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영국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이탈리아, 피렌체
“피렌체 하면 두오모 지붕만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이탈리아에 특별한 로망이 있거나, 해박한 지식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부지런한 정보 수집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나는, ‘피렌체(Firenze)’ 하면 크고 붉고 둥근 ‘두오모(Duomo)’ 지붕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 하나, 이탈리아가 아닌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한때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에쿠니 가오리’를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이라면 붉은색 <냉정과 열정 사이>를 펼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어 짝꿍 책인 파란색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다가 ‘츠지 히토나리’의 글에 더 매료 되어 그의 다른 소설들을 몇 권 찾아 읽었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일본 소설 특유의 염세주의적인 느낌이 무료해져 일본 소설 자체를 멀리하게 되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내용도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 내내 이별한 남녀가 단 한 번도 얽히는 사건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담담한 전개와 절제된 감정이 결말을 향해 차곡차곡 쌓여 응축된 소설 속 ‘피렌체 두오모’의 상징성이 너무도 강렬해서 시간이 이렇게 지난 후에도, 또 한 번도 피렌체를 가 본 적 없는 사람(나)에게도,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짙은 감상을 남겼다. 스산하고 아련한, 붉고 둥근 피렌체.
아이러니하게도 두오모만 보면 된다했던 우리는 피렌체에서 3박을 했지만 그 기간 중에 ‘두오모’ 위에 올라가보지 못했다. 그 옆 ‘조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에 올라 두오모 지붕을 바라보는 것도 하지 못했다. 부활절 연휴로 인해 여행객이 많기도 하고, 부활절 주말에는 이틀 동안 두오모 관람이 불가능 했기 때문에 피렌체에 머무는 기간에 예약가능한 시간이 없었다. 부활절 핑계를 댔지만, 결국 미리 준비를 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니 누구를 탓하랴. 어쩔 수 없이 피렌체 다음 여행지인 베네치아(Venezia)를 구경한 후 남쪽으로 내려 가는 길에 피렌체에 다시 들러 두오모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피렌체에서 머무는 며칠을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것, 이외의 것들에 썼고, 덕분에 나는 이제 ‘피렌체’ 하면 더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 피렌체에 가면 ‘티 본 스테이크’ 먹는 거라며?!
“책은 무사히 부쳤어. 지금은 어디쯤이야?”
꼭 읽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어 이탈리아로 여행오기 전 한국의 친구에게 해외 소포를 부탁했었다. 한국 우체국에서 전산으로 선택하여 입력하는 주소란에 나의 영국집 주소가 찾아지지 않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무사히 발송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친구는 나의 여행 일정을 물어왔다.
“응, 고마워. 로마랑 피사 봤고, 이제 피렌체로 갈거야.”
“오~, 피렌체 너무 좋지. 가면 나 대신 ‘티 본 스테이크’ 먹어줘.”
“응?? 어… 그래.”
몇 년 전 엄마와 함께 40일이 넘는 긴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피렌체를 그리워하며 ‘티 본 스테이크(T-bone Steak)’를 부탁했다. 아련한 피렌체에서 갑자기 웬 ‘티 본 스테이크’인가 싶었지만, 이미 피렌체 여행을 다녀온 경험자이자 나의 ‘만능정보통’인 친구가 의미 없는 말을 할 리는 없을 것 같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검색창에 ‘피렌체 티 본 스테이크’를 치자 피렌체 여행에서 ‘티 본 스테이크’를 먹었다는 여행 블로거들의 경험담이 쏟아졌다.
“와~ 여봉봉! 피렌체가 ‘티 본 스테이크’로 유명했네! 알았어?”
“진짜? 전혀 몰랐어. 그럼 먹으러 가야지.”
“우리 스테이크 먹을 거야? 야~ 맛있겠다!!”
신대륙을 발견한 듯 놀라움을 표현하며 스테이크 시식 일정을 잡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육식소녀’라는 별명을 가진 딸이 자동차 뒷자석에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아니, 로마에서 스테이크를 안 먹은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나 좋아하는 딸이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는 이탈리아로 온지 며칠만에 피자와 파스타가 지겹다고 했다. 그러나 딸아, 아직 갈 길이 멀었단다.
