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연가

[그림에세이] 보라색 등꽃의 추억

by 노현지


비에 젖은 등꽃의 향기가 학교 운동장을 감싸던 날의 나는 중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난 학교에는 학생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그날의 교실 정리를 마무리하는 당번이었던 가 보다. 그맘때의 아이들은 늦은 등하굣길을 기다려주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우정을 표현했고, 그날 나의 곁에도 늘 등하교를 함께하던 친구가 있었다. 둘이 팔짱을 끼고 학교 건물을 나섰다.

그날 오후엔 비가 왔다. 예고 없던 5월의 봄비가 한바탕 쏟아진 운동장 여기저기에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고인 물 위로 아직 그치지 않은 빗방울이 동그라미를 밖으로 밀어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예고가 없었으니 친구도 나도 우산이 없는 것이 당연했고, 우리 둘 다 부모님들께선 직장을 다니셨기에 누군가 우산을 가지고 교문 앞에서 기다려줄 처지도 못되었다.


"하나, 둘, 셋, 하면 교문까지 뛴다. 하나, 둘, 셋!"


달리 방법이 없는 우리는 집까지 뛰어 가기로 하고, 두 손바닥을 이마까지 올려 간신히 눈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막으며 물에 젖은 운동장을 향해 뛰었다.
호기롭게 발을 뗐지만 생각보다 굵은 빗방울에 교문으로 향하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장 한쪽에 자리한 차양대 벤치로 급하게 뛰어들어갔다.
학교 운동장은 직사각형 모양이었는데 긴면을 따라 길게 벤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벤치는 대부분의 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기둥을 반 잘라둔 것 같은 모양의 갈색 돌모양 벤치였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로로 4줄 세로로 10줄쯤 되게 나란히 놓여있었던 것 같다. 의자 위에는 햇빛을 가릴 수 있도록 촘촘한 그물 같은 천으로 지붕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 지붕을 덩굴나무가 한가득 감싸고 있었다.


해뿐 아니라 비도 잘 막아주는 차양대 나무덩굴 아래 서서 젖은 교복을 털며 잠시 숨을 고르는데,

어디선가 불어온 달큰하고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아, 익숙하고 그립던 향기.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올려다 본 곳에는

포도송이 같은 등꽃송이가 차양 전체로 가득 맺혀 있었다. 비를 맞은 등꽃은 송이송이 마다 연보라빛 물방울을 머금고 있었고, 꽃송이 끝에 아롱지게 맺혔다 뚝 떨어지는 빗물에도 달큰한 향기가 베어있는 듯 했다.

원래도 고운 등꽃향기였지만 비에 젖은 등꽃향기는 더욱 짙고 그윽했고, 멀리 운동장의 흙냄새와 섞여 공기중으로 퍼져가며 만드는 그날의 공명은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가장 싱그러운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향기에 취한 우리는 우산없는 가여운 처지도 잊고 머리 위에 등꽃을 지고 벤치 의자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오래도록 놀았다.

그 사이 비가 그쳤다. 집으로 가는 발길이 아쉬웠다. 이렇게 예쁜 꽃을 나만 보고 이렇게 좋은 향기를 나만 맡다니.

매일 직장에서 고무냄새만 맡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주말에 함께 와서 볼수도 있었지만 오늘 밤에 비가 더 내려 꽃이 지면 어쩌나 염려가 됐다. 갈팡질팡 고민을 하다가, 어린 마음에 제일 아래로 처진 등꽃 한송이를 땄다.

(등꽃은 꺾는다는 표현보다 딴다는 표현을 쓰는 게 어울린다. 그리고 그뒤로 다시는 꽃을 꺾지 않습니다.)

꽃을 두 손에 조심히 받쳐 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도 내리지 않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등꽃을 담궈 두었다.


‘어서 엄마가 오면 좋겠다’


방안에서 돌돌거리며 엄마의 퇴근 시간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 사이 꽃이 시들지는 않을까 한 번, 아직도 괜찮나 두 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세 번, 계속 등꽃을 들여다 보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엄마가 퇴근을 했고 집으로 들어서는 엄마 손을 급하게 잡아끌고 자랑스럽게 세면대 안의 등꽃송이를 보여주었다. 이런 꽃이 운동장 벤치 한가득 피어있다고,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고, 향기가 온 천지에 진동을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막내딸이 최고라고 말하며 좋아하셨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하면 과연 그 꽃이 정말 예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에 담구어뒀다고는 하지만 이미 가지가 꺾인 꽃은 점점 시들어 엄마가 봤을 때즈음에는 향기도 생기도 잃고 축 늘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날 엄마를 웃게 만든 것은 꽃 자체가 아니라 세면대 안에 동그마니 담긴 딸의 예쁜 마음이었겠지.

지금도 가끔 보라색 꽃송이들이 가득 달린 5월의 등나무를 만나면 반가움이 몽글몽글 몰려든다. 곧이어 어김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중학교 운동장의 비에 젖은 등꽃향기와 화장실 세면대 안의 등꽃 한송이, 그리고 엄마.

그날 이후 내게 연보라색 고운 등꽃의 꽃말은,

'엄마를 위한 마음'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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