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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지 Jun 28. 2022

[이탈리아 여행] 비가 내려 더욱 비극적이었던, 폼페이

[유한한 영국 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이탈리아, 폼페이



  멸망한 고대 로마의 도시, 화산재에 뒤덮인 도시, 방탕과 사치로 신들의 노여움을 산 도시, 폼페이(Pompei). 로마 귀족들의 휴양 도시로써 호화로움의 절정을 누리다가 돌연 폭발한 화산에 하루 아침에 도시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시의 극적인 운명 덕분에, ‘폼페이’이는 세계 역사에서 멸망한 도시 중 가장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사라지던 순간만큼 극적으로 역사 뒤편에 묻혔다가 1,500년만에 다시 지층 위로 나타난 폼페이는 늘 그 운명을 담은 극적인 수식어들을 달고 소설, 영화 등의 소재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푹 빠진 첫째 아이 역시 자신이 읽는 책에 언급된 전설 같은 도시 폼페이를 무척 고대했다. 거기다 한국에서 읽었던 어린이 판타지 소설 <마법의 시간 여행> 시리즈 중 주인공 남매, ‘잭’과 ‘애니’가 ‘베수비오(Vesuvio) 산’이 폭발하던 날의 폼페이로 시간 여행을 떠나, 마법미션을 완수하고 아슬아슬하게 화산 폭발 직후, 재로 덮이기 전의 도시를 탈출하는 이야기를 무척 몰입하여 읽었기에 한층 가깝게 느껴지는 폼페이였다.

  그러나 이 도시의 극적인 운명처럼, 또 지금까지의 이탈리아 여행처럼 우리의 폼페이 탐험기도 평탄하지 않았다.


  아말피 해안을 뒤덮은 먹구름은 그 뒷동네 폼페이에까지 주둔해 있었다. 일기예보 상으로 아말피 해안은 그날 오후부터 강수확률도 줄고 차차 갤 예정이었으나, 폼페이는 종일 비, 그것도 강수확률 90%의 비.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폼페이 >


  예고대로 우리가 폼페이에 도착했을 때,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심심하면 비가 오는 영국의 날씨 덕분에 비를 맞으며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폼페이 유적 앞 작은 가게에서 우산 대신 일회용 비옷을 가족당 하나씩 사 입었다. 부석부석, 걸을 때마다 서로 쓸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다 다른 색깔의 알록달록한 비옷을 입은 서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 각자 다른 색깔을 골라 알록달록한 '우비 가족' > 



  폼페이로의 시간 여행을 시작할 입구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매우 거세졌다. 비옷을 입고도 비 아래 서는 것에 주춤할만큼. 이런 비속에서 폼페이를 제대로 볼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고대한 폼페이가 바로 지척인데 물러 설 수 있나. 총알이 쏟아지는 적지를 향해 뛰어들 듯, 갑옷 같은 비옷을 꼭 붙들고 비장하게 고대의 도시 속으로 뛰어 들었다.


< 폼페이 입구에 다가가자, 비가 더욱 거세게 내렸다. >




  폼페이의 첫인상은 거대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할 때, 로마(Roma)에서 본 또 다른 로마 시대의 유적 ‘포로 로마노(Foro Romano)’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그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포로 로마노 옆에 어마어마한 위용으로 서 있는 콜로세움(Colosseum)을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로마’라는 도시 안에 현대적 건물들과 나란하게 서서 특별한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과거의 광장과 원형극장이 주는 시공간의 대비감도 물론 매우 인상적이지만, 고대의 도시가 마을 전체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광활한 폼페이는 시공간의 대비감을 넘어 시공간을 잊게 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1,500년 전 폼페이의 광장과 신전, 길, 집 등을 짓는데 쓰여진 돌로 만든 벽과 기둥, 바닥 들뿐. 이곳에서 폼페이는 과거를 복구한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폼페이, 폼페이 그 자체다.


< 마을 전체가 남아 있어 '거대한' 유적지, 폼페이 >


  생명을 소생시키는 봄비가 폼페이의 돌벽과 돌바닥, 돌기둥을 ‘토독토독’ 두드려 깨웠다. 그러나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폼페이의 돌은 빗물에 짙어 진 색갈처럼 짙은 슬픔에 젖어 있는 듯했다. 비구름이 가득한 회색 배경은 폼페이의 거대한 슬픔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비옷의 거추장스러움과 이마를 타고 흘러 내려 빗방울이 시야를 가리는 불편함을 빼면, 그날의 흐린 날씨는 멸망한 도시의 운명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장치였다. 음울함이 어울리는 폼페이. 폼페이는 그것이 품은 비극적 이야기처럼 무겁고 우울했다.


