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의 작은 지방 도시, ‘바스(Bath)’. 이 도시의 대표 관광지는 도심에 위치한 고대 로마 시대 공중목욕탕 유적인 ‘로만 바스(Roman Bath)’다. 그 옆으로 넓은 거리가 있다. 차는 다닐 수 없는 큰 길 양 옆에는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다. 바스의 중심가,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라고 하겠다.
이 ‘하이 스트리트’ 관련해서도 에피소드가 있다. 집 근처 영국 초등학교에 아이들의 입학이 확정된 후, 학교로부터 교복 구입에 대한 안내문을 받았다. 학교가 지정한 교복 상·하의 색을 알려주면서,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에 가면 교복을 구입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바로 다음 주면 새 학년이 시작되었기에(아주 임박해서 학교가 정해졌다.), 급하게 바스 도시 지도를 뒤졌다. 교복을 판다는 ‘하이 스트리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학교 안내문에 있는 ‘하이 스트리트’가 특정 거리 이름인 줄 알았다. 영국에는 뒤에 ‘스트리트(Street)’가 붙는 도로명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스 지도를 뒤져도 ‘하이 스트리트’는 없었다.
곧 바스 지도 대신 인터넷을 뒤져 ‘하이 스트리트’가 특정 거리 이름이 아니라, 상점이 많은 중심가, 혹은 번화가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도심에 있는 옷가게에 가서 교복을 사라는 소리였다. (영국 학교는 각 학교마다 로고가 들어간 지정 교복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마트나 옷가게에서 교복을 사 입는다.) ‘하이 스트리트’라는 단어를 내 머릿속 ‘실전 생활 영어’에 새롭게 집어넣고, 머쓱하게 바스 지도를 닫았다.
<바스의 대표 관광지 '로만 바스(Roman Bath)'>
< '로만 바스' 근처의 메인 상점거리 >
이 ‘로만 바스’ 옆 하이 스트리트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면 ‘밀솜 스트리트(Milsom Street)’라는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가 있다. 이 거리의 건물은 18세기에 거주용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의류 상점과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이 상가 건물로 쓰인 것이 현대에 들어서인 것만은 아닌 듯한 것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노생거 사원>을 보면 소설 속 인물들이 밀솜 스트리트의 모자 가게에서 모자를 산다는 내용이 나온다. 내가 자주 오가는 일상적 공간이 유명한 작가의 소설에서 글자로 읽히는 것이 퍽 신기했다. 오래된 고전 소설의 운치를 그대로 갖고 있는 밀솜 스트리트는 공공 차원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로 지정되어, 오래 되었지만 낡았다는 느낌 없이, 특별한 공간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한 번쯤 이 건물 내 상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게 만든다.
< 바스의 아름다운 '밀솜 스트리트(Milsom Street)' (출처 : 구글) >
< 18세기에 지어진 밀솜 스트리트 내부 거리와 이 거리가 언급된 제인 오스틴 소설 <노생거사원>의 일부 >
이 건물 안쪽의 한편에 ‘Côte’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었다. 밀솜 스트리트와 잘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멋스러워, 어느 날이 좋은 날 나는 가족들과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밀솜 스트리트 건물과 너무 잘 어울려 이곳 분위기에 맞춘 가게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국 내 여러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대중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식사 때가 지난 때문인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드문드문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외국인들(?? 누가누구 보고 외국인이라고 하는지..하하.) 덕분에 이국적인 느낌이 더해졌다.
< 밀솜 스트리트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프렌치 레스토랑, Côte >
남편과 나는 크림 파스타와 서로인 스테이크, 그리고 이런 공간에서 차마 모른 척할 수 없는 하우스 와인을 한 잔씩 주문했다. 아이들은 키즈 메뉴에서 토마토 파스타, 닭가슴살 구이를 골랐다. 바스에서의 일 년을 담은 에세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 책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영국의 식당 메뉴는 아이들에게 관대하다. 많은 곳에서 키즈 메뉴를 따로 마련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메인 메뉴에 에피타이저와 디저트까지 포함하는 3종 세트가 약 1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우리는 3종 세트 메뉴로 아이들 음식을 주문해 에피타이저로 나온 깔라마리 튀김을 남편과 내가 와인에 곁들여 아주 흡족하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키즈 3종 세트의 마지막 디저트가 나왔다. 아이들은 각각 아이스크림을 올린 초콜릿 브라우니와 미니 그릇에 담긴 생초콜릿을 하나씩 꽤 찼다. 아이들이 자기들 몫의 달콤함에 집중하는 동안, 남편과 나는 남은 와인에 집중하며 맛있는 식사 후의 만족감과 포만감, 그리고 밀솜 스트리트의 분위기를 만끼하고 있는 중이었다.
