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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Yi Jul 23. 2015

비밀의 햇볕이 내리쬐는, 密陽

밀양 _ 이창동, 2007

_ 2013년 2월 15일 

- 아저씨,
밀양이라는 이름의 뜻이 뭔지 알아요?
- 뜻요? 뭐 우리가 뜻 보고 삽니까,
그냥 사는 거지.
- 한자로 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의 햇볕, 좋죠? 


급하게 여행 계획을 짜다가 비어 있는 코스 중간에 잠깐 밀양에 들르기로 했다. 영화의 주요 촬영지들이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아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출발 전에 다시 본 영화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머리 위를 비추는 햇볕은 늘 그대로이고,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이고, 그래도 혹시 누군가 곁에서 거울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것, 그 담담한 사실들이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도시 밀양은 영화 밀양과 얼마나 가깝고 또 얼마나 먼지 궁금해졌다. 밀양역에 도착한 건 공교롭게도 볕이 좋은 정오 쯤이었다.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 물씬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계절은 전혀 달랐지만 날씨 덕을 본 듯했다. 역 앞 광장은 영화에서 종찬이 민기를 배웅하는 장면이나 신애와 종찬이 교회 선교부 활동을 하는 장면 등의 배경이다. 광장 옆 상가 앞쪽으로 가보니 영화 장면들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편의점이나 다방, 식당들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파출소도 그대로였다. 




특정 지역의 관광 행정에 대해서 굳이 지적질을 하고 싶진 않지만, 음... 


역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쭉 걸어가다 보면 '전도연 거리'가 나온다. 영화에서 신애가 운영하던 피아노 학원이 자리하고 있어 영화에 자주 나왔던 거리인데, 사실 세트장 말고는 별다를 것 없는 지방 소도시의 풍경이다. 



'준 피아노' 세트장의 외관은 간판이 덧붙여지고 팻말이 생긴 것 말고는 영화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부는 작은 기념관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일부 소품들은 영화에서 쓰였던 것과 비슷한 것을 가져다 놓은 듯했다. 특히 영화에서 아주 강렬한 장면이었던 신애가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장면에 나왔던 그 소파의 '진퉁'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영화 속 의상들은 정말 촬영 때 사용했던 것들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어쨌든 영화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던 공간. 


칸영화제 수상 당시의 전도연의 모습은 아름답긴 했지만 장소의 질감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학원 앞 거리는 정말 영화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다만 영화에서 학원 길 건너에 자리하고 있던 '은혜 약국'은 진짜 약국 자리가 아니었는지 아니면 이후에 바뀐 것인지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영화를 보면 신애가 왕복 1차선 도로를 조금은 위험하게 가로지르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따로 신호등이 없어서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도로 양쪽을 오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도로에 차는 좀 많은 편이어서, 나도 신애처럼 좌우를 살펴본 후에 조심스레 길을 건넜다. 


볕이 좋은 