앞서 얘기했듯, 피렌체는 ‘티 본 스테이크’로 유명하다. ‘티 본 스테이크’ 자체가 피렌체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주 피렌체의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는 손에 꼽히게 유명하다고 한다. 어쩌다 피렌체는 ‘티 본 스테이크’로 유명해졌을까. 남편이 차를 운전해 피렌체로 다가가는 동안, 나는 피렌체의 ‘티 본 스테이크’ 유래에 다가갔다.
피렌체 지역에서 제공하는 여행 가이드에 따르면, ‘티 본 스테이크’는 메디치(Medici) 가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메디치가는 성 로렌초(Lorenzo)의 축일(8월 10일)을 기리기 위해 피렌체 시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였는데, 많은 시민들에게 줄 많은 양의 소고기를 도시 광장에서 구웠다. 도시 광장에 고기를 굽기 위해 피운 엄청난 불과 무료로 제공되는 고기,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파티로 이 행사는 매우 유명해졌으며, 당시의 상황이 문서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여기서 피렌체의 ‘티 본 스테이크’가 유래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와, 교과서에서 본 메디치가가 ‘티 본 스테이크’랑도 관련이 있는 거였어?!”
피렌체의 ‘티 본 스테이크’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고 나자, 피렌체에서 ‘티 본 스테이크’를 먹는 것이 단순한 여행지의 맛집 탐방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경험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역시 지역을 대표할 정도의 특색 있는 것들은 나름의 배경이 있고, 이렇게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것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동시에 비싼 물가의 이탈리아에서 더욱 비싼 스테이크를 먹는 것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소문대로 피렌체의 ‘티 본 스테이크’는 정말 엄청났다. 일단 기본 주문 단위가 1kg에서 1.5kg으로 양이 엄청나다(참고로, 통상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테이크가 150g~180g이다.). 두께도 5~6cm 정도로 엄청 두껍다. 무엇보다 엄청난 것은 그 굽기 정도이다. 피렌체식 ‘티 본 스테이크’는 ‘레어(Rare)’가 기본인데, 우리는 조금 더 익혀줄 것을 부탁했다. 그럼에도 실제로 받은 스테이크는 겉만 노릇하게 익힌 거의 붉은 생고기에 가까웠다. 이렇게 먹는 것이 피렌체의 전통이고, 이보다 더 익히면 질겨지기 때문에 많은 피렌체의 ‘티 본 스테이크’ 전문점들 중에는 오로지 ‘레어’로만 주문을 받는 곳도 있다. 피렌체에서 제일 유명한 티 본 스테이크 전문점 ‘알오스떼(Dall’Oste)’에서 처음 먹은 티 본 스테이크가 너무 맛있어, 한 번 더 찾은 현지인 혹은 유럽인들의 비율이 높아 보이는 다른 스테이크 전문점에 갔을 때 그곳은 단호하게 ‘레어’에서 조금이라도 더 익히는 것을 거절하며, 그 이상 구워진 스테이크를 원하거든 다른 종류의 스테이크를 주문하라고 권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방식대로 구워 나온 ‘티 본 스테이크’는 거의 육회, 혹은 소고기 타다끼를 연상시켰다.
