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현지 Jun 29. 2022

이제 아름다운 바닷마을을 ‘나폴리’로 은유하진 못하리라

[유한한 영국 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이탈리아, 나폴리


  이제 로마로 이동해서 내일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면 길고 험난했던 이탈리아 여행이 끝난다. 원래 긴 여행의 마지막은 시원섭섭한 법인데, 이번 여행의 마지막은 시원시원했다.


  “그런데 바로 옆이 나폴리인데, 진짜 나폴리 피자를 안 먹고 가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로마로 출발하기 전, 남편이 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점검을 위한 질문을 건넸다. 아… 섭섭할 일이 남아있었구나.

 

  원래의 여행 일정에는 반나절의 나폴리 여행이 있었다. 그런데 부활절 연휴 인파로 여행객이 많이 몰리는 대도시, 로마와 피렌체의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피자’ 외에는 큰 기대가 없던 나폴리가 후순위로 밀려, 결국 반나절의 시간마저 반납하게 되었다. 나폴리의 치안이 좋지 않다는 말들이 많아, 굳이 넉넉하지도 않은 일정을 억지로 쥐어 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폴리 피자’를 생각하면, 이탈리아 남부까지 내려가서 나폴리를 지천에 두고도 나폴리 피자를 먹지 않고 돌아온 스스로를 과연 훗날의 내가 용납할 수 있을지. ‘피자’란 음식이 우리 나라에 소개되고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꽤 잘나간다 하는 번화가라면 ‘나폴리’를 넣은 피자집 이름이나 하다못해 피자 이름으로라도 하나씩은 꼭 있었을, 우리들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나폴리’ 아닌가.


  “지금 출발해도 어차피 로마로 가는 중에 저녁을 먹어야 할 테니, 그럼 나폴리에 가서 피자만 딱 먹고 바로 로마로 출발할까?”


  그렇게 로마로 향하던 길을 틀어 나폴리 도시 안으로 향했다. 





  나폴리에서 제일 유명하다, 제일 오래되었다, 제일 인기있다, 제일 특이하다 등등의 피자 집 정보는 많았지만, 차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ZTL(Zona Traffico Limitato, 도심내 차량 제한 구역,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이곳을 지나가면 벌금을 내야한다.)을 지나지 않고 접근이 용이한 피자집을 찾는 것이었다. 피자로써 세계를 제패한 나폴리인데 꼭 ‘제일 유명한’ 집을 찾아가지 않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도 맛이 있어야 진정한 피자의 도시라 불릴 수 있지 않겠는가! 적당한 위치의 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하고, 구글 지도에서 위치와 평점을 참고해 적당히 고른 피자 집을 찾아 나폴리 거리를 걸었다. 

  나폴리 도심을 보자마자 치안이 좋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칠이 벗겨지고 벽에 금이 간 낙후된 건물과 첫날의 로마 거리 보다 한층 더 많은 쓰레기가 나뒹구는(이게 가능하다니!) 길바닥, 시끄러운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경적 소리 등이 도시를 거칠고 무겁고 황폐하게 느껴지게 했다. 거기에 나폴리까지 따라온 우울한 회색 하늘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 거칠고 황폐한 느낌의 나폴리 거리 >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 항구를 찾아갔다면 나폴리에 대한 느낌이 달랐을까? ‘한국의 나폴리, 통영’이란 말처럼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를 수식하는 대명사로 들어왔던 ‘나폴리’의 분위기가 내가 지금껏 생각해 온 이미지와 너무나 달라서 당황했다. 옆을 스치는 사람들의 걸음이 거칠어서 당황하고,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운전이 난폭해서 또 당황했다. 


< 흔히 '한국의 나폴리'라 부르는 통영 사진 >



  다행히 피자는 맛있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국도의 어느 이름 모를 마을에 요기를 하러 찾아 들어간 어느 작은 중국집과 비슷한 느낌을 주던 피자 가게는, 겉멋을 쏙 뺀 정말 나폴리 동네의 소박한 피자 가게 같았다.


