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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치 Dec 07. 2015

2014년의 마트로시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무렇게나 써보는 영화 일기 - 01

이제부터, 글을 조금씩 써볼까 한다.

리뷰도 좋고, 짧은 단상도, 수필도, 소설도 좋고. 무엇이든 써나가려고 한다.


몇년 전부터 때때로 날 휘감아서 곤혹스럽게 했던 홍상수 영화의 대사처럼

"생각을 해야 해, 그래야만 살 수 있어"

글을 쓰고 생각을 해야만, 생의 감각을 더 생생히 느끼리라 믿는다.


너무 거창했나, 이럼 또 내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말테니 잠시 접어두고-


봤던 영화들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겸,

글도 쓰다 보면 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 겸,


그러다보면 언젠간 만족할 만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함께.

일단은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


오랜만에 쓴 글은 그냥 저냥 적어본 글이 아니라 목적이 있어서(?)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마음엔 안들지만,

그래도 못나도 내새끼려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웨스 앤더슨 감독 / 2014. 03. 20 개봉


어린 시절 아버지가 출장 돌아오는 길에 마트로시카 인형을 사다 주신 적이 있다.


인형 속의 인형. 열고 또 열어도 새로운 인형이 나를 보며 묘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마트로시카. 마트로시카를 가지고 놀면서 가장 작은 인형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모두 꺼내 놓고 일렬로 세워 두고, 다시 차곡 차곡 넣어 놓는 단순한 과정의 반복에 희열이 존재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여러 번 뚜껑을 열어야 만 하는 마트로시카와 닮았다. 파스텔 톤에 켜켜이 쌓인 (웨스 앤더슨의 편집증적일 정도로) 예쁜 호텔은 산 꼭 대기에 얹혀져 있고, 누군가 열어 주길 기다리는 케이크 선물 상자와도 같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묘미는 그 켜켜이 쌓인 공간들이 미묘한 뒤틀림으로 흔들리고, 그 뒤틀림이 극의 리듬을 절묘하게 흔들며 그 자체로 생명력 있게 요동치는 데에 있다. 액자의,액자 속의, 또 하나의 액자 속의 이야기가 차츰 열리는 순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몸은 점점 앞으로 기울게 되고, 결국 가장 작은 마트로시카 인형인 무슈 구스타프에 이르러서는 스크린에 뛰어들 모양새로 앉아 있는 날 발견 할 수 있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마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하고 작정한 모양새로 이야기의 선물 꾸러미를 차근 차근 풀어 나간다. 이 이야기는 정말 이야기일 뿐이에요, 라고 거리를 두는 것처럼. 그 모양새는 영화의 앞 부분 여러 모습으로 구체화 된다. 오래 전에 세상을 뜬 작가의 무덤 앞에 서서 그가 쓴 책을 소리 내서 읽는 소녀에서, 자신이 책을 저술하게 된 계기를 인터뷰하는 작가로, 작가에게 자신의 오래 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신사가 마침내 마주 앉아 들려주는 자리에서야, 마침내 감정을 담아 이야기를 응원할 상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텍스트(소설)는 말(인터뷰)로 구체화되고, 결국 말은 인류 최초의 콘텐츠인 ‘구전’(대화)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술되었다. 영화 속 작가가 마주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며 듣는 지점에서야 결국 나 또한 몰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점점 좁아지는 화면 비율에 통통 튀어 다니는 제로와 구스타프를 보는 순간,  눈으로 이야기를 소화하는 동시에 이 마트로시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숨겨 둘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는 무언가를 ‘넣어두는’ 모티브가 반복된다. 영화의 중요한 소품인 ‘사과를 든 소년’은 부다페스트 호텔 속 금고에 숨겨지고, 또 그 그림 안에 가장 중요한 기밀 문서가 숨겨져 있다. 심지어 사람조차 예외 없이 어딘가에 넣어지는데, 이야기의 시발점인 마담 D는 마차 속에 구겨 넣어진 채 풀 죽은 얼굴로 호텔을 떠나가고 그 후엔 관에 넣어진 채로 보여진다. 이처럼 마트로시카의 테마는 영화 내내 끊임 없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마치, 감독은 이것을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작정하고 보여주는 것처럼.


그 한가운데에 놓여진 마트로시카의 가장 작은 인형, 우리의 구스타프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끊임없이 시를 읊조린다.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시청각적으로 가장 발달한 매체 중 하나인 ‘영화’ 속 (안의 ‘책’ 속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구스타프는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보지도 않는 낭만적인 시를 읊는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무자비했던 시대조차 경쾌하게 그려지지만 보는 사람 모두 알고 있다. 구스타프처럼 낭만적인 시를 읊으며 그 시대를 버텨내기는 참 어려웠을 거라는 걸.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 듯 구스타프는 그 특유의 발랄한 제스쳐와 고고한 대사와 함께 퇴장한다.


그의 가장 작은 마트로시카 인형을 이야기 속에 넣어두기로 결심한 웨스 앤더슨 감독처럼, 나도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구스타프를 멘델스 케익 상자에 곱게 접어 마음 속 한 구석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무자비한 마음이 나를 뒤흔들 때, 경쾌한 몸짓으로 시를 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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