‘레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솔직히 처음 시뻘건 스테이크가 나왔을 때 꽤 당황했다. 이 정도로 안 익힌 고기를 진짜 먹어도 되는지 살짝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스테이크가 올려진 스톤팬이 뜨겁게 달궈져 있어 서빙 된 후에도 얼마간은 고기를 익혀주었고, 우리 마음에 깃든 두려움도 다소 누그러뜨렸다. 처음 서빙해 준 그대로 먹어보기도 하고, 살짝만 더 익혀서 먹어보기도 하고, 조금 더 많이 익혀서 먹어보기도 한 결과, ‘티 본 스테이크’는 피렌체 전통 방식대로 덜 익힐수록 연하고 맛있었다. 그것도 지금껏 먹어 본 스테이크를 통틀어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역시, 전통이 괜히 전통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 본들 밥 한 끼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한 끼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길게 쓸만큼 피렌체의 티본스테이크는 인상적이었다. 스테이크의 강렬한 외형과 맛도 일품이었지만, 이 생고기 덩어리가 메디치가와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딱딱한 미술 교과서에서 접했던, 고상하게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귀족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르네상스의 부흥에 힘 쓴 돈 많은 가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들은 성스러운 날에 통 크게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를 무료로 베풀어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이 피렌체란 지역사회의 기둥 같은 존재였나 보다. 호화로운 가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문으로 인식이 전환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의 사회적 책임은 현재에도 남아 멀리서 피렌체를 찾아 온 지친 여행자들의 체력을 생각해 엄청난 양의 스테이크를 먹도록 권하고 있지 않은가(먹을 거 권하는 사람이 최고다!). 피렌체로 오는 길에 인터넷에서 찾아 읽은 한 외국 칼럼의 문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It’s not Florentine history if the Medici aren’t involved in one way or another.’
:) 우피치 미술관에 부는 <봄>바람
그러나 ‘티 본 스테이크’가 아무리 맛있어도, 메디치가 하면 ‘예술’일 것이다.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진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곳, 피렌체에는 ‘우피치(Uffizi) 미술관’이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오기 전부터 올해 한국 나이로 11살이 된 딸이 삼 일이 멀다하고 ‘이탈리아에 가면 정말로 우피치 미술관에 갈 거냐’고 지겹게 묻고, 또 묻던 ‘우피치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에서 ‘우피치(Uffizi)’란 이탈리아어로 사무실이란 뜻이다. 메디치가가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하여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안에 전시된 예술작품들도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작품들을 피렌체에 기부하여 마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기부를 할 당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인상 깊은 것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피렌체 혹은 이탈리아 외부로 반출이 불가하다는 조건이었다. 한때 어겼다가 지금은 법으로까지 정해 두었다는 이 마지막 메디치가 후손의 조건 때문에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예술작품들은 꼭 피렌체에 가야만 볼 수가 있다.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진심과 사회적 기부, 명석한 조건이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피렌체로 불러 피렌체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지, 메디치가는 정말 피렌체를 사랑했나 보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가문의 사무실답게 우피치 미술관은 그 건물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는데, 처음 들어서면 바라보게 되는 복도부터 대단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특히 직선으로 쭉 뻗은 천장의 나무 장식과 그림은 반대편 복도 끝의 소실점을 향해 빨려 들 듯 것 같았다. 그러나 나무 장식의 부드러운 곡선과 전체적으로 베이지톤을 띄는 그림의 아늑한 색감이 직선이 갖는 고압적인 느낌을 부드럽게 감싸 단단한 안정감을 주었다.
복도에서부터 이미 감동을 받은 우리는 본격적인 그림 감상이 시작되고 얼마 후, ‘진짜 감동’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봄>을 만났다.
본 적 있는 그림이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급하게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은 ‘그리스로마 신화’ 책에도 삽화로 들어가 있었고, 그보다 전에 더 크고 화질이 좋은 도록에서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그림이 이렇게 큰 그림인 줄 몰랐다. 이렇게 우아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그림인지도.
그림의 가운데 서 있는 미의 여신 ‘비너스’의 옷과 손동작, 몸의 곡선에서 봄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양 옆에 있는 요정들의 곁에는 봄바람이 머물며 옷깃을 살랑였다. 그림의 전체적인 배경이 숲 속이기에 어두운 색이 사용되었지만 결코 무겁지 않았고, 천지 사방으로 흩어진 꽃들 때문에 숲 속은 포슬포슬한 느낌마저 주었다.
“어, 그런데 저기 옆에 사람은 왜 혼자 시퍼런 색깔로 험악하게 그려져 있지?”
“사람 아니고, 서풍의 신이야. 요정 클라리스랑 결혼하고 싶어서 저러고 있는 거래. 비너스 왼쪽에 있는 요정 셋은 황금의 사과를 지키는 요정들이야. 내가 전에 황금사과 얘기해 준 거 기억하지? 헤라랑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서로 자기가 최고의 여신이라고 싸우게 한 사과 말이야.”
