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경주의 봄.
평일이라 다른 객은 한명도 없는 황남주택 마당에서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환한 대낮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맥주를 마실 일은 드물다.
길을 가다 본 어느 가게의 입간판이 말했다.
'낮술은 자유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고의 명언이다.
하늘을 보고, 발밑의 자갈을 보고, 또 하늘을 보고...
그때 새로운 노래가 마당 안으로 흘렀다.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순간이 꿈처럼 아득해졌다.
볕이 좋은 경주, 기와집 마당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 위로
몽환의 노래가 흐르는 순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황홀할만큼 좋은 순간을 손에 쥘 수 없을 때면
뱃속은 간지러움으로 요동친다.
스멀스멀 출렁이는 오장육부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흐느적흐느적 마당을 거니었다.
마음도 빗장을 열고 천리길을 나섰다.
아무 준비 없이 요새를 나선 마음은
가식 한올 걸친 것 없이 발가벗어 투명했지만
상처를 감쌀 천조각 또한 챙기지못해 욱신거렸다.
온기 품은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온다.
딱딱하게 굳은 고름이 녹아 진물이 방울져 흘렀다.
추억할 기억도 없이 감상만 남아 우는 마음을 위해
나는 황남주택의 그날에 갈피를 꽂았다.
갈피만 꽂으려 했거늘
박제가 되었는가?
그날 이후 하루도 잊을 수 없는 경주의 순간.
나는 황남주택 너른 마당에 나를 두고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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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황남주택은 맥주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