  광활하고 거대하고, 음울한 폼페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면, 다음은 보다 가까이 다가가 구체적인 요소로써의 폼페이의 모습, 공간 하나하나의 의미를 탐험할 차례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난관에 봉착한다.

  폼페이는 과거의 도시가 화산재에 묻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하지만, 사실 화산재의 뜨거운 열기와 충격, 긴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많은 부분이 어그러졌고, 발굴 시 출토된 물품들은 박물관으로 옮겨져 따로 전시되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의 폼페이 유적 자체에는 ‘공간’만 있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를 봐도 돌, 저기를 봐도 돌. 오래 전 영광의 그 시절에는 필시 ‘무엇’이었을 그곳들이, 지금은 돌을 쌓아 만든 경계로 구분된, 그러나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텅빈 공간일 뿐이었다. 그러니 쓱 보기만 해서는 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심하게는 넓은 복합단지를 짓다가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서, 토대를 쌓고 벽을 반쯤 올린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고 떠나버린 폐부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 이리저리 보아도 다 비슷비슷한 공간과 돌벽 >


  폼페이를 제대로 여행하려면 그 공간 속을 채워 넣어야 했다. 각자가 품고 있는 폼페이에 대한 정보와 상상으로. 광활하고 황량한 폼페이는 보는 이가 내면에 폼페이를 얼마나 품고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의 우리가 폼페이로 여행을 올 시간까지는 어떻게 빼 볼 수 있지만 폼페이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사전에 다 품고 오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폼페이를 여행할 때는 가능하면 꼭 가이드 투어를 하라고, 그렇게 먼저 다녀온 여행 블로거들이 추천하였구나. 혹, 향후에 폼페이 유적지로 여행을 떠날 사람이 있다면 선배들의 말씀을 ‘꼭꼭꼭’ 명심하여 가이드 투어로 여행하기를 바란다. 아니면 사전에 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가기를. 단순히 폼페이를 검색하면 인터넷에 나오는 일반적인 설명 말고, 폼페이 유적지의 지도를 펴 놓고 대표적인 장소들의 위치까지 알아보고 가기를 권한다. 이왕이면 그 장소들의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알아 두자. 이것은 가이드 없이, 사전 공부도 하지 않고 불나방처럼 폼페이로 뛰어들었던 유경험자의 회한이 담긴 당부이다.

  우리 역시 가이드 투어를 하고 싶었으나, 폼페이 한국어 가이드 투어는 로마에서부터 폼페이로 이동하는 교통편까지 패키지로 묶여 있는 것만 있었다. 아마도 로마 여행을 하는 중에 폼페이로 당일 여행을 오는 수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폼페이 남쪽 아말피 해안의 포지타노에서 폼페이로 직접 운전을 해 바로 이동할 예정이었기에 한국어 가이드 투어를 이용할 수 없었다. 몰론 로마-폼페이 왕복 교통비용을 버린다고 생각하고, 우리만 폼페이에서 합류하는 것을 문의했다면 가이드가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헛돈을 써 가면서까지 가이드 투어를 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는 쉽게 생각했다. 더하여 어른들 중심일 가이드 투어를 어린 우리 아이들이 잘 따라 다닐 수 있을지, 특히 환락의 도시였다는 폼페이의 일부 설명이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신 유용한 정보를 찾았다. 폼페이에 공식적인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지만, 유튜브(Yutube)에 인터파크 투어와 한국관광공사가 함께 제작한 ‘폼페이 오디오가이드’가 있다는 것이다. 약 36분 가량 되는 이 오디오 영상(‘안전여행 오디오가이드 박물관 및 유적지 편 ‘유럽-폼페이’)은 폼페이란 도시의 개괄적 설명으로 시작하여, 입구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동하며 폼페이 유적 내 중요한 장소와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 유튜브에서 찾은 폼페이 오디오 가이드 (사진 출처 : 유튜브 화면 캡쳐) >


  “와, 이거 진짜 좋다. 어차피 우리가 엄청 깊이 있는 여행을 할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수준의 설명이면 훌륭하지.”