어린이 그리스로마 신화를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은 딸은 그림 속 인물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읽는 책에 이 그림과 설명이 나온다며 그 후로도 줄줄이 보티첼리의 <봄>이 품고 있는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된 그림이 나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입꼬리가 실룩실룩 움직이는 딸은 미술관에서 늘 무지한 엄마와 아빠를 일깨워주는 우리 가족의 ‘도슨트(Docent)’였다.
이어서 보틸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마주한 딸은 너무 좋아 입이 귀에 걸렸다. 꼭 보고 싶었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역시나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비너스가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 이 그림은 그 중 어떤 장면에 대한 것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쉼없이 나왔다.
“엄마는 <봄>이랑 <비너스의 탄생> 중에 뭐가 더 좋아? 나는 <비너스의 탄생>!”
“엄마는 <봄>이 좀 더 좋아. 엄마 저 <봄> 그림 진짜 너무너무 좋은데, 나중에 커서 돈 벌면 엄마 사 주면 안돼?”
딸이 어이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엄마, 이탈리아 밖으로 못 나가게 법으로 정해 놨다잖아. 그리고 이걸 나한테 팔겠어?!”
몇 년 전이었으면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자기가 크면 사주겠다고 했을 텐데, 2개 사주겠다고 했을 텐데, 안 되면 직접 그려서라도 주겠다고 했을 텐데. 이제 많이 커버린 딸은 나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꼬맹이 딸이 언제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고, 미술관을 즐기고, 다른 나라의 법 준수를 고려할 정도로 컸나 새삼 놀랐다.
이후에도 딸은 입구에서 받은 미술관 안내서를 보면서 보고 싶은 그림을 찾아 다녔고, 복도에 세워진 동상들을 주의 깊게 보며 신화 속 인물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즐겼다. 어느새 자신의 기호를 쌓아가는 딸이 무척 오고 싶어했던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앞으로 내게,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근사했던 보틸첼리의 <봄>,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큰 딸의 모습을 발견한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나의 농담을 농담으로 되받아 칠 줄 모르고 정색하며 엄마를 훈계하는 딸의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그후로도 계속 딸에게 <봄>을 사달라고 조르는 무지몽매한 농담을 던졌다. 나에게 이런 저런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주저 없이 들려주는 ‘아직 어린 딸’과 함께 하는 따뜻한 봄날이 조금 더 길게 남아 있으면 좋겠다.
:) 그래도 피렌체하면 두오모지!
그래도 피렌체하면 두오모다. 다만, 직접 나의 발로 찾아가서 만난 피렌체의 두오모는 소설과 영화, 또 사진에서 흔히 접하던 붉고 둥근 지붕의 ‘아련함’ 보다는, 피렌체 시내 어디서나 잘 보이고, 골목 멀리 있어도 길 끝을 꽉 채우는 존재감을 줄 정도의 ‘거대함’이었다.
피렌체에서 제일 처음 만난 ‘두오모’는 우피치 미술관 창문을 통해 본 그림액자 같은 모습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지붕들 사이에 봉긋 솟아 있는 두오모의 지붕은 ‘아, 내가 피렌체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딱 내가 생각하던 아련하고 그윽한 느낌의 두오모였다. 우피치 미술관 옥상 카페에 앉아 두오모 지붕을 배경으로 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은 간지러운 감성을 더욱 자극했다.
다음날, 소문의 피렌체 ‘티 본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두오모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좁은 골목과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가는데 마지막 길을 꺾는 순간, 우리 가족은 동시에 단전에서부터 튀어나오는 탄성을 질렀다.
“우와~~~~~”
눈 앞으로 뻗은 길의 끝을 꽉 채우고 있는 두오모. 그러나 아직 그 자신의 일부 밖에 보여주지 않은 두오모. 걸음을 내디딜수록 점점 커지는 두오모의 존재감에 압도될 것 같았다. 우리가 선 길이 마치 오래된 나무 문의 열쇠 구멍처럼 작게 느껴지고, 그 구멍 사이로 두오모가 우리를 가만히 응시하는 듯했다.
‘너의 영혼은 지금 이 두오모를 마주할 자격이 있느냐.’
