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계절마다 집의 작은 소품들을 바꾸면서 즐거움을 얻고
조금 비싸더라도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
좀 불편해도 구색을 갖추어 생활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나의 시어머니는 실용성이 우선인 사람이다.
제 기능을 하기만 하면 굳이 멋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요,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편이다.
10년전 내가 신혼집 베란다에 설렘으로 마련해둔 티테이블을 보고
"저런 게 나중에 다 짐이야." 라고 평하셨고,
정장바지에 등산조끼를 입으시는 게 마음에 걸려 선물한 린넨 조끼에
"조끼 있는데 왜 또 샀어. 이게 다 낭비야."라고 하셨다.
살아본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요,
속으로는 선물을 고맙다 생각하셨을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그것도 결혼 초기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때의 내 마음은 섭섭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성격대로 어머님의 부엌에는 오래된 그릇들이 많다.
실용성을 위해 태어난 스테인레스 그릇들을 주로 쓰시니
그것들은 깨지지도 않고 좀 찌그러져도 기능에 아무 영향이 없다. 부엌의 그릇뿐 아니라 방의 가구들도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은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내겐 시외할머니께서 사셨던 집이고
그때부터 쓰던 세간살이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어 더욱 그렇다. 어머님의 세간살이에 대해 낡았다거나 불편하다는 등의 의견은 전혀 없다. 그것들은 그냥 어머님의 살림이고 성격이라 생각할 뿐이고 그저 나와 참 다르다,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오히려 세월을 담은 찬장에서 요즘 다시 귀하게 대접받는
오란씨, 하이씨, 펩시, 서울우유 등 레트로 유리잔들과 '진로 이즈 백'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두꺼비 진로소주잔들을 한가득 집에로 데려와 나의 작은 즐거움을 채웠으니 어머님의 실용적인 성격에 감사해야 했다.
그런 어머님의 부엌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얼마전 시아버님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시부모님댁에 갔다.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만들어두신 음식을 늘 담던 그릇에 담으려는데 어머님이 나를 말리며 찬장에서 새 그릇들을 꺼내셨다. 마트에서 그릇행사를 하는데 너무 예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나 같이 예쁜 그릇들 사이에서 고심고심하여 골라왔노라며 새로 산 그릇들에 음식을 담는 시어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 엄마는 늘, 그릇은 음식만 담을 수 있으면 되는 건데
있는 그릇 두고 예쁘다고 또 사는 게 젤 낭비라고 그랬어.
그런데 내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예쁜 그릇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그게 내 취민가벼."
식사 후, 설거지를 끝내고 커피 한잔을 하려는 내게 어머님은 커피도 예쁜 컵에 마시라며 찬장에서 새 컵을 꺼내주셨다.
어머님이 건네 준 컵에는 분홍색 철쭉이 활짝 피어 있었다. 방 한켠에 자리한 문갑 위에 잔을 올려 두고 예쁜 티타임을 즐겼다.
어머님의 낡은 문갑에 꽃이 피었다.
건조한 줄만 알았던 시어머니의 마음에
당신도 모르게 잠겨있던 꽃인 듯했다.
컵을 볼때마다 괜스레 내가 웃음이 났다.
이제라도 종종 피워냈으면 좋겠다.
어머님의 그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