  우리는 유튜브에서 찾은 폼페이 오디오 가이드에 매우 만족하며 폼페이 유적 관람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난관에 봉착하는데, 그칠 생각 없는 비 때문에 핸드폰을 밖으로 꺼내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의 비옷 안으로 핸드폰을 넣으면 비를 맞지 않는 대신 아이들에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듣고 설명해 줄게!”


  그러나 곧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폼페이 유적 초입의 한 길로 된 좁은 입구를 지나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바실리카(basilica), 아폴로 신전, 포로(Foro) 등등이 연이어 쭉 펼쳐지는데, 그때부터 위치 설명을 잘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어디어디의 옆쪽’, ‘어디어디의 뒤쪽’, 또 ‘어디어디의 서쪽’ 등등의 설명만으로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텅 빈 광활한 마을터에서 특정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폼페이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지도와 유적지 내 표지판을 참고하여 길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대부분 이탈이아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읽어주는 한국어 명칭 혹은 한국식 외국어 발음으로 된 명칭은 지도와 표지판의 글씨와 잘 매칭되지 않았다.


< 폼페이 사이트에서 다운 받은 공식 지도 >


  게다가 여전히 계속 내리고 있는 비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는 것도 힘겹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비는 영국의 비처럼 부슬부슬 흩뿌리지도 않고, 오락가락하지도 않았다. 영국살이를 하며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고, 그래서 잘 쓰지도 않는 우산을 사는 게 아까웠고, 여행짐을 늘리고 싶지 않기도 했고, 유적지 안을 돌아다니기에는 우산보다 비옷이 편하리라는 등등의 나름의 고찰을 거친 비옷이었는데, 안일하게 비옷만 사고 우산을 사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 순간이었다. 우산 값을 아끼려다 비싼 핸드폰이 고장 나게 생겼다.

  어딘지 모를 곳의 처마 밑에서(포로의 한쪽 끝에 위치한 곡물 계량소였다!) 비를 피해 인터넷 검색을 시도했다. 유튜브 오디오가이드 정보를 소개했던 블로그에서는 함께 보면 좋을 지도가 있다고 설명했었다. 그 블로그에 지도가 함께 올라와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나니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찾았다. 우리가 찾으려고 했던 지도는 아니었으나 우리보다 앞서 폼페이를 다녀온 부지런한 여행자가 폼페이 유적 위에 대표적 장소의 명칭을 한국어로 적어 둔 약식 지도였다.


  “예~~~ 이제 이 지도를 보면서 오디오 가이드 따라가는 거야!”


  그런데, 이럴수가… 지도가 틀렸다. 지도에서 ‘공중목욕탕’이라 표시한 곳으로 찾아가 그에 해당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려는데, 아무래도 설명과 그 장소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어딘가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럴 만한 공간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 지도를 그려서 올려 둔 사람 역시 잘못된 정보로 ‘자신만의 폼페이’를 보고 간 듯하다(이러니 가이드 투어 안 하려면 미리 공부 많~이 해야한다는 거예요!!).

  이번에는 포로의 아치형 기둥 밑으로 들어가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폼페이 유적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폼페이 초입에 있는 ‘포로(Foro)’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길 눈이 밝은 남편도 다 똑같아 보이는 공간 속, 비구름이 해를 가려 방향 감각도 사라진 하늘 아래,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를 이탈리아어 표지판과 그에 맞지 않는 오디오 명칭으로는 쉽게 길을 찾지 못했다.

  더욱 가열찬 탐색 끝에 마침내 찾아낸 공중목욕탕은, 닫혀 있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에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실내 공간은 출입을 막아 둔 듯했다(왜 닫혀 있는지 자세한 설명이 안내되어 있지도 않았다.).


< 가열찬 검색으로 마침내 찾은 공중목욕탕, 닫혀 있었다. >


  그 다음부터는 솔직히 살짝 끈을 놓아버렸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알려주는 내용을 듣기만 할 뿐. 솔직히 설명하는 장소를 찾아가도 막혀 있는 곳들이 많아 잘 보이지도 않았고, 보여도 역시나 그냥 텅 빈 공간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굳이 꼭 해당 장소를 찾아서 듣지 않더라도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려주는 고대 로마의 사회/경제 상황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했다.

  특히 ‘곡물계량소’에서 발견된 다양한 크기의 구멍을 통해, 당시 로마가 농사를 지었다는 것, 상거래가 존재했다는 것,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되 공정한 경제체제를 위해 공적 감시가 이루어졌다는 것 등의 사회의 다양한 부분을 추론하는 부분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작은 부분에서 그렇게 많은 정보를 추론해 내다니!! ‘무’에서 ‘유’를 이끌어내는 고고학자, 또 역사가들, 그들이야말로 합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사라진 세상을 끌어내는 진정한 상상력의 소유자들 아닐까.