오랜 세월 피렌체의 사람들은 이 길을 오며 가며 두오모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종교가 전부였던 과거의 사람들은 이 두오모의 시선을 얼마나 두려워 했을까. 남을 해치고 자신을 망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두오모의 시선이 닿는 이 길 위에 서는 것이 죽음보다 끔찍했으리라. 그것이 그 시절 종교의 역할이자 도시의 가운데 자리잡고 마을의 중심이 되는 성당의 존재 이유였다.
그러나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멀리 바라보는 두오모는 아름답다. 복잡한 고민도, 짜증나는 일도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 쬐는 풍경 속에서 다 녹아 내릴 것 같았다. 잔잔한 넓은 도시에 파고를 던지는 두오모는 경쾌하기까지 했다. 두오모가 없는 피렌체 시내 전경을 상상해 보았다. 붉은 지붕이 감각적인 피렌체는 그래도 어여쁘겠지만, 조금 심심하다. 역시 피렌체는 두오모가 있어야 피렌체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의 전경 앞에서 8살 아들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을 받을 줄 아는 조숙함이라면 좋았겠지만, 4월의 미켈란젤로 언덕은 아들에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러지를 일깨워주었다. 아들은 한국에서 송진가루가 날리는 5월경이면 안과를 찾을 때가 있었으나, 며칠 전 로마의 소나무 밭, 등꽃나무 아래서도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피렌체의 무엇이 알러지를 일으키는지, 피렌체에 도착한 후 조금씩 눈이 간지럽다고 눈을 비비던 아들은 약국에서 안약을 사서 넣고 난 후 안정을 찾는 듯 하더니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3보1안약’을 요구했고, 언덕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는 안약도 소용이 없어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동네 뒷산이었으면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아들 손을 잡고 내려왔겠지만, 남편과 나 모두 이번 생에서는 한 번 뿐일 피렌체였기에(이탈리아에 다시 오진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우는 아들을 달래 가며 모질게 언덕 끝까지 올라갔다. 불편해 하는 아들 걱정과 이미 난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음에도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와 두오모는, 아들의 고난의 길을 달래가며 올라올 가치가 있다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니 봄철 알러지가 의심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안약을 챙겨올 것을 당부한다.
마지막 두오모는 이미 예고된 대로, 베네치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만난 두오모의 돔 위, 그리고 성당 옆 ‘조토의 종탑’ 위에서 바라본 두오모였다.
봄철 미켈란젤로 언덕에 이어 여기서도 한 가지 당부의 말이 있다. ‘두오모 돔’과 ‘조토의 종탑’에 오를 수 있는 티켓은 유효기간이 3일이니 절대 하루에 다 오르지 말자. 혹 일정상 하루에 다 올라야 한다면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이렇게 나눠서 오르자. 그리고 한 살이라고 젊을 때 오르자.
두오모의 돔과 조토의 종탑에 오르는 길은 각각 400개가 족히 넘는 계단을 숨기고 있다. 특히 두오모의 돔은 계단이 구간 별로 직선형, 회전형, 곡선형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롤러코스트급으로 경사진 구간에서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면 조금 무서울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계단을 만날 때 쯤이면 이미 너무 지쳐서 무서움을 느낄 체력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이탈리아 남부로 내려가는 중에 잠시 들른 터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는 돔과 종탑을 연이어서 올라야 했다.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이십 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하이힐이 망쳐 놓은 나의 무릎 관절이 두려움과 힘겨움에 달달 떨었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구분되지 않은 좁은 계단을 줄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안 그래도 가쁜 숨을 더욱 차오르게 만들었다.
그래도 무릎 관절 통증과 가쁜 숨을 참고 올라선 정상의 풍경은 충분한 보상이 되어 주었다.
