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피어날꺼야
"조금 늦은 봉오리에서도 꽃은 핀다."
길을 가다 길가의 꽃을 보고 발을 멈췄다.
여기저기 무리지어 피는 가을 꽃덤불들 사이에서
홀로 떨어져 피어있는 모습이 외로워보였다.
나라도 기억해주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몇 발자국 앞서 걷던 일곱살 딸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물었다.
"엄마, 그 꽃 왜 찍는 거야?"
"혼자 피어 있는 게 외로워보여서."
쓸쓸하게 대답하며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걔 혼자 아니야. 친구 있어."
"한 송이 밖에 없는데 친구가 어딨어?"
아이는 내 손을 끌고 다시 꽃이 핀 곳으로 돌아 걸었다.
"잘 봐, 옆에 꽃송이들이 있잖아. 곧 친구들이 피어날꺼야."
돌아본 자리엔 아이의 말처럼 홀로 외로이 핀 꽃 옆으로
아직 피지 않은 작은 꽃봉오리들이 보였다.
대충 스쳐가듯 보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고 여린.
아이의 관찰력에 감탄했다는 고슴도치 같은 얘기는 넘어가자.
나의 딸뿐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은 그렇게 작은 것에도 쉽게 닿았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만큼 크고 화려한 것만 좇느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들의 웅크린 순간을 보는 눈을 잃은 건
어른의 세상, 어른의 욕망, 어른의 조바심.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꽃봉오리에서도
조금 늦은 꽃봉오리에서도 꽃은 핀다.
이 이야기에 대한 너의 대답도 안다.
절망 없는 아이들의 시선에 없는 것 하나,
모든 꽃송이가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것.
지금 웅크리고 있는 친구야,
사실은 나도 너처럼 웅크리고 있다.
그래도 딸의 말을 더듬어 코스모스를 그리는 것은
두려움에 떠밀려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기에
오늘 하늘이 너무 맑다.
들판의 꽃이 너무 예쁘다.
그러니 오늘은 그저
애써 들여다보지 않아도
작은 것들의 존재를 알아보는 아이의 시선과
꽃을 피워낼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아이의 말처럼
아직 피지 않은 우리들의 꽃봉우리도
언젠간 활짝 꽃잎을 피울 것이라 믿어보자.
절망은 이 좋은 계절이 진 뒤에 느껴도 늦지 않다.
화려한 꽃송이가 아니라도
이미 너의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곧 활짝 피어날 코스모스들을 꿈꾸며 오늘의 그림단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