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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지 Jul 13. 2022

이번 주말에 ‘기네스’ 마시러 ‘더블린'에 갈까?

[유한한 영국 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아일랜드, 더블린 ①


  지금은 ‘주5일 근무 제도(이하 ‘주5일제’로 통일)’가 당연하게 자리 잡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주5일제가 처음 도입되며 직장인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일주일 중 이틀을 쉬면서 다가올 새로운 한 주에 더욱 열정을 쏟기 위한 충분한 휴식과, 더 뛰어난 인재가 되기 위한 자기계발 기회를 얻었다는 건설적인 변화는, 아주 공감이 가진 않지만 우리에게 ‘주5일제’를 안겨준 기획자와 관계자들을 위한 ‘오마주’로 잠깐 언급하기로 한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있어 진짜 요긴한 변화는 토요일 근무가 사라지면서, 내 금쪽같은 휴가를 소진하면서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별도의 휴가신청 없이, 가까운 지역으로 금요일 밤에 여행을 떠나는 생활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두둥!! 


  이렇게 ‘주5일제’ 도입 초기의 의미를 되짚어보자니 내가 아주 옛날사람 같다. 나이를 꽤 먹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사실 나도 ‘주5일제’ 이전의 직장 생활에 대해서는 경험한 바가 없다. 동 제도가 점차적으로 기업에 도입되던 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를 했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들어간 회사는 이미 ‘주5일제’를 적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를 떠올린다한들 부장님들이 즐겨 찾으시는 쌉쌀한 ‘라떼’맛을 섞은 ‘주5일제’ 도입을 향한 환호의 기억은 없다. 

  대신 그 무렵 광화문 인근의 버스나 지하철 광고판 혹은 거리에서 무료로 배포되던 여행잡지 등에서 쏟아지던 ‘금요일 출발, 2박 3일 OO여행’ 같은, 짧은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는 여행상품 광고가 생각난다. 그때는 대학교 주변과 달리 광화문과 종로 등이 직장인들이 많은 곳이기에 직장인들의 지갑을 노린 여행 상품 광고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며 당시 금요일 출발 여행상품의 대표주자였던 모 여행사 ‘금까기’ 여행상품을 찾아보고서야 깨달았다. 그 시절의 ‘금요일 출발 여행’은 직장인들에게 허용된 확대된 자유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퇴근 후 금요일 밤에 출발해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 가능한 곳들은 보통 일본, 대만, 홍콩(마카오) 등등으로, 건사할 가족이 없이 제 한 몸만 챙겨 훌쩍 떠나도 되는 젊은 직장인들이 타겟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광고 속 여행의 느낌도 가볍고 자유로운 느낌이었는데, 말하자면 ‘이번 주말에 우동 먹으러 일본에 갈까?’, 혹은 ‘금요일에 야시장 구경하러 대만에 갈까?’, ‘이번주 토요일에 홍콩에서 애프터눈 티 어때?’ 같은 청춘의 자유와 일탈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친구들을 따라, 분위기에 쓸려 어여부영 가볍게 떠났어야 했는데, 뭘 따지느라 또 뭘 걱정하느라 한번도 그렇게 훌쩍 떠나본 적이 없는 나는, 아직도 대만과 홍콩에 가 보지 못 했다.

  대신, 그렇게 젊어서 떠나보지 못한 가벼운 ‘금요일 밤 출발, 2박 3일 여행’을 영국에 와서 마침내 이루었다. 장소는 아일랜드의 더블린! 이름하여, ‘이번 주말에 기네스 마시러 더블린에 갈까?’


< 더블린으로 주말여행 떠나는 유한한 영국 생활의 기쁨 >


  아이들 방학에만 맞추어 여행 계획을 짜다 보니, 영국 인근의 많은 나라 중 가고 싶은 나라는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인데 갈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상대적으로 볼 거리가 많지 않은 아일랜드를 후순위로 뺀 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네스는 꼭 마셔야겠다. 기네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영국까지 와서 바로 그 옆 동네 더블린의 맥주를 마시지 않고 가서야 되겠는가!


  “우리 영국에서 그거 해보자. 예전에 유행했던 거, 금까기! 애들 학교 마치고 금요일 밤에 더블린으로 출발하는 거야. 가서 금요일 밤은 그냥 자고, 토요일에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가서 기네스 마시고, 일요일에는 펍에 가서 기네스 마시자. 그러고 일요일 밤에 돌아오는 거지. 오케이?!”