특히 돔의 상층부, 내부 난간에서 올려다보는 돔의 천장화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의심케 했고, 이렇게 높은 천장에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상상하자, 어떤 뛰어난 도구를 지지대로 썼건 간에, 이 공간의 높이와 넓이가 주는 공포심으로 오금이 저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괜찮았을까, 종교의 힘으로 모든 것이 극복되었을까, 공포심을 극복하느라 줄어들었을 그의 수명은 어찌되었을까, 누군가의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종교적 성취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을까, 종교를 위한 것이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메웠다. 피렌체에 오기전 보았던 바티칸 시티의 천지창조 천장화 아래에서 느낌 감정보다 더 격정적인 것은, 천장화 구성의 완결성과 그림의 완성도를 떠나, 내가 당장에 서 있는 이 피렌체 돔이 무서우리만치 크고 높기 때문이었다.
돔의 정상으로 나가면, 당연한 소리지만 ‘만인의 옛 연인’ 같은 아름다운 두오모의 붉고 둥근 지붕은 볼 수가 없다. 바로 내가 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두오모 지붕이 있어야 피렌체이므로, 돔 정상에서 바라보는 뷰가 살짝 ‘앙꼬 없는 찐빵’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굳이 돔 정상에 오르지 않고, 이 돔의 지붕을 바라볼 수 있는 ‘조토의 종탑’에만 올라가는 현명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치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예매 페이지에서 ‘돔’이라는 글자만 보고 덥석 ‘풀 패키지(돔 + 조토의 종탑 등등)’ 티켓을 구매해 버린 우매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돔 위에서 ‘탁 트인 시야’로 바라보는 피렌체의 전경은 돔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워, 올라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뒤 이어 ‘조토의 종탑’의 전망대를 오른 후에 더욱 확고해졌다.
조토의 종탑 계단은 두모오 돔에 오르는 길만큼 힘겹지는 않았다. 대신 정상에 올라서 보는 전망도 돔 위에서 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바로 옆에 나란히 있는 두 건물인데 무슨 차이가 날까 싶겠지만, 조토의 종탑에는 사면을 빙 둘러 철망이 쳐져 있다.
안전을 위한 장치이겠으나, 모눈종이처럼 작은 사각형으로 선이 그어진 피렌체의 전경을 상상해보라. 두오모의 돔 지붕이 아무리 어여쁜들 새장에 갇혀서는 아름답다 느끼기가 힘들었다. 더욱이 그 상태로는 고대했던 돔 지붕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을 마음도 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최대한 철망에 밀착시켜 간신히 돔 지붕이 담긴 피렌체 전경 사진만 하나 건져 다시 높은 계단을 내려왔다.
마지막 두오모 방문까지 다 완료했다. 피렌체 하면 ‘두오모’이듯 피렌체에서 두오모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내가 유일하게 피렌체 하면 떠올리는 장면이었으며, 어쩌면 가장 기대했을 ‘조토의 종탑’ 위 두오모가 가장 실망스러웠다는 점은 아이러니 하다.
이제 피렌체 하면 나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아련함 대신 압도할 듯 거대한 ‘두오모’의 규모와 날것 같은 형상의 ‘티 본 스테이크’가 준 충격, 피렌체의 곳곳에서 아직 살아 숨쉬는 메디치가의 사회적 책임, 보티첼리의 <봄>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생기 있게 그림 속 신화를 얘기해주던 딸의 작고 야무진 입술,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고난의 언덕을 걸어야 했던 아들의 눈물, 그리고 이탈리아 하늘에서도 동그랗고 밝게 떠올라 밤길을 밝혀주던 4월의 보름달과 달빛 아래를 거닐던 우리 가족의 걸음이 생각날 것 같다. 아마도 오래 전의 소설은 피렌체 연상 이미지 100위쯤으로 밀려나지 않았을까.
여행은 들을 수도 있고, 읽을 수도 있지만 직접 걷고 부딪히는 여행만큼 개인적이고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접 떠나고 싶어 하나 보다. 비록 이 여행이란 녀석은 복불복적 성향 또한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에겐 ‘사랑의 이태리’가 나에게는 도시 하나를 떠날 때마다 미션을 클리어 하듯 후련함을 주는 ‘버거운 이태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다른 나라를 향해 또 떠날 것이다. 버거워도, 이제 ‘피렌체’ 하면 생각나는 ‘나만의 피렌체’가 있기 때문에.
[유한한 영국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이탈리아, 피렌체 – ‘이제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것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