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늘 하루도 자랐다
"또 다른 삶의 이치들이 타박타박 내게로 걸어 들어 오겠지"
by
노현지
Oct 18. 2020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이 어렵다.
시선의 방향성과 빛의 명암을 투여해 입체감을 넣는 것이 특히 어렵다.
음... 그냥 못 그린다는 소리다.
이전에 홍대 근처의 화실도 다녀봤지만
'역시 나는 안된다'는 고배만 마시고 돌아왔다.
그런데도 아직도, 여전히 포기가 안돼 또 그림을 붙들었다.
단점을 극복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유튜브의 어느
영상에서 그림을 잘 못 그릴 때는
가장 단순한 정면을 그려보라고 했다.
어색함이 드러날 디테일을 지우라고 했다.
그리고 정교함은 부족하지만
어쨌든
따라 베끼지 않은, 나만의 그림이 완성됐다.
산의 저편으로 가기 위해서
꼭 산을 타고 올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산의 둘레를 빙 돌아가는 것 또한
산을 넘어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듣고 또 들어왔던 그 삶의 이치를,
그림을 통해 체감한다.
역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자랐다.
자라기를 기다리는 좁고 모난 마음들이
여전히 내 안에 한가득 쌓여있다.
이렇게 몇 개의 산을 돌아돌아 넘어가고
그러다 몇 개의 야트막한 산을 오르고
더 높은 산을 타고오르는 시도를 하다 보면
시선의 방향성과 디테일이 내 펜에도 녹아들고,
좁고 모난 마음들을 보듬어 줄
또 다른 삶의 이치들이
타박타박 내게로 걸어 들어 오겠지.
이런 책상에 앉아 종일 책을 읽고 싶은
일요일 그림단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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