< 나폴리의 흔한 동네 피자 가게 >


  피자를 흔하게 먹는 이 사람들에게 동네 피자 가게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밥천국’을 향해 느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곳이 아닐까. 가격도 한 판에 4~5유로 밖에 하지 않는 피자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1인당 한 판의 피자를 통째로 앞에 두고, 8조각의 커팅 따위 없이 나이프로 썰거나, 손으로 뜯어서 먹곤 했다.


< 가격은 저렴하나 맛은 훌륭한 나폴리 피자. 기분이 서늘해도 맥주를 놓칠 순 없지. >


  조리 속도도 엄청나게 빠른 나폴리 동네 피자는 야들야들 윤기 나게 녹은 모짜렐라 치즈와 바삭한 빵 사이에 뜨끈하고 촉촉한 토마토 즙을 ‘찰박찰박’하게 품고 있었다. 한 조각을 들어 한 입 베어 물면, 토마토의 새콤함과 치즈의 짭쪼롬함이 뒤섞인 즙이 입 안을 적시고, 뒤를 이어 화덕의 불 향을 품은 빵이 고소함과 담백함을 더해 속을 든든히 채웠다.

  그러나 맛있는 피자를 먹으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서늘했다. 이 가게로 오는 길의 나폴리가 아름다웠다면, 아니 그냥 적당한 보통의 도시이기만 했어도, 이 ‘나폴리 피자’의 맛이 훨씬 정겹게 느껴졌을 텐데. 피자를 다 먹은 뒤, 이 가게를 나가면 다시 지나쳐야 할 음침한 나폴리 거리의 잔상이 피자를 먹는 중에도 자꾸 떠올라, 폼페이를 탐험하느라 점심도 건너뛴 허기진 배에서 식욕을 빠르게 앗아갔다. 결국, 1인 1피자를 완료하지 못하고, 몇 조각 남기고 일어섰다.


< 가게를 나오며 발견한 '베수비오 산에서 피자를 굽는 그림'. 역시 클라스가 남다른 나폴리 피자다. >




 

  피자를 먹으며 이상하게 서늘해지던 기분은, 로마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나폴리 도로를 빠져 나오는 중에 깜짝 놀랄 황당함으로 실현되었다.

  차를 타고 횡단보도 앞 신호대기 선에서 보행신호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였다. 내가 앉아 있는 보조석 방향 인도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긴 방망이를 치켜 들고 보조석 차 앞 유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악~~~~~~~~~~~”

  

  나는 너무 놀라 머리를 숙여 귀를 움켜쥐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질렀다. 남편도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서둘러 열어 둔 창문을 닫았다. 뒷자석에 앉은 아이들도 눈을 크게 뜨고 긴장했다.

  다행히 그 누군가가 우리의 차 유리를 부수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손에 든 것도 방망이는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차를 세차할 때 유리에 묻은 찌든 자국을 벗겨내는 유리청소용 긴 막대가 들려 있었다. 너무 갑자기 차 앞으로 나타나, 막대를 든 손을 치켜 들고 차 앞 유리 위로 막대를 뻗는 통에 내가 과하게 착각하고 겁을 먹은 것이다. 그러나 안 그래도 을씨년스럽게 느끼고 있는 험악한 도시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긴 막대를 들고 우리가 타고 있는 차로 성큼성큼 다가와 차 앞 유리를 막으면 누구든 당황하고 겁을 먹지 않겠는가!

  우리가 당황을 했건 말건, 그는 그의 일을 계속 했다. 비눗물이 묻은 스폰지가 달린 청소용 막대를 우리 차 앞 유리 한쪽 끝에 갖다 대고, 자신이 닦아 주겠다는 의사를 표정으로 나타냈다.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지만, 그는 ‘그러지 말고~’라는 듯한 아쉬움을 담은 제스처로 다시 한번 차 앞 유리에 스폰지를 댔다. 

  우리는 더욱 크게 손을 좌우로 흔들며, ‘N---O!!’라는 말이 차 밖으로 들리도록 크게 거절했고, 그는 손을 위로 으쓱 올리며 ‘왜 그래?’라는 듯이 우리를 어이 없게 바라보더니 옆 차선에 서 있는 차로 목표를 바꾸었다. 

