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되는 무게

[그림에세이] 아이의 편지

by 노현지


아이는 내게 자주 편지를 써 준다. 학교 수업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 할 때도, 예쁜 종이가 생겼을 때도, 스스로 멋진 그림카드를 만들었을 때에도 내게 ‘낳아주어 감사하고’, ‘엄마의 딸이라 너무 좋다’는 예쁜 마음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라는 수식어를 붙여 써 주곤 했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어김없이 아이의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올해 10살이 된 아이의 편지는 그전까지 받아오던 편지와 달랐다. 한층 길어진 편지에는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에 더하여 ‘힘들게 해서 죄송하다’는 미안함과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다짐이 적혀 있었다.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언제 이렇게 나의 사정을 살피게 됐을까. 그리고 어쩌다 나를 너의 어깨 위에 올려 나의 기쁨을 너의 목표로 삼게 되었을까. 나를 기쁘게 해 주겠다는 아이의 말이 눈과 목에 걸려 꼭꼭 찔렀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하던 나의 어린 날들이 떠올랐다. 나 혼자만 보기 아쉬워 학교운동장의 등꽃을 따다 줄 정도로 엄마를 사랑했지만, 사실 나는 엄마가 무거웠다.
누구보다 든든한 내편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치이고,

회사와 집안일에 치이고, 가난에 치여 살았던 엄마는 누구보다 약해보였다.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잘 해냈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엄마도 모르게 엄마의 얼굴에 비치던 미소가 좋아서

더욱 열심히 무엇이 되고자 했다. 그 무엇이 나의 순수한 욕망인지 엄마를 위한 선택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채로

나는 자라 어른이 되었다.


한 해, 두 해 쌓이는 어른의 삶은 내게서 엄마의 삶을 분리시켰고, 그제야 엄마의 삶을 내 것처럼 끌어안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홀로 짊어진 엄마가 무거워서 아팠다. 엄마의 삶이 조금만 더 쉬웠더라면 나도 조금 더 높이 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의 아픔에 엄마가 치일 것 같아 또다시 미안하고 슬퍼졌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던 어느 날, 상담사가 말했다.


“엄마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건 엄마가 감당할 엄마의 삶이에요. 그걸 현지씨가 끌어안을 필요도, 그럴 수도 없어요. 현지씨가 할 수 있는 건, 해야하는 건 그저 행복해지는 것. 세상 모든 엄마가 바라는 것도 그것 뿐이에요.”


나는 한밤을 꼬박 세워 울면서 엄마를 내 어깨에서 내려 놓았다.


몇 년 후, 엄마가 되고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절대로 가여운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아이가 수 만 갈래의 길 위에서 적어도 내가 밟혀 발걸음을 망설이게 하지는 말아야지. 그럼에도 자식에게 엄마란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 딸에게 내가 무거워지고 있나 보다.

편지를 건네 준 딸을 꼭 안고 말했다.

“엄마를 기쁘게 해 주고 싶구나? 고마워. 그런데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네가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어. 죄송해 할 필요도 없어. 그냥 너는 네가 기쁜 일을 즐겁게 하면 돼. 네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해.”

아이가 울었다. 안도의 울음인지 감동의 눈물인지 나로썬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와 나의 기쁨의 동일시,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자 지독한 굴레의 시작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다고 덜 사랑해 달라 할 수도 없고, 건강하게 사랑하자는 말은 어렵다. 그래도 이것 한 가지만은 당부해야 겠다.


아이야, 나의 기쁨이 되지 말아라. 나를 위해 애쓰지 말고 너대로,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다오. 나의 기쁨은 나의 몫으로 남겨다오.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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