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리 소녀들

[그림에세이]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해후

by 노현지


지난여름 비가 연이어 오는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반가움에 설레며 확인한 문자에는 안타깝게도 친구 어머니의 부고가 적혀 있었다. 부랴부랴 부산으로 향했다.

그간 투병생활을 하신지라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했다며 담담한 표정을 짓던 친구는 서울에서 내려와줄 줄 몰랐다며 내 손을 꼭 쥐었다. 고등학생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똑같은 말투로 얘기하는 친구. 이 품 넓은 미소와 조근조근 농담하는 말투, 내가 참 좋아했던 그리운 모습이었다.

함께 조문을 간 친구까지 셋이서 오랜만에 마주앉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 언제인지 떠올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에 갈 때면 가끔씩 모였던 예닐곱 명의 친구들은 학교와 취직, 또 결혼을 하면서 거주지가 다양해졌다. 약 9년 전쯤 수원에서 있었던 한 친구의 결혼식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취직, 시험합격, 연애, 결혼 등 주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나눴다. 그후로 각자의 생활을 다지느라 바빠 드문드문 주고 받던 연락이 아예 끊어진지 한참. 그리고 어느새 이렇게 힘들고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을 나눌 나이가 되었다.


"뭐라고? 작가가 됐다고? 교보문고, 예스24 뭐 이런 데 들어가면 있는, 그런 책을 쓰는 작가? 야, 니가 잘못했네. 책 냈을 때 쫙 연락 돌렸어야지. 책도 팔고 그 김에 얼굴도 보고!"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에 발을 들였다는 내 얘기를 듣고 친구가 토끼눈으로 타박했다.

(놀라지 말자. 이것은 우리식 축하이다!)
연락도 안하고 지내다가 그런 일로 갑자기 연락하면 꼭 책을 사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 민망하고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친구의 문자를 받고 깨달았다.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긴 시간 연락없이 지냈음에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잊지 않고 전하는 소식은 그자체로 고마운 것이었다. 우리가 친구였고 또 여전히 친구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특별한 일 없이도 전하는 연락, 만나는 자리가 가장 반가운 순간일 것이었다.

"그래, 내가 다음에 부산내려 오면 연락할께. 너무 기쁜 일, 너무 슬픈 일 말고, 우리 그냥 별 일 없이 심심하게 만나자."


오늘 그 친구들을 만났다. 예전의 예닐곱 명이 전부 모이진 못하고 일단은 연락이 닿은 넷.

여전히 열아홉살 소녀같은 웃음과 장난의 말들이 오간다. 우리 눈에만 그렇겠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나의 추억속 소녀들이 반갑다.
이렇게 여전한 모습과 웃음으로 다시 모였으니,

나이는 드는데 마음은 여전해서 서럽기보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여전해 다행스러운, 그런 깨발랄하고 즐거운 우리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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