에는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처음 '공부가 재밌다'는 걸 알게 됐죠."
전문대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홍제동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하우스맨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거·운반 같은 육체노동을 한 달 정도 해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또렷해졌어요."
3개월 동안 공부에 집중해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편입에 성공했습니다.
"편입 전후로 이동 시간까지 쪼개 2년간 공부 루틴을 돌렸고, 호주에서도 책을 잔뜩 가져가 계속 읽었습니다."
그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외국어 공부에 쏟아부었습니다.
"외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글로벌 기업의 CEO가 되고 싶다는 생각, 또 UN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외국어를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주대 졸업 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가게 됐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시 2010년 8월 25일, 호주 마가렛 리버로 돌아옵니다. 이때 안대선 님은 '사명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할 일이 지식습득인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고 습득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 난 평생 공부를 하며 살 것이다. 일을 하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을 하고 싶다.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얻은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것은 내가 할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사명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커리어 로드맵까지 상세히 그렸습니다.
"글로벌 기업 → 동남아 HQ → NUS(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석사 → 결혼 → 미국에서 부장 → 50대 CEO… 이런 식으로요."
왜 이렇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을까요?
"어릴 때 본 만화 <시마과장>의 영향이 컸어요. 직급별 성장 서사를 그린 이야기들이요."
일본 만화 <시마과장>은 평사원에서 시작해 사장까지 올라가며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안대선 님은 그런 서사를 생각하며 자신의 미래 커리어 로드맵으로 그렸습니다.
"<시크릿> 같은 책을 읽고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도 갖게 됐고요. 싸이월드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고 관계가 이어지는 경험을 하며 그 믿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2011년 2월, 안대선 님은 카페베네 해외사업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그 시작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카페베네 입사는 카페베네 청년봉사단 인연이 계기였어요. 추가서류로 대학교 때 만들었던 커피 프레젠테이션을 냈고, 그걸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2009년 11월,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카페베네 매장에서 '청년봉사단 1기 모집' 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카페베네가 주최하는 해외 봉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지원했고, 21명의 봉사단원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습니다.
1년 뒤, 해외사업부 신입 채용 면접에서 그는 준비한 무기를 꺼냈습니다.
"면접 때 비장의 무기로 '10년 뒤 카페베네 해외본부장'으로서의 포부를 담은 '사명서'를 들고 갔죠. 그렇게 해서 두 명을 뽑는 면접에서 최종 합격했어요."
입사 후 그의 여정은 특별했습니다. 그는 무려 13개 부서를 거쳤습니다.
"이후 점포개발 → 마케팅 → 해외업무 준비팀 등으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첫 배치는 점포개발이었습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국내 점포개발팀에 배치돼 영업 현장을 체험했어요. 서울지역 200개 매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입지조건, 매출 등을 파악했죠. 힘들었지만 해외매장 오픈 업무를 맡기 위한 발판이 될 거라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어요."
점포개발에서는 한 달간 200개 매장을 돌았습니다.
"한 달간 200개 매장을 발로 뛰며 입지 감각을 익혔고, 물건 선별·올리기 등을 하며 성과를 냈습니다."
이후 5개월간 마케팅팀을 거쳤고, 2011년 10월 해외업무준비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이후 사내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해외업무 준비팀으로 이동해 베트남·중국 리서치/발표를 했죠."
그의 태도는 명확했습니다.
"해외사업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했어요. '안 되면 말지'라는 태도로 기회가 보이면 지원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부서를 거쳤을까요?
"결과적으로 제 커리어에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점포개발에서 입지를 배우고, 마케팅에서 브랜딩을 익히고, 직영 운영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해외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안대선 님은 꾸준히 사명서를 실천했습니다.
"세 번의 큰 결심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2013년 결심한 '독서'입니다.
"'100일 100권' 도전 등으로 독서량·독서노트 루틴 확립을 결심하고 실천했습니다."
2013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해 1년에 150권을 독파했습니다.
두 번째는 2014년의 석사 대학원 진학이었습니다.
"휴넷 MBA 6개월 과정을 수강하고 동시에 세종사이버대 대학원에도 진학했어요. 한창 해외 출장이 많은 시기였지만 온라인 강의라서 가능했죠."