  5월의 첫 주말. 우리 가족은 정말로 각자 갈아입을 옷 하나씩을 넣은 백팩을 메고, 별도의 캐리어도 없이 더블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어떤 여행보다 설레고 즐겁고, 자유로운 기분에 비행기 이륙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연 됐는데도 아무 불만도 생기지 않았다.


< 금요일 밤, 더블린 공항 도착!! >





  여행은 계획대로 였다. 토요일 첫 일정으로 우리는 ‘기네스의 도시’ 더블린의 전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꼭대기에서 갓 따른 신선한 기네스를 마시기 위해 ‘기네스 스토어하우스(Guinness Storehouse)’로 향했다.


< 두근두근,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견학 시작! >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란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박물관 혹은 홍보관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더블린 기네스 공장투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일반인들에게 공식적인 기네스 투어 기회를 제공하는 곳은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로, 공장은 아니다. 그러나 몇 층에 걸쳐 기네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홉부터 기네스가 만들어지는 단계별 공정, 저장과 수송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시대별 기네스의 역사, 광고물 및 기념제작물(기네스 캔에 그려진 하프를 연주해 볼 수 있다!), 공정 단계별로 익어가는 맥주 냄새 등을 맡을 수 있는 시음 방(Room) 등이 있어, 나의 사랑 기네스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다.


<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의 이모저모 >


  딱히 그런 구체적인 설명까지는 필요 없고, 어서 빨리 진짜 기네스를 마시고 싶다면 입장할 때 받은 티켓을 들고 더블린 파노라마 뷰가 일품인 꼭대기층으로 바로 올라가도 된다. 가운데 바(Bar)에 있는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면, 정말 심혈을 다해 맥주를 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정성스럽게 따른 기네스 파인트 한 잔(450ml)을 내어줄 것이다. 그러나 맥주 한 잔에 비해 입장료가 너무 아까우니, 아무리 바쁘고 구체적인 공정에 관심이 없다 해도 꼭대기층으로 가기 전에 있는 ‘시음방’에는 꼭 들어가보자. 거기서도 50ml정도 되는 양의 앙증맞은 미니 기네스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  


<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시음방, 각 단계별 기네스의 향과 미니 기네스를 경험할 수 있다. >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를 다 둘러본 뒤, 우리도 ‘대망의’ 더블린이 파노라마로 내려다보이는 꼭대기층으로 갔다. 중앙 바(Bar)에 가서 티켓을 주고 받은, 유려한 곡선의 기네스 파인트 한 잔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조심 데려와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멋진 더블린 전경이 바로 옆에 있지만 당장은 테이블 위의 기네스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역동적인 펌프질로 갓 완성된 기네스 잔 안에서 부드러운 연갈색의 풍성한 기포가 아름답게 비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면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른 거품은 짙은 흑갈색의 액체 위에서 점점 더 두꺼운 막을 형성했다. 미세한 공기 방울이 한 덩어리처럼 엉킨 연갈색의 거품은 눈으로 보기에도 촘촘하고, 탱탱함을 넘어 손가락으로 거품 표면을 꾹 눌러도 다시 되살아 날 것 같은 탄성이 느껴졌다. 윤기나는 뽀얀 거품이 내뿜는 부드러움의 아우라야 말해 무엇할까.

  신선한 기네스를 눈으로 감상한 뒤, 부푼 가슴으로 뽀얀 거품이 꺼지기 전에 서둘러 한 모금 들이켰다. 눈으로 본 그대로의 촘촘한 탄성과 부드러움이 포슬포슬하게 입 안으로 흘러 들었다. 거품에 뒤이어 빠르게 밀려드는 흑갈색 액체의 쌉싸름함은 이 부드러운 거품이 카푸치노의 그것이 아니라고 일깨웠다. 당연하다. 카푸치노 일리 없다. 기네스의 거품은 카푸치노의 우유거품 보다 훨씬 부드럽다. 



  기네스와의 설레는 첫 입맛춤을 마쳤으니, 이제 창밖의 더블린을 감상할 시간. 탁 트인 더블린의 풍경이 손에 든 기네스 잔 속으로 들어와 맥주맛이 한층 풍성해졌다. 나는 맥주를 마실 때 꼭 안주를 함께 먹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더블린의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 마신 기네스만은, 기네스 한 잔과 주위를 빙 둘러싼 더블린,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쯤 되면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정말, 더블린에서 마시는 기네스 맛은 다른가? 

  나의 답은, Yes, thousands of Yes!! 

