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의 느낌

[그림단상] 외할머니의 마지막 순간

by 노현지



색깔에는 각각의 색깔 마다 연상되는 고유한 이미지 혹은 상징들이 있다. ‘빨강’ 하면 정열이나 위험, ‘초록’ 하면 휴식이나 안정, ‘흰색’ 하면 순결과 결백을 연상하는 것 등이다. 그것은 집단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이기도 하다. 전자가 문화를 공유하는 사회 안에서 학습된 이미지라면, 후자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인된 이미지, 둘은 같은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학습된 이미지와 경험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유사한 경우라도 직접 체감한 개인의 감상이 훨씬 강렬하고 생생하게 이미지화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같은 색깔을 바라 보지만 저마다의 감상과 의미로 그 색깔에 물든다. 내겐 보라색이 그렇다.



고등학교 2학년, 보충 수업 시간이었다. 꽤 모범생이었던 나는 수업시간에 좀처럼 딴짓을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하릴없이 내려오는 눈꺼풀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지만 좀 많이 조는 것은 문제이긴 했다.). 그러나 그날은 날이 유난히 좋았고, 그래서 교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고, 나는 왜인지 그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의 고등학교는 산 꼭대기에 있어, 창 밖으로 인근 동네 뿐 아니라 낙동강과 그 강 건너 김해공항에 뜨고 앉는 비행기까지 훤히 내다 볼 수 있었다.
홀린 듯 먼 하늘을 바라보는 내 눈에 불현듯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들어왔다. 시장, 구청, 병원, 학교, 육교, 가게, 주택 등 수많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창밖 동네 어딘가에서 희미한 보라색 연기가 빠져나와 하늘로 피어 올랐다. 연기는 아른아른 흔들리며 위로 올라가 구름까지 닿았다. 이윽고 아스라이 사라졌다. 보라색 연기는 희미했지만 분명했고, 아름다웠지만 어쩐지 슬펐다. 목소리를 죽여 옆자리 친구에게 물었다.

“야, 니 방금 저 위에 보라색 연기 올라가는 거 봤나?”
“연기? 무슨 연기?”

친구와 함께 바라본 창밖에는 다시 평화로운 마을 풍경뿐이었다.

그날 밤, 강제적이던 야간자율학습으로 언제나와 같이 밤 10시가 넘어 집 현관 문을 열었다. 집 안이 칠흑처럼 깜깜했다. 늘 거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고생했네 우리 막내딸~’ 하며 나를 맞아주던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대신 언니들이 거실로 나와 나를 맞았다. 언니들은 축 처진 목소리로 오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렸다.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의 숨이 멎었다. 오늘 학교에서 내가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보라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한, 바로 그 동네 한 가운데 자리한 장례식장이었다.


아빠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면 나는 다음 날, 아니 그날 당장 장례식장으로 불려갔겠으나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신 날에는 나는 학교에 가도록 명 받았다. 마음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가깝지만 실생활에서는 언제나 뒤로 밀려나는 외가였다.


다음 날 수업을 마친 후,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 갔다. 빈소가 차려진 방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얼굴이 퉁퉁 부은 엄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쥐고 내 어깨를 안으며 말을 토해냈다.


“핸지야 왔나… 외할매가… 그래 가시뿌따.”


정말로 토하듯 내뱉어야 겨우 소리가 나오는 엄마의 말을 간신히 알아들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수십년간 비가 오지 않는 땅에 버려져 말라 비틀어진 나무조각처럼 갈라져 있었다. 하동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부산으로 시집 온 후 멀다는 이유로, 아니 친정이란 이유로 자주 만나지 못했던 세월만큼 이나 오랫동안 버려진 나무껍질처럼. 엄마의 갈라진 목소리 틈 사이사이로 울음이 가득 찼다. 엄마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그날의 엄마는 빗물에 둥지가 떠내려가 갈 곳을 잃고 홀로 남겨진 작은 새처럼 가엾고 측은해 보였다. 나를 안고 다시 목쉰 울음을 토해내는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제 우리 엄마는 엄마가 없구나. 불쌍한 우리 엄마.’



벌써 20년도 더 지난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으로 처음 들어서던 순간이, 엄마가 토해내던 울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엔 깨닫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날이 내가 엄마를 잃은 사람을 처음 본 날이었다. 세상을 잃은 사람 같던, 엄마를 잃은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처연해 그날 이후 누군가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는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엄마라는 태초의 세계를 잃고 망망대해 거친 파도가 이는 세상을 ‘그’는 어떻게 살아갈까…


그리고 떠나지 않는 또 하나의 이미지, 평화로운 오후의 하늘로 피어오르던 ‘보라’. 그것은 새벽부터 밤까지 같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보낸 3년이란 시간 동안 딱 한번 만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누구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 보라색 연기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여섯 남매를 키워낸 억척스럽고 고된 삶을 얼굴과 손등의 주름 하나하나에 자글자글 새겨 두었던 나의 할머니. 할머니의 삶에 얼마나 많은 힘듦과 아픔과 슬픔이 있었든 이 땅을 벗어나는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는 홀가분하게 가볍고,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운 보라색 연기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내게 ‘보라’라는 색깔에 죽음과 태초의 세계의 상실, 홀연한 신비와 아련한 그리움의 이미지를 남기고 생(生)이라는 먼-길을 돌아돌아,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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