당시 하루 일과는 이랬습니다.
"아침에 2시간 공부, 새벽에는 1~2시간 과제를 하고요. 사이버대 강의는 오프라인 저장 시청이 가능해서 출장 가는 비행 중에 소화했고요. 그렇게 업무와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한참 업무가 바쁜 시기였지만 그는 의무가 아닌 석사 논문을 쓰고 박사 과정까지 도전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카페베네 매장에서 직접 서비스스케이프 설문·분석해 논문 완성했어요. 논문 때문에 출장을 갈 수는 없으니까 자비로, 휴가를 내서 인도네시아에 가 매장에서 설문을 돌렸어요.
세 번째는 2016년 박사 대학원 진학이었습니다.
"2016년 석사 대학원 '경영인의 밤'에서 박사 과정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정말 박사 과정 지원했고 2020년에 졸업했죠."
2017년 12월 5일, 카페베네는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100만 불 수출의 탑'을 받았습니다. 2012년 미국 1호점 이후 15개국으로 진출한 성과였습니다. 안대선 님은 해외사업팀장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100만 불 수출의 탑을 받던 2017년, 공교롭게도 카페베네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사업 다각화로 지출이 과다해지며 2017년 대표이사 교체, 이후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6개월 간 급여 미지급 상황에서도 해외 파트너 대금과 회사 재무 사이에서 도리를 지키려 버텼습니다."
법정관리를 졸업했지만 2018년 3월, 그는 결국 카페베네를 떠났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다고 판단한 뒤였습니다.
카페베네를 나온 뒤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카페베네 해외사업 시절 맺은 인연들이 다음 커리어로 이어졌습니다.
"말레이시아 카페베네 회장님 회사에서 2년, 사우디 카페베네 회장님 회사에서 약 1.5년간 원격 근무, 한국 법인에서 6개월. 그렇게 F&B 업계에서 계속 일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F&B 업계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말레이시아 카페 매장들은 운영이 어려워졌고, 그 뒤 사우디 카페베네 회장님의 일을 한국에서 원격으로 맡아했습니다."
그 시기를 안대선 님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어디나 배울 건 많다는 걸 실감했어요. 스타트업 경영기획팀장, 사우디 회사 중국 소싱–샘플 컨펌–가격–선적 등 처음 하는 일들을 빠르게 흡수하며 스펙트럼을 넓혔죠."
그리고 2022년 4월, 메가커피에 입사하며 카페베네와의 인연은 사실상 마무리됐습니다.
같은 해, 그는 결혼했습니다.
"2022년입니다. 2017년 법정관리 즈음 지금의 아내를 만나 오래 교제했고요."
결혼 후의 변화를 물었습니다.
"결혼 후 좋은 점은 생활 리듬과 정서적 지지입니다. 개인 시간은 줄었지만, 아내가 토요일/일요일 공부 시간을 보장해 주고, 가족과 함께하는 새로운 루틴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
2023년, 안대선은 메가커피에서 보나비(아티제 운영사)로 이직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자신의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링크드인이란 네트워킹 채널에서 올해 3월부터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는 실험으로 접근했습니다. 영화 리뷰도 써보고요. 한 달 정도 조율하며 포맷을 잡았죠."
그 결과 현재 안대선 님의 링크드인 콘텐츠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지금은 아내, 아이와의 이야기/F&B 이슈/살아온 이야기라는 세 가지 포맷으로 운영합니다."
왜 이렇게 나눴을까요?
"F&B 관련된 내용만 올리면 너무 딱딱해 보일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소프트한 콘텐츠, 그리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께 올립니다. 반응을 보면 이런 균형 전략이 맞았습니다."
형식에 대한 실험도 계속했니다. 단문에서 장문으로 글쓰기 방식을 바꿔봤더니 노출도가 2배 증가했습니다.
그의 링크드인 팔로워는 몇 달 만에 5,160명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운영하기 시작한 뉴스레터 '대선C의 카페 창업 A TO Z'의 구독자는 903명입니다.
업무와 병행하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콘텐츠를 운영할 수 있을까요?