  맥주 공장을 방문해 시음을 하면 다들 하는 말이지만, 기네스 역시 시중에서 사 마시는 것보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 마시는 기네스가 훨씬 부드럽고 쌉싸름했다. 거품과 쌉싸름함 모두, 결이 켜켜이 살아 생동하는 느낌. 이것을 신선함이라고들 부르나, 정말 신선하기 때문인지는 나로선 알 수 없다. 기분 탓일수도 있고, 바(Bar) 직원의 정성스럽고 숙련된 기술 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주말에 ‘기네스’ 마시러 ‘더블린’에 온’ 것이 후회 없을 만큼 맛있고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더블린의 파노라마 뷰와 함께 한 기네스의 맛에 감복한 남편과 나는 출입구가 있는 층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기념품 사냥에 나섰다. 여기서 맛본 기네스 맛을 가져갈 수는 없으니 이 순간을 기억하게 해줄 무엇이라도 손에 쥐어 가고 싶었다. 우리가 마그넷과 키링, 기네스 파인트 잔 모양 캔들, 기네스 로고가 커다랗게 그려진 (언제 입게 될지 모를) 반팔 티셔츠 등등을 신나게 고르는 동안, 아이들이 한 발 떨어져 그런 엄마와 아빠를 심드렁하게, 그러나 유심히 동시에 어이없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은 기념품 가게에서 신이 나는 것은 아이들이었는데,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나중에 둘째 아이는 더블린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한 가지가 “엄마 아빠가 좋아하니까.”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이가 보기에도 정말로 행복해 보였나 보다.


<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내 기념품 샵 >
< 더블린에서 사온 기네스 캔들을 예술작품 마냥 집에 전시해 두고 있다. >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한계는 있는 법. 아이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겨워 죽을 것 같다’는 레이저 세례를 피하지 못하고,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출구로 향했다. 


  그때, 기네스가 커다랗게 쓰여진 포토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보였다. 어느 곳에선가 훌쩍 떠나왔을 것 같은 자유로운 모습의 청춘들. 서로의 사진을 찍어준 남편과 나의 사진도 물론 좋았지만, 한 무리의 청춘들이 만들어내는 밝은 에너지와 흥겨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 한 무리의 청춘들이 사진을 찍던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포토존. 타인의 사진을 찍을 순 없었으니 이 빈 포토존 위로 각자 즐거운 청춘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길 >


  뒷줄에 선 두 사람이 밖을 향해 손을 뻗고, 그 사이에 선 사람은 중심을, 마지막으로 앞 줄에 앉은 두 사람은 자세를 낮추고 앉아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마치 ‘독수리 오형제’를 연상시키는 그 촌스러운 포즈마저 근사하게 소화하는 청춘에는 특유의 싱그러움이 있었다. 오래 전 내가, 이제는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들로 스스로 발을 묶으며 놓쳐버린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빛나고 있는 듯했다. 

  단란한 우리의 이번 가족 여행이 아주 만족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려고 할 때 곧이어 또 다른 무리가 등장했다. 6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단체 여행. 

  머리가 희끗희끗 하얗게 센 어른들이 서로 다정하게 쭉 한 줄로 서서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커다란 기네스 글자 앞에서 사진을 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청년들의 모습만큼 아름답고 근사해서 나는 잠시 멍해졌다. 하늘로 솟아오를 듯한 에너지는 없었지만, 그들의 모습에는 편안하고 여유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함께’라는 기쁨.


  “와, 할머니 할아버지들 너무 멋지다. 젊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여럿이 함께 있는 모습이 멋진 거구나.”


  이제는 지나가 버린 청춘만 빛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젊은 청년들이든 머리가 센 노년들이든 그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함께이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에 해 보지 못한 추억을 떠올리며 떠난 짧은 더블린 여행에서 못 이룬 추억의 이행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깨닫은 기분이었다. 


< 다른 여행자에게 부탁해서 '함께'하는 가족사진을 남겨 보았다. > 


  언젠가 아이들이 ‘기네스’의 맛을 알 때가 되면, 그때 다시 한번 진짜 ‘함께’하는 여행으로 더블린을 찾아 올 수 있을까? 아니, 그때는 나의 아이들 역시 자신들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청춘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니, 나와 남편은 우리들의 청춘을 함께 해준 아주 오래된 지인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해야겠다. 한국에서는 영국에 사는 지금처럼 '더블린'으로 주말에 훌쩍 떠나오는 여행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 더 시간이 많고 여유로울 먼 훗날의 나의 지인들에게 물어 보아야지.

  “우리 다음 달에 기네스 마시러 더블린으로, 좀 긴 여행을 떠나볼까요?”





[유한한 영국 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아일랜드, 더블린 - '이번 주말에 ‘기네스’ 마시러 ‘더블린’에 갈까?' 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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