옆 테이블의 할머니가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너무 갑작스러워 정확한 영어 문장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아이들의 식사 예절이 매우 훌륭하다, 당신들(나와 내 남편)은 아이들을 정말 잘 교육했고, 이렇게 예의 바른 아이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된다. 덕분에 조용하고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들은 정말 본 적이 없다’ 등등
바스에 도착한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 때였기에 아직 그곳 사람들의 대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는, 너무 갑작스럽게 훅 다가온 서양 사람들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몸짓에 (그리고 쏟아지는 영어에) 압도되어 ‘땡큐 소 머치(Thank you so much)’ 말고는 무엇이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미사여구가 가득한 문장들의 나열로도 본인이 받은 인상(Impression)을 다 전할 수 없었는지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1파운드 동전 하나씩을 건네며, 예의 바른 행동에 대한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또 한 차례 당황하여 한사코 거절했지만, 할머니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상냥한 미소를 남기고 식당을 나가셨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한다면 완벽한 ‘E’일 것 같은 할머니는 식당을 나서는 길에 스치는 다른 테이블 손님들에게도 모두 한 마디씩 말을 건네느라 식당을 완전히 나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영국 할머니께서 두고 간 동전과 함께 남은 우리는 할머니의 퇴장 시간만큼이나 길게 당혹스러워했다. 우리 아이들은 그저 밥을 먹느라 바빴을 뿐이었고, 밥을 먹은 후에는 역시나 떠들 시간도 아까울 만큼 맛있는 디저트에 정신이 팔렸을 뿐이었다. 물론 테이블에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지 않고도 자리에 끝까지 앉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소란하게 하지 않는 것은 기특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처음 본 옆 자리 손님에게 칭찬을 받을 일인가 싶었다. 더하여 덕담만 해주어도 좋을 일을 동전까지 주다니. 팁도 아닌 1파운드 동전 두 개가 참 오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분명히 'E'성향일 영국 할머니가 남기고 간 1파운드 동전>
나중에 다른 영국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 에피소드를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의 식사 예절이 영국에서는 흔치 않은 것이라고 했다.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영국 아이들은 식당에서 대체로 매우 활발하고, 다소 시끄럽고, 돌아다니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프랑스에서 살았던 그녀는 프랑스 마트에 가면 가끔 마트 안에서 뛰어다니며 큰 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대부분 영국 아이들이라고 과장된 농담을 했다. (프랑스의 훈육 방식은 꽤 엄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할머니는 정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아 무엇으로라도 자신이 받은 그 감동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일 년을 보내며 느낀 것은, 영국의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아이들보다 자유로웠다. 우선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학원을 돌며 학업에 시달리지 않았고, 학교 수업은 매우 (한국 학교 대비) 여유로웠고, 생일파티도 성대했으며 사탕과 젤리, 아이스크림, 푸딩 등 달콤한 디저트도 충분히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아이다움을 수용했고, 아이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관심을 쏟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 그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살피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듯했다. (물론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등학교로 가는 시기가 되면, 교육에 의지 있는 부모는 사립학교로 보내기 위해 학업에 열을 올린다. 슬프게도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치뤄야하는 입시 경쟁은 어디에나 있었다.)
여기서 또 다시 오묘한 점은, 영국이 분명 우리나라보다 아이들의 심신의 안녕과 안전을우선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방임적이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뛰어 놀다가 다치면 바로 달려가서 매우 걱정을 하고, 웬만하면 다치지 않도록 또 너무 지저분하게 놀지 않도록 옆에서 보호하고, 날씨에 맞춰 옷도 매우 세심하게 골라 입히는 등 아이를 통제해서라도 아이들이 안전하게끔 챙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영국의 어른들은 놀이터나 공원처럼 아이들이 안전한 구역 내에 있다고 생각되면, 아이들이 맨발로 그곳을 돌아다니든 온몸으로 바닥에서 뒹굴든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넘어지면 혼자 힘으로 일어서도록 지켜보았다. 매우 크게 다친 경우가 아니라면 호들갑도 없이 툭툭, 상처를 극복했다.
등교할 때 아이들의 옷을 보면 더 기가 막혔다. 한국처럼 춥지는 않아도 2월이면 영국도 아직은 꽤 추워서 코트를 입어야 하는 날씨였다. 해가 나지 않는 흐린 날이라 일기예보상의 기온보다 더욱 을씨년스럽게 스산한 것이 영국의 겨울이다. 그러다 하루 해가 반짝 난 날이 있었다. 그날 반팔 혹은 반바지를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여럿 목격되었다. 심지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아빠는 '필파워 700'은 될 것 같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부모가 얇게 입고 아이는 두껍게 입은 경우는 있을망정, 부모가 옷을 두껍게 챙겨 입으면서 아이를 그렇게 헐벗게 입혀 내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아이가 하고 싶다는 대로, 입고 싶다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의사 존중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아이들이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영국의 아이들은 열이 아주아주 많은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패딩을 입은 아빠 옆의 반팔을 입은 아이’는 아이의 ‘춥지 않다’는 말을 존중한 풍경이며, 그래서 추후 감기에 걸린다면 그것은 반팔을 주장한 아이가 감내해야 할 결과일 것이다.
우리의 육아 방식과는 포인트가 다른 영국의 오묘한 육아 방식 때문인지, 영국의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굉장히 튼튼하고 단단해 보였다. 운치 있는 밀솜 스트리트 내 우아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할머니의 근사한 점심을 지켜줄 순 없겠지만, 영국 아이들은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차곡차곡 채우며 행복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식당 같은 공공 장소에서의 예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영국 할머니께서 극찬한, 한국의 훈육 방식으로 차분하게 자라는 우리 아이들을, 지금까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의 자제할 줄 아는 행동을 조금 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겠다. 동시에 영국 아이들을 키우는 ‘아이다움의 수용’과 ‘내버려두는 보호’를 적절히 접목하여 우리 아이들이 단단한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영국 작은 도시 ‘바스(Bath)’의 생활이 가르쳐 준 것을, 그곳에서의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 이 글은 영국의 작은 도시 바스(Bath)에서 보낸 일 년을 담은 영국 생활 에세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의 스핀오프(Spin-off)로, 책에 담지 못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은 글입니다. 더욱 가득차고 정갈한 영국의 작은 도시 생활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을 읽어 보세요.
※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와 동네 서점 등 전국 오온프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