"기획 업무를 하고 있어서 평일은 야근이 잦습니다. 링크드인 글은 출근길 30분 동안 씁니다. 1주일 치를 예약해 놓고 F&B 관련 핫이슈(예: 인수합병 등)가 있으면 바로 콘텐츠를 작성해 업로드합니다."
현재 그는 보나비 기획파트장으로 일하며, 링크드인 활동과 칼럼을 씁니다.
"다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허용된 시간을 꽉 채워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지만 틈나는 대로 공부, 독서, 링크드인 활동을 하고 글을 씁니다.
매일 링크드인 글을 쓰고,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칼럼을 씁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AI가 있습니다.
"뉴스레터/칼럼/외부 기고 아이디어 발굴·정리, 시장조사 초벌, 콘셉트 프레이밍 등에 도움을 받습니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줍니다.
"제가 하고 있는 외부 기고를 예로 들자면 '마케팅 4P 중 Product를 사칙연산으로 풀자'는 콘셉트로 기획을 했어요. 구체적으로 '더하기(원료·영양 추가) / 빼기(카페인·칼로리·저당) / 곱하기(콜라보) / 나누기(서브브랜드·라인업)'라는 프레임을 세운 거죠. 이렇게 기획을 잡으면 관련 시장사례 스캔은 AI로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게 가능합니다. 물론 최종 검증은 사람 몫이죠."
AI 덕분에 일의 효율이 달라집니다.
"인턴에게 3~4시간 시킬 만한 일을 AI는 금세 제공해 줍니다. 다만 깊은 맥락의 연결은 사람이 해야 해요."
실무적인 데이터 분석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 큽니다.
"가맹사업 정보공개서(공정위) 데이터를 보면 출·폐점, 계약 종료, 명의이전 등 정교한 지표가 있어요. 이런 정보의 분석은 엑셀로 뽑아 직접 분석하는 편이 오히려 더 빠르고 정확하더라고요."
그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AI는 빠른 동료입니다. 검증·조합은 사람의 역할입니다."
협업의 비율도 정리합니다.
"결국 사람이 30%를 개입한다는 걸 전제로 프로토콜을 짜면, AI가 나머지를 든든히 메워줍니다."
2025년 8월, 안대선은 AI 콜렉티브@서울 초기 멤버로 합류해 현재까지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AI의 활용이 초반엔 '검색을 위한 채팅 수준'이었는데, 다양한 멤버들이 합류하면서 그들이 공유하는 체인 오브 사고나 노트북 LM + 슈퍼프롬프트(사내 프롬프트 가이드북 내재화) 같은 AI 활용 방법들이 신선했고, 저도 스스로 공부를 하니 그룹 토의의 흡수력이 확 올라가더군요."
멘토의 영향도 컸습니다.
"이중대 대표님 덕을 많이 봤어요. 스캔→OCR→요약 같은 작업 파이프라인이 업무 효율화에 도움이 됐습니다."
커뮤니티의 리더인 이중대 대표는 15년 전 한경 PR 아카데미 시절 그의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 쓴 사명서 지금도 실천이 되고 있을까요?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공부, 기회 제공, 지식 공유, 강연. 하지만 방법은 진화했습니다.
평생 공부와 기획의 제공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통해 실천합니다.
지식의 공유는 출근길 30분 루틴을 통해 링크드인을 운영하며 진행합니다.
사명서는 고정된 목표가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면 도구가 바뀌고 방법이 바뀝니다.
하지만 '왜'는 변하지 않습니다.
2025년 11월, 서울 어딘가. 안대선은 여전히 매일 아침 출근길 30분, 링크드인 글을 씁니다.
15년 전 호주 마가렛 리버에서 포도나무 가지를 치던, 천막에서 솜이불을 덮고 자며 '몸 쓰는 일로는 못 살겠다'라고 깨닫고 펜으로 사명서를 쓰던 그 청년의 이야기는 이제는 AI와 협업하며 5,166명에게 닿습니다.
13개 부서를 거치며 목표를 향해 달리던 안대선 님은 이제 AI 시대를 달리고 있습니다. 사명서를 들고.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