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단단한
[그림단상] 식물의 뿌리에서 배우다
일년 전 새집으로 이사하며 거실 귀퉁이에 놓을 큰 화분을 하나 샀다. 본디 식물 키우기에 재주도 없고, 별다른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나였는데 그때는 이상하게 집에 초록을 들이고 싶었다.
다양한 종류의 어여쁜 식물들이 싱그럽게 맵시를 뽐내는 꽃집에서 내 주제도 모르고 무엇에 홀린 것마냥 큰 화분에 더해, 작은 화분 3개를 함께 데려왔다. 그리고 한 달 뒤 친척 어른께서 이사 선물로 커다란 화분 하나를 더 보내주셨다. 순식간에 집 거실에 초록색 생명들이 넘쳤다.
다섯 개의 크고 작은 화분에 예쁘게 담긴 식물들은 모두 비교적 키우기 쉬운 종이라고 했다. 볕이 있건 없건, 통풍이 좋건 말건, 가끔씩 물만 챙겨주면 누구나 손쉽게 키울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누구나'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꽃집에서 볼 때는 그렇게 싱싱하던 작은 화분의 식물들이 우리 집에 데려온지 열흘만에 생기를 잃어갔다. 정황상 문제될 것은 물 밖에 없었기에 3일에 한번 주라는 물을 더 줘 보기도 하고, 덜 줘 보기도 하며 꼬마 식물들의 상태를 살폈지만 결국 소생하지 못하고 짧은 인연을 끝냈다.
반면 큰 화분의 식물 2개는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잘 살아있다. 큰 것들은 물 주는 주기가 열흘에 한 번 꼴로 길어서 자주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주기가 긴 만큼 물 주는 것을 아예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매일 거실에서 함께 지내면서도 갖가지 핑계로 신경을 못쓰다가 어느 날 문득, 아래로 ‘축’ 처진 나뭇잎을 보는 일이 다반사. 그럴때마다 미안해하며 뒤늦게 주는 물에도 매번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초록잎들의 생명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가끔은 내가 키운다기 보다 식물들이 살아내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물 하나도 제대로 못 줘 일찍 작은 식물들을 떠나보내고도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여전히 제멋대로 물을 주는 내 손에서 큰 식물들이 살아 있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넉넉한 뿌리 덕이다. 먼저 간 작은 화분의 식물들처럼 뿌리가 작으면 물이 조금 부족하거나 조금 넘치는 부침의 상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쉽게 썪거나 말라버리지만, 큰 식물은 나뭇잎이 축 처질 정도의 물 부족에도 흙 아래로 넓고 깊게 뻗은 뿌리로 단단하게 버티고 서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다.
염치없게도 내가 만든 역경을 버티어 내는 식물을, 그 와중에도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새 순을 피워내는 식물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 있는 것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나는 불면증을 꽤 심하게 앓았다.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거나 며칠 못 자는 정도가 아니라 수개월 이상 지속된 불면으로 일상 생활이 망가지고, 정서가 불안정해지고,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밤이 나의 잠을 삼키는 괴물처럼 느껴져 밤이 오는 것이 두렵고, 한숨도 못자고 맞이하는 아침에 분노하던 시절. 그때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 내게 무수한 최면을 걸었다.
‘나는 지금 단단해지는 중이다.’
불면증이 호전되는 데는 나의 최면 보다는 당시 백만원을 훌쩍 넘었던 수면센터 치료의 영향이 컸겠지만 그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다시는 그런 지독한 불면증을 겪지 않기 위해, 마음속의 불안을 지우기 위해 나는 속으로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외부의 충격에, 내면의 불안에 예전처럼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되었다고 믿는다.
식물의 뿌리가 나날이 깊어지 듯, 나는 앞으로도 나날이 단단해 질 것이다. 이제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식물에게 물이 필요한 시기도, 불안은 쓸모 없고 잠은 오게 되어 있다는 순리도. 필요한 것은 깨달은 것들을 실천하는 것뿐이니, 우선은 시기에 맞춰, 순리에 따라 소중한 식물이 너무 목말라하기 전에 물을 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