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나의 이상형은 ‘바른 사람, 마른 사람, 그리고 우산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성격과 체형에 이어 기준마저 모호한 ‘우산을 잘 쓰는 사람’이란 조건의 탄생은 아주 어릴 적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고 스물 살에 시작한 서울살이에서 놀랍고 기뻤던 것들 중 하나는 서울은 부산에 비해 태풍의 영향이 적다는 것이었다.
여름이면 등교 여부를 고민하는 통화를 친구와 나눠야 할 정도로 남쪽 지역은 태풍이 잦았다. 아무리 우산을 꼭 붙들어도 바람이 한 순간에 휙 뒤집어버리는 우산 아래서 물에 젖은 생쥐꼴을 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허리까지 젖은 교복치마를 체육복 바지로 갈아입고 교실 책상에 앉아 어떻게 우산을 들면 우산이 뒤집어지지 않을지 숱한 고민을 했다. 그런 유의 생각은 어김없이 나를 더 오래 전의 어느 비 오는 날로 데려갔다.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일을 가셨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아니 국민학생 시절은 입학식 다음 날부터 혼자 등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은 비가 오는 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해 여름, 아주 아주 무시무시한 태풍이 상륙했었나 보다. 늘 혼자 가던 등굣길에 아빠가 따라 나섰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비바람의 위력은 어린 내 눈에 다소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학교 건물 앞까지 아빠와 한 우산을 쓰고 가는 동안 그 거칠고 난폭한 바람에도 우산은 한번도 뒤집어지지 않았다. 태풍만큼 무서운 성정의 아빠가 그날은 아주 든든하고 커다란 나무 같이 느껴졌다. 그 이후로 등굣길을 신경 써 주어야 할 만큼의 어린 나이에는 다신 그 정도의 태풍이 오지 않았었나 보다. 아빠가 우산을 받쳐준 기억은 그날이 유일했다.
하지만 우산과 교복치마를 날려버릴 기세로 몰아치는 비바람에 심장이 두근두근 집을 나가듯 나댈 때마다 아빠가 꼭 붙들고 비를 막아주던, 휘어지기 직전의,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던 그날의 우산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의 ‘우산을 잘 쓰는 사람’이란 이상형이 탄생했다.
서울살이에 적응하면서 ‘우산을 잘 쓰는 사람’에 대한 기대는 점점 흐려졌다. 서울의 태풍이 비교적 순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연애가 늦은 탓도 있었다.
매 여름이면 거세든 미약하든 태풍은 계절을 까먹지도 않고 꼬박꼬박 돌아오는데 언제까지 우산을 잘 씌워줄 사람만 기다리고 있겠는가.
그리하여 어린 날의 기억으로 태풍 예보만 보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던 나는 대학시절, 친구를 만나러 신촌에 나갔다가 우산 살이 튼튼하고, 딱 적당한 각도의 장우산을 하나 장만했다. ‘우산을 잘 쓰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둔 만큼, 나는 우산 살의 각도에도 진심이었다. 우산 살이 너무 펼쳐져 있으면 바람에 쉽게 뒤집어 지고, 그렇다고 너무 감겨있으면 비를 막는 각도가 작아 비에 노출되는 부위가 넓어 진다. 그 중간의 아주 마침맞은, 보는 순간 아름답다 생각되는 나만의 각도가 있었다. 신촌의 거리에서 나는 그런 우산을 운명처럼 만났다. 무늬도 알록달록 화려해서 비 오는 날의 우중충함을 한 번에 날려주고, 가볍기까지 한 우산. ‘우산을 잘 쓰는 사람’ 대신 만난 이 우산이 아주 흡족하여 이상형에 대한 미련마저 싹 사라졌다.
몇 년 후 회사에 입사하고, 또 몇 년이 흘러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내 우산을 본 선배 하나가 우산이 튼튼하고 좋아 보인다며 치사의 말을 전했다. 지금 생각하면 인사치레로 그냥 한번 해 본 말인 듯 한데, 나는 마치 내가 칭찬을 받은 것처럼 우쭐하여 이 멋진 우산의 내력을 설명했다. 선배는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랐다.
“뭐? 우산을 10년이나 썼다고? 그걸 잃어버리지도 않고? 너도 참 대단하다.”
선배의 말에 차근히 짚어보니 우산을 산 지가 거의 10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만난 이후 늘 든든한 모습으로 세찬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벌써 10년이나 되었다는 것에 나도 선배만큼 깜짝 놀랐다. 더 놀랍게도, 그 우산은 여전히,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나와 함께 집을 나선다. 어느 덧 근속연수 20년을 바라보는 베테랑. 나는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의 가치를 높이 사긴 하지만, 그렇다고 물건을 아끼고 잘 관리하여 오래도록 함께하는 다정함은 없는 사람이다.
특히 우산으로 치자면, 그간 내게로 왔다가 길을 잃은 우산, 살이 부러진 우산, 지인에게 빌려주고 못 받은 우산 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도 들고 다니기에도 번거로운 이 길다란 우산이 아직 나의 곁에 있는 것을, 나는 운명이자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난히 마음에 쏙 들었던, 꼭 필요했던 순간의 내게 아주 적당한 모습으로 다가온 우산.
이 우산을 들 때면 나는 아직도 처음 우산을 사서 비를 피하던 그 순간인 듯 느껴진다.
여전히 우산이 곱고, 든든하고, 고맙다. 길게 살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적지 않게 살아온 날들 속에서 많은 것들이 시들해졌다.
한때는 대단했던 목표도, 노력도, 사람도. 심지어 이제 겨우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글조차도 때론 버겁고 지겨워질 때가 있었다. 유난히 비가 잦은 올해의 봄에 문득, 스물이 되어가는 우산을 바라보며 나의 스물을 생각했다. 많은 것이 두려웠지만 시들지 않을 자신만큼은 너무도 확연했던 날들. 스스로에게 조차도 시들해지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굳은 비를 가려준 이 우산처럼 앞으로의 20년을 시들지 않고 살아가 보려 한다. 지치기도 하겠지만, 낡고 헐거워지기도 하겠지만 결코 시들지는 않을, 비가 오는 날마다 처음 만난 순간처럼 비를 막아주는 나의 아름다운 우산, 같이.
이쯤에서 아름답게 끝을 맺었어야 했는데, 사족이 떠올라 버렸다. 나의 남편은 우산을 잘 쓰는 사람인가?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데이트를 하고,
서울에서 사는 우리가 우산이 뒤집어 질 정도의 태풍을 함께 맞은 적은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굳은 날씨라면 차를 탔거나, 차도 위험하다며 그냥 집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남편은 나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운명 같은 우산을 만나 이상형의 조건 중 ‘우산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항목이 희미해진, 또한 비바람 앞에서 덜덜 떨던 그때보다 많이 커버린 나의 이상형은 어느샌가 ‘바른 사람, 마른 사람, 그리고 모진 태풍을 함께 맞을 수 있을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