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찰나

[그림에세이] 감성캠핑주의자

by 노현지


꽤 오래 전, 어쩌다 4인 캠핑 장비가 풀세트로 생겼다. 아이가 어릴 때는 집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흔한 동남아 리조트 여행도 가 보지 않았던 나는, 역시나 같은 이유로 박스의 테이프도 뜯지 않은 채 좁은 집의 창고 절반을 차지하는 캠핑 장비 위에 꾸역꾸역 물건을 쌓으며 몇 년을 묵혔다.


큰 아이가 여덟 살, 둘째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여름, 처음으로 캠핑 용품 상자를 꺼냈다. 한번도 뜯지 않았지만 상자를 봉하고 있던 테이프는 시간에 삭아버려 뜯을 것도 없이 알아서 열렸다. 마치 이제는 갈 때라고,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원래도 정보 검색을 좋아하는 남편은 캠핑을 앞두고 인터넷 검색과 지인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에게 있는 짐 이외에 필요한 것들을 체크해 나갔다.


“조명이랑 전기 제품 꽂을 전기 릴선이 필요 하고, 잘 때 바닥이 딱딱하지 않게 텐트 안에 깔 매트, 도마, 칼, 그릇, 수저도 더 필요할 거 같고, 선풍기를 가져가기도 한대. 여름이니까 침낭은 필요 없겠지? 그리고 와~ 이거 봐봐. 설거지통이랑 다 씻은 그릇 말리는 건조대도 있어.”
“집에 있는 게 풀세트 아니었어? 조명이랑 그릇 거기에 다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캠핑 가서 설거지통이랑 건조대를 왜 써? 그냥 냄비에 담아서 씻고 대충 말려서 쓰는 게 캠핑이지. 거기까지 가서 전기는 왜 끌어다 쓴다는 거야. 선풍기는 웬말이고. 불편한 거 감안하고 자연인처럼 지내려고 가는 게 캠핑 아니야? 그런 거 다 할 거면 캠핑을 왜 가.”


대화에서 느껴지겠지만 나는 캠핑이 못마땅했고, 남편은 캠핑 갈 생각에 설레었다. 하룻밤을 숲에서 자기 위해 추가로 사야하는 구매 목록과 비용을 향한 나의 부정적인 대답에 남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서 지금 가지 않겠다는 뜻인가? 준비를 계속 해도 되나, 어쩌나…?’
“집에 캠핑 장비가 있으니까 가 보긴 해야겠지. 가지 않겠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 하루 때문에 이런 걸 다 준비하고 돈을 쓰는 건 너무 낭비가 아닌가 하는 거지. 최소한으로 챙겨서 가자.”


나는 편한 집을 두고 굳이 벌레가 많은 곳에 가서 불편하게 밥을 해 먹고, 춥게 혹은 덥게 잠을자고, 힘들게 뒷처리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편하게 동선을 계획한 집 주방에서도 음식하는 것이 이렇게 귀찮은데 왜 굳이 숲으로 가느냔 말이다.

캠핑을 설득하는 이들이 흔히 쓰는 레퍼토리인 ‘가면 내가 다 할께.’라는 말에는 더 짜증이 났다. 그럴 의지가 있거든 그냥 집에서 하란 말이다. 무엇보다 도시도 부족해서 숲까지 망치러 들어가는 인간의 발이 무섭기도 했다.


“엄마, 우리 캠핑 언제 간다고?”


내 생각이 어떻든 이미 캠핑의 기대로 가득 찬 아이들 때문이라도 첫 캠핑은 진행되어야 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정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다함께 창고형 캠핑 용품점으로 향했다.

층고가 높고, 깊은 창고건물에는 정말 상상 이상의 캠핑 용품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다양한 크기의 텐트와 그늘막, 세분화된 두께의 매트와 모기장, 간편함부터 편안함, 디자인요소까지 종류별로 구비된 테이블과 의자, 밝기와 크기별로 착착 진열된 조명, 설거지 건조대를 포함한 식기류, 조리대,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가방과 정리함, 아이들의 혼을 빼놓은 해먹에 캠핑에서 할 수 있는 야외 놀이감 등등.

놀랍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해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나를 향해 남편이 말했다.