< 폼페이의 곡물계량소 >



  빗물이 찰박찰박 밟히는 돌길을 따라 계속 걸어 가는 중에 ‘파우노의 집(Casa del Fauno)’을 만났다. ‘파우노의 집’은 폼페이 유적 내 가장 큰 저택 중 하나로, 정원의 물받이 수조에서 춤추는 ‘파오노 동상’이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집이라고 한다. 일부러 지도를 찾지 않아도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에 딱 맞춰 마주친 집이 반가워 유심히 설명을 듣고 집을 구경하고 있는데, 딸이 어쩐지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다가와 말했다.


< 폼페이에서 가장 큰 주택이라는 '파우노의 집' >


  “엄마!! 이 집… <마법의 시간 여행>에서 잭이랑 애니가 마법 미션이었던 ‘어떤 책’을 가지러 들어 왔던 집이랑 비슷한 거 같아!”


  가만히 책 내용을 떠올려 보니, 정말로 그랬다. 정원에 있는 춤추는 동상과 물받이 수조, 그리고 전반적인 집의 구조가 소설에서 설명한 집과 흡사했다. 아마도 그 책의 작가는 이 집을 뼈대로 삼아 화산 폭발이 일어나 사라지기 전의 크고 근사한 집을 지었나 보다. 그리고 그 집에 마법 세계에서 일어나는 위험을 막을 책을 숨겨두고, 베수비오 산이 폭발하기 직전 그 책을 찾아내야만 하는 어린이들의 모험을 상상했으리라.

  고고학자들의 합리적 상상력으로 끌어낸 세상에 작가들의 창조적 상상력이 더해져 시간이 멈춘 폼페이는 끊임없이 시간 여행을 한다. 이곳에서 자신이 읽은 책 속의 집을 떠올린 아이 역시 한국에서 모험 가득한 책을 읽던 순간으로, 그 이야기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 눈을 반짝이며 파우노의 집을 특별하게 둘러 보았다.


< 이전에 읽은 소설 속의 폼페이 집이 떠올라 더욱 정겨운 '파우노의 집' >


  이후로 다시 쭉쭉 걸어, 폼페이의 주요 대로 중 하나인 ‘아본단차 대로(Via dell' Abbondanza)’ 위에 섰다. 크고 매끈한 돌들을 잘 다듬어 만든 곧게 쭉 뻗은 넓은 길이 보기에도 시원했다. 이 길 위로 얼마나 많은 마차가 물자와 사람을 싣고, 폼페이를 풍요와 향락으로 채웠을까. 이 대로 저편 어디쯤에 있다는 ‘집창촌’이 이 도시의 번화하고 방탕하고 향락적인 면모를 더욱 여실히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그곳에 굳이 아이들과 함께 온 우리의 발길까지 더할 필요는 없겠지.


< 포로와 이어지는 아본단차의 끝 지점, 저 비석이 이 길 너머로는 더 이상의 마차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시이다. >


  마지막으로 로마인들이 무대 예술을 즐긴 소극장과 대극장, 원형극장을 둘러 보았다. 이런 저런 과학적이고 지혜로운 극장 구조에 대한 설명이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들려 왔지만, 우리 말고도 여행객들이 많아 소리를 질러 소극장의 울림을 느낄 수도 없고, 대극장 무대 앞에서 떨어뜨린 동전 소리가 맨 위층 관객석까지 들리는지 시험해 본들 들릴 리도 없었다.


< 폼페이 대극장 >
< 폼페이 원형극장 >


  대신 마침내 그친 비와 물러가는 구름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폼페이의 극장과 거리를 마치연극 무대처럼 극적으로 비추었다. 1,500년전의 사람들이 즐기던 공연은 사라지고, 그들이 공연을 즐겼던 사실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폼페이란 무대.


< 비구름이 물러가고 드디어 파란 하늘이 보이는 폼페이>


  부석거리는 비옷을 벗고, 파란 하늘처럼 개운한 기분으로 다시 폼페이 초입의 포로로 돌아왔다.비 그친 포로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오전보다 한결 밝다. 음울함이 어울리는 폼페이라도, 역시 여행할 때는 날씨가 맑아야 편하고 즐겁다.



