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아침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강의를 자주 듣곤 했다. 깨워줄 사람도 없이 온전히 내 의지로 돌아가는 혼자 사는 대학생의 하루는 게으러지기 십상이었다. 수업 때문이라도 일찍 일어나 보람찬 하루를 보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수강신청은 언제나 쉬이 성공했고, 9시 이전의 학교 교정은 늘 한산했다. 이 북적이지 않는 교정과 청량한 아침의 공기 또한 9시 수업을 고수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아침식사 시간까지 충분히 확보하긴 힘들었기에 일주일에 두 번은 구내매점에서 김밥을 사 먹었다. 그때마다 밥 한 줄과 아주 궁합이 잘 맞는 우유가 있었으니, 매일유업에서 나온 '우유속에 모카치노'였다. 일단 우유의 카테고리에 속해 있으니 김밥에 단백질을 더해 줄 것이고, 모카의 짙은 달달함은 푸석한 아침의 컨디션을 양생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일반 커피우유는 김밥 한 줄을 먹기에 마직막 몇 모금이 늘 부족했으나 ‘우유속의 모카치노’는 그보다 1.5배 많은 300ml, 김밥 한 줄을 아주 넉넉히 품었다. 그시절 아침마다 먹은 '우유속에 모카치노'가 얼마나 될까? 그 수는 몰라도 '내맘속에 모카치노'로 자리잡은 것은 분명했다. 이후로 다른 우유회사에서도 큰 사이즈의 우유를 출시했지만 편의점의 화려한 '2+1 행사'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내 손은 오직 '우유속에 모카치노'만을 향하고 있었다.
얼마전 동네 편의점에서 나를 위한 ‘우유속에 모카치노’와 딸을 위한 ‘우유속에 코코아’를 사 오는길에 두개를 나란히 사진을 찍어 친한 친구에게 보냈다.
“서울우유 행사를 물리치고 건재한 ‘우유속에’ 사랑~ 딸에게도 전파함.”
곧 친구에게서 답이 왔다.
“대단! 근데 ‘우유속에’가 아니라 ‘커피속에 모카치노’였네?” “뭐???????”
다시 내려다 본 우유곽의 앞면에는 거짓말처럼 정말로 ‘커피속에 모카치노’라는 초록색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어엇? 이거 원래 그랬나? ‘우유속에’ 아니었나? 방금도 ‘우유속에’로 봤는데 언제 글씨가 바뀌었지?”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았다. 편의점 진열대에서 이렇게 이름이 크게 적힌 우유를 집어 들면서도 나는 ‘우유속에 모카치노’라고 읽었고, 그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 알았을까? 검색한 결과, 이 우유는 ‘우유속에 모카치노’로 출시가 된 것이 맞고, 2018년에 카페인 함량이 높은 커피우유제품은 ‘우유’가 아닌 ‘커피’로 표기되어야 했기에, 부득이 ‘커피속에 모카치노’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니.
음… 그래도 대략 2년 넘는 시간동안 ‘커피속에’를 ‘우유속에’로 잘못 읽어왔나 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알고 있던 것을 고수하는 사람의 인지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도. 버젓이 보이는 것에도 이럴진대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떨까?온전히 내 안에 머무는 생각, 가치, 감정 등은 얼마나 제멋대로 굳어 있을까? 그것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해 온 편협한 눈과 입이 혹여 누군가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진 않았는지 염려스럽기도 했다(이것이 심해지면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것인가…?).
나의 ‘우유속에 모카치노’가 ‘커피속에 모카치노’로 변한 세상에서 나만의 ‘우유속에’ 여전히 고여 있는 또 다른 ‘모카치노’들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의 깨달음으로 한 번에 모두 바꿀 수도 없는 일. 일단 오늘은 달달구리한 ‘커피속에 모카치노’를 꿀꺽꿀꺽 마시며 내가 알던 것들을, 그리고 그것들이 맞다는 생각을 비워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