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_ 루카 구아다니노, 2017
And I would say I love you
But saying it out loud is hard
영화에 삽입된 수프얀 스티븐스의 <Futile Devices>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한참 이전에 발표된 곡이지만 새로 만들어진 오리지널 곡이라 해도 납득할 정도로 영화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특히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크게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다"는 가사는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다. 노래 속 화자는 연인을 향해 느끼는 절절한 감정들을 풀어놓으면서도 그 말을 직접 소리 내어 전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영화 속 엘리오와 올리버도 마찬가지다.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마지막까지(그리고 훨씬 상세한 버전인 원작 소설에서조차), 그들은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김혜리 평론가는 팟캐스트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해 퀴어 영화의 클리셰인 장애물 같은 것 없이 '온우주가 나서서 응원해주는 사랑'을 그리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설명은 반만 맞고 반쯤은 틀렸다. 눈에 띄는 외적인 장애물은 없어 보이지만 끝끝내 그들이 부딪혀 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난관인 '말'의 벽이 있다. "너는 정말 모르는 게 없구나.",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요.", "중요한 것이 뭔데?", "당신은 알고 있잖아요.", "네가 말하고 있는 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거야?" 이처럼 그들의 말들은 영화의 극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고백 장면에서조차 그 '중요한 것'에 완전히 가닿지 못하고 머뭇대다 멈추고 끊어진다. 그리고 결국 "우린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돼."라는 포기 선언까지.
Words don't come easy to me
영화에는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마는 어느 기사의 이야기가 인용된다. 이는 언뜻 '말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엘리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리버 쪽에 더욱 겹쳐보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말이란 건 내게 쉽지가 않네요(Words don't come easy to me)."(F. R. 데이비드, <Words>)라는 가사도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주체 못 할 감정 속에서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하고 있던 엘리오는 상대가 확언만 건네준다면 언제든 사랑한다고 크게 소리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 기회를 주지 않는 건 올리버다. 그는 "전 저에 대해 잘 알아요. 세 개를 먹으면 다음엔 네 개, 그 다음엔 그 이상을 원할 거예요."라며 늘 "나중에(Later)."라는 말로 스스로를 통제하고 선을 긋는다.
그래서 결국 이들의 말 역시 정작 '중요한 것'은 전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마는 '소용없는 도구(Futile devices)'에만 머무르게 되는 것일까? 언어의 변이와 다의적인 사용에 능한 학자인 올리버는 그 '말'의 벽을 뛰어넘는 대신 자그마한 균열을 일으켜보길 시도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그의 제안은 언어의 지시와 의미 대상 사이의 관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차마 '사랑'이라 명명하지 못한 그들의 감정을 각자 자신의 이름으로 대신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로써 상대방을 '자신의 삶을 이치에 맞도록(make any sense) 만들어주는 유일한 존재'(원작 소설 부분 의역)로 인정하는 것이다. 결말에 이르러 수화기 너머의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두 사람에게 더 이상 다른 도구는 필요 없어 보인다. 그 나지막한 말들이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릴지라도(Although that sounds dumb)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