  먹구름과 안개가 옅어 진 넓은 포로(Foro) 너머로 베수비오 산이 나타났다. 오전에 한창 비가 내릴 때는 잘 보이지도 않던 베수비오 산이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베수비오 산이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고, 그렇게 큰 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도시를 뒤덮었다 생각하면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조금 더 이해가 된다고 했다.

  우리가 본 날의 베수비오 산 역시 어마어마해서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산 중턱부터 어마어마하게 몰려든 구름이 하늘까지 닿도록 가득 차올라 베수비오 산의 정상이 어딘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화산 폭발을 재연하듯 짙은 구름에 휩싸인 베수비오 산 >


  폼페이까지 와서 도시 하나를 하루 아침에 파묻어 버린 ‘대단한’ 베수비오 산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꽤 아쉬웠다. 저 멀리 거대한 연기 같은 잿빛 구름이 베수비오 산을 빙 둘러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던 폼페이 최후의 날의 베수비오 산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뼈대만 남은 빈 터에서 1,500년전의 도시를 끌어올린 고고학자와 작가의 상상력에 감화된 내 미천한 상상력의 발로인지, 구름에 가려 진 베수비오 산의 아쉬움을 달래는 위로인지. 구름 화산이 폭발해 다시 비를 뿌리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 잊지 말라는 당부의 손짓 같은 빨간 꽃, '포피' >


  폼페이 출구로 향하는 길 주변의 잔디 위에 빨간 ‘피(Poppy)’가득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귀비로 불리는 이 포피는 유럽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꽃이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폐허가 된 땅에서 피어난 꽃. 꽃 중심의 검은 수술은 총알을 상징하고, 수술 주위로 피어난 빨간 꽃잎은 피를 상징한다고 한다. 세계가 멸망한 듯 폐허가 된 자리에서 전쟁의 상흔을 일깨우며 피어난 빨간 생명력. 많은 이들의 피가 뿌려진 그 위에서 생을 이어가는 남겨진, 또 새로 태어난 후대의 사람들이 과거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약속과 다짐의 꽃이다.

  멸망의 원인은 다르지만, 무너진 돌벽만 남아 오래 전의 화려했던 도시의 상흔을 보여주고 있는 폼페이 빈 터 위에 피어난 빨간 포피가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비에 젖어 한층 촉촉한 꽃잎을 하늘하늘 흔드는 바람에, 초록 들판 위 빨강이 더욱 생생하게 도드라졌다. 하루 아침에 사라졌지만 기어코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세상에 알려지고 싶었던 도시, 이 도시의 비극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의 손짓 같았다.


  마치 포피의 당부를 이어받은 듯, 폼페이 유적의 마지막 섹션은 한번 본다면 결코 잊지 못할, 참혹한 최후의 절규를 보여 주고 있었다. 갑자기 분출한 비극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뜨거운 화산재에 덮여 ‘찰나’의 모습으로 죽어간 사람들, 화산재의 열기에 녹아 형체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석고 모형.



  폼페이 유적을 처음 발견한 고고학자들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갑자기 맞닥뜨린 이곳에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대신 허물어진 구조물 사이 곳곳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빈 공간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겨, 그 빈 공간에 석고액을 흘려 넣어 굳혔고, 그 결과로 거대한 자연의 힘 아래서 순간의 모습 그대로 혹은 괴로움의 절규로 ‘박제’된 사람들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조물 사이의 빈 공간은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끼어서 녹아 내린 자리였다.

  폼페이에서 나온 사람 형상을 미라, 혹은 화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우리가 유리를 통해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시된 사람의 모형은 후대의 사람들이 석고로 재현한 형상이다. 1,500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건물과 집 터, 당시에 사용되던 갖가지 물건들은 충격과 세월에 망가지긴 해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많은 것들을 만든 ‘사람’은 이미 오래오래 전에, 서서히 잊혀질 권리도 얻지 못한 채 순식간에 사라져 빈 공간, ‘공허’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석고로 만든 형상일 뿐인데도 바라보는 것 조차 미안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특히 어린 아이와 임산부의 형상 앞에선 절로 눈이 감겼다.), ‘영원히 마지막 순간에 괴롭게 머물러 있을 사람들’을 뒤로 하고, 비가 내려 더욱 비극적이었던 폼페이를 떠났다.




[유한한 영국 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이탈리아, 폼페이 - '비가 내려 더욱 비극적이었던, 폼페이' 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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