“여봉봉, 걱정하지마. 나도 정말 필요한 것만 살꺼야. 그런데 집에 있는 조명은 정말 어두워서 밤에 거의 안 보인데. 그리고 전기 릴스도 조명 켜고 핸드폰 충전 하고, 이래저래 쓸 일이 많대. 좀 비싸도 괜찮은 조명이랑 전기 릴스, 바닥에 깔 매트 이렇게 꼭 필요한 것만 사서 가자.”

사실 남편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긴 했지만, 그 불만은 남편에게 있다기보다 불 번지듯 퍼지며, 또 불필요하게 거대해지는 캠핑 문화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에서 익히 보았던, 생활 속의 집안일은 하지 않으면서도 유희로써의 그것들엔 열심히인 이들에게 쌓였던 불편함이 남편을 향해 쏟아진 것이다. 이리 보면 남편도 안 됐다.


“알았어. 이왕 가기로 한 거니까, 필요하다 싶은 건 다 사.”

남편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 아이들과 여유의 상징인 해먹에도 누워 보고 소파처럼 푹신한 의자에도 앉아보며 모의캠핑을 즐긴 후, 쇼핑을 마친 남편과 함께 계산대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봉봉! 이거 좀 봐. 와~ 이거 너무 귀엽다.”


나는 말풍선 모양의 아크릴 전등 앞에 멈췄다. 전기를 꽂으면 말풍선에 불이 들어오고, 아크릴 판에 글씨도 쓸 수 있는, 감성을 자극하는 캠핑 용품이었다.


“가격도 별로 안 비싼데 하나 살래?”


남편이 제안했다. 필요한 것만 사라고 그렇게 도끼눈을 해 놓고 내가 이걸 사는 것은 염치 없는 일이었기에 눈알만 굴리는데, 남편이 하나를 집어 바구니에 담았다.



여름 밤의 캠핑장, 귀여운 말풍선 아크릴 전등에 딸이 쓴 글씨가 별과 달과 함께 빛났다.


“Camp out!!”


우리의 밤도 빛났다. 캠핑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초록의 싱그러움과 바비큐 향으로 둘러 쌓인 캠핑의 밤은 운치 있었다. 말풍선 전등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느라 바쁜 내게 남편이 말했다.


“마음에 드나보네. 그거라도 사 줘야 좋아할 거 같았어.”


캠핑 용품 상자의 테이프가 삭는 시간 동안 남편은 내 마음의 장벽을 녹이는 법을 터득했다. 정말 이 전등 하나로 캠핑을 향해 돋았던 나의 가시가 많이 뭉툭해졌다. 세상 필요 없는 이 작은 감성 전등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은 찰나이다. 내가 세상 필요 없는 이 작은 감성 전등에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누군가도 캠핑이 주는 크고 작은 즐거움에 마음이 흔들려 많은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뒤로 하고 기꺼이 캠핑을 떠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 순간이 숯불의 맛일 수도 있고, 별이 보이는 까만 밤의 운치일 수도 있고, 얼른얼른 빠져드는 ‘불멍’일 수도 있다. 혹자는 설거지 통과 건조대 같은 기발함 때문일지 모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지적인 채송화 선생도 바닥에 쌓아두어도 되는 장작을 위해 굳이 장작거치대를 사면서 행복했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하여 도끼눈을 뜰 필요는 없겠다. 대신 캠핑을 밀어내던 에너지의 방향을 돌려 유희의 장에서 살림을 잘 하는 그들을 생활 속의 집안일에도 불러들이고, 숲에 머문 우리의 발을 흔적 없이 다시 가져오기 위해 애 쓸 일이다. 각자의 스타일로 자기만의 캠핑을 즐기면 될 일이다.

“악~~~~ 엄마 벌레!!!!!”


자정까지 잠을 자지 않아도 엄마아빠가 뭐라고 하지 않고, 사랑하는 바베큐와 컵라면을 먹는 것을 캠핑의 백미로 꼽은 딸이 불 켜진 전등으로 날아드는 벌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어쩔 수 없어. 우리가 벌레들이 사는 곳에 굳이 온 거야. 그러니까 모기향 피우면서 쫓아내는 걸 우리가 미안해해야 하는 거야.”


까만 숲을 밝힌 우리의 전등 주위로 날아드는 벌레들도 나름의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 우리는 감성 충만한 말풍선 전등을 챙겨들고 두 번째 캠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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