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SET, GO.

영화 <스프린터> 후기

by nohhmadic

같은 출발선 다른 인생

영화 <스프린터>는 육상 100m 단거리 선수 3명의 이야기를 담은 스포츠 영화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돋보인다. 은퇴만 남은 신기록 보유자 No.4 ‘현수’, 최고의 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No.1 ‘정호’, 유망주였지만 팀 해체 위기에 놓인 No.3 ‘준서’가 국가대표 선발전 스타팅 라인에 서기까지의 시간을 보여준다. 같은 출발선을 두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뛰는 선수들. 하지만 그들의 인생, 그들이 처한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들의 인생이 담긴 ‘10초’에 얽힌 조력자들은 육상 선수의 레일이 홀로 달리는 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미묘하게 연결된 이들의 관계가 그 이상의 자극적인 갈등으로 번지지 않고 각자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더욱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10초에 담긴 인생, 10초가 가져다줄 인생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면접을 볼 때 내 인생을, 혹은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1시간도 안되는 시간 안에 보여줄 수 있는가. 이들에게는 단 10초가 주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한다. 어떠한 ‘비법’이라든지 ‘팁’이랄 것도 없이 지금껏 달린 것처럼 정직하게 달려야 한다. 하지만 역시 절대적인 시간은 매우 짧고 결국 분명한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진다. 어떠한 핑계나 사정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초시계 속 숫자가 그들의 삶을 대변하게 된다. 그 안에는 10개월이 담겼을지, 10년이 담겼을지 혹은 더 오랜 시간이 담겼을지 알 수 없지만.


“네 인생이 달렸어. 10초 안에.”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열정과 노력이 사그라들지 않는 자에게는 대게 성공적인 결말이 따른다, 영화에서는. 하지만 <스프린터>는 영화지만 영화가 아니다. 현실의 장벽이 꿈을 가로막는다. 큰 사건이나 갈등이 덮쳐오기보다는, 일상 속 스며들어 있는 밀착된 장애의 연속이다. 현실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쉽사리 성취가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의지가 인생을 험난하게 만들고 좌절감을 주기도 한다. 다행히 이들의 조력자와 그 관계가 ‘영화스러운’ 전개를 만들어낸다. 길에서 훈련을 마치고 밤늦게 들어온 현수를 아내 ‘지현’이 마주했을 때, 지현의 눈이 이제 그만 포기하자는 말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현은 자신과 함께 하길 제안한다. 재능을 믿고 연습을 게을리하던 준서는 육상부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자 갑자기 훈련에 몰입한다. 코치를 맡았던 ‘지완’은 그런 준서의 재능과 의지를 믿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선수 3명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오랫동안 꿈을 놓지 못하고, 재능을 믿고 발전을 소홀히 하다 후회하고, 부담감에 짓눌려 부당한 방법을 취한다. 같은 목표를 두고 같은 출발선 앞에서 자세를 잡지만, 결코 같은 목표와 같은 출발선이라고 할 수 없다. 레일을 홀로 뛰지만 홀로 뛰지 않는다. 이들의 트랙 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조가 응축되어 있다. 또한 육상 선수의 삶과 그 조력자의 삶에서 현실을 포착하게 되는 것은 결국 그 인물에게 나의 모습을 투영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울면서 끝난다”

준서가 훈련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육상부 폐지를 앞두고 혼란스러워진 지완이 건넨 말이다. 물론 지완 역시 자신에게 놓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만 준서에게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의 꿈이자 목표를 이미 경험한 사람이 말하는 공허함이 주는 허탈감. 과연 나라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길을 계속해서 바라볼 수 있을까. 여기에 준서는 방황하는 대신 더 적극적인 도움을 청하고 달린다. 결국 울면서 끝나더라도 일단 출발선에 서서 달려야 한다. 어쩌면 이런 열정이 현실의 장애물을 무력화시키고 조력자마저 이끌리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예상할 수 없는 타인의 인생과 성공을 위해 나의 인생을 포기하고 희생할 수 있을까.


때로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뜨거운 열정이 독이 되고 병이 되어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한다. 정호는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위협감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비뚤어진 절실함은 결국 스스로를 추락시킨다. 부당하게 자신의 열정과 욕심을 지켜가는 정호의 선택에 화가 나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모순적인 도덕성을 들킨 기분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했지만 결국 약물 사용을 숨겨주려 한 코치 ‘형욱’의 심경도 비슷했을 것이다. 현수는 부적절한 행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꿈이 일종의 짐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누군들 끝까지, 될 때까지 해보고 싶지 않으랴. 코치 혹은 지도자로 전향한 동료들과는 달리, 여전히 선수로서의 삶을 열망한다. 꿈을 포기할 줄 알고, 놓아주어야 하는 시기를 아는 것이 현실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더욱 외로운 싸움이 된다. 운동선수만의 고민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꿈이 짐이 되고 독이 되는 순간까지의 열정은 과욕이자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가능성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리고 4위로 선발전을 마무리한 반전 없는 결과.


정호의 도핑 테스트 결과 연락을 통해 현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 성취의 감동과 정호의 좌절을 제시하지 않는다. 특히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물 현수의 극적인 결말이지만, 오히려 꿈의 마지막을 직감한 눈물로 마무리하며 감동과 여운을 짙게 남겼다.


불가피한 한계를 겪으면서도 현수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그 열정을 응원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력자 지현 덕분에 그 꿈은 더욱 단단해지고 선명해질 수 있었다. 사실 ‘연대’ 하지 않았다면 어중간한 결과와 함께 실력을 최대로 발휘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은 준서와 지완, 정호와 형욱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어려움이 상쇄되듯, 같이 만들어 감으로써 마침내 꿈을 이루어 낸다. 물론 지완의 말처럼 그 꿈 안에서 웃지 못할 수 있다. 이후의 미래는 다시 각각의 인생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자 결과로, 당장의 성과가 모든 것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적’이고 ‘비현실적’인 결말일지라도 분명한 것은 ‘출발선’에 서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명백히 우리는 살면서 무엇이 되었든 포기해야 할 순간들을 직면한다. 그 가치와 현실 사이의 줄다리기에서 어느 쪽의 승리가 정답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목전에 둔 꿈에 대한 뚜렷한 열정과 ‘함께’할 수 있는 조력자가 있다면 조금은 용기 내어도 되지 않을까. 현실에서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을 꿈꾸려면 일단 출발선에서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결국은 울면서 끝나더라도.


READY, SET,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