  두번째 목표가 된 차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 지, 저항없이 차 유리를 닦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충 칠한 비눗물을 물로 씻어내지도 않고 스폰지 반대편의 납작한 고무로 걷어 내는 것으로 유리 청소가 끝났다.   

  ‘징~’ 운전석 창문이 열리더니, 유리를 닦은 청년의 손에 돈이 떨어졌다. 


< 도로에서 자동차 앞유리를 닦으며 돈을 버는 나폴리 청년들 >



  “와, 저렇게 신호대기 할 때 유리 닦아주고, 돈을 버는구나. 우리도 멋 모르고 가만 있었으면 돈을 줘야 했던 거네. 정말 돈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고, 돈을 뜯어가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총알처럼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다음 신호대기선에는 또 다른 무리의 청년들이 모두 차 앞유리 청소용 막대기를 들고 차들이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신호 대기 중인 우리 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와, 역시나 유리를 닦으려고 막대기를 뻗었고, 우리는 처음처럼 단호하게 거절했다. 차 유리 한번쯤 닦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비용이 뭐 그리 컸겠냐마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달려드는 그들의 방식이 썩 기분 좋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히 거절을 하는데도 사람을 놀리 듯이, 간을 보듯이 차 옆에 계속 서서 유리에 스폰지를 댔다 떼기를 반복하는 그들의 태도 역시 불쾌했다. 


  남편이 운전을 하는 사이 핸드폰으로 빠르게 검색했다. 나폴리 도로에는 그렇게 차유리를 닦는 청년들을 많이 있다고 했다. 청소용 막대기를 든 그들이 다가올 때 가만히 있으면 차 유리를 닦아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원치 않는다면 차 앞 유리 와이퍼를 움직이라고 했다. 아하! 그래서 두 번째 신호대기선에서 우리 옆 차선에 서 있던 차가 비도 오지 않는데 갑자기 와이퍼를 켰구나. 이상하다 생각했던 행동에 다 이유가 있었다. 나폴리 도로에서 통용되는 거절 방식인 ‘와이퍼’를 켜지 않으면서도 창문을 닦는 것을 거절하는 우리가 유리닦기 청년들 입장에선 또 나름대로 어이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싫으면 와이퍼를 켜면 되잖아?!’


  그러나 이런 비가시적이고 소소한 부분까지 이 나라 문화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 여행자가 미리 다 알 수는 없다. 한눈에 봐도 뻔히 여행자인 우리들의 거절을 알아챘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조롱하듯 비웃던 그들의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까지만. 

  처음 거리에서 차 앞 유리를 닦고 돈을 버는 사람을 보았을 때는 왜 저런 쉬운 방식, 또 다른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자 하나, 못마땅한 생각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들, 특히 대부분이 흑인인 청년들이, 한 둘도 아니고 무더기로 나와 거리에서 차유리를 닦으며 돈을 벌고 있는 것은, 그게 유행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젊은 청년들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나폴리라는 사회의, 넓게는 이탈리아라는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 오래 전부터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의 대명사였던 ‘나폴리’는 거칠고 지저분하고 을씨년스러운 겉모습 위로 열악한 사회적 모순까지 여실히 드러낸 채, 내 마음 속에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이제 나는 다시는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를 ‘나폴리’에 빗대어 부르지는 못하리라. 


  또 다시 차 앞 유리를 닦아 주겠다는 청년들을 마주칠까, 나폴리를 떠나는 차 바퀴에 속도를 붙였다. 

  마지막, 그것도 잠시 피자를 먹으러 들린 행선지까지 쉽지 않았던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 후련하고 또 씁쓸하게 마무리되었다.




[유한한 영국 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이탈리아, 나폴리 - '이제 아름다운 바닷마을을 ‘나폴리’로 은유하진 못하리라' 편 마침 & 이탈리아 여행기 마침.

매거진의 이전글 [이탈리아 여행] 비가 내려 더욱 비극적이었던, 폼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