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_ 류승완, 2015
어이가 없네.
사건의 발단은 안하무인의 재벌 3세 조태오의 사무실에서 벌어진 주먹다짐, 아니 일방적인 주먹질이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피고용인과 그 피고용인의 피고용인, 두 사람에게 자기 눈앞에서 한판 싸움을 붙어볼 것을 주문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요구는 결국 한 사람을 죽음 가까이로 내몬다.
영화 전체를 이끄는 동력이 되는 이 장면에서, '을'끼리의 갈등을 조장하는 '갑'의 모습에 대한 비유는 다소 투박하고 직설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재벌가의 추악하고 뒤틀린 모습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를 생각보다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곱씹어볼수록 되레 새롭게 느껴지는 장면이다(재벌chaebol이라는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소재는 장르적으로 활용될 만한 여지가 충분한데도 한국영화들은 이에 너무 소극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성룡을 동경하던 충무로의 액션키드 류승완이라는 점은 이 '맞짱' 신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인간의 몸끼리 직접 부딪히는 맞짱(속어이긴 하지만 이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남다른 애정은 익히 잘 알려져있다. 그런 그가 이제껏 가장 많이 들어왔던 지적은 아마 '영화가 쓸데없이 치고받고 싸우기만 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치고받기'는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된다. 영화에 주먹질을 담길 좋아하던 한 감독은 이제 그 주먹질에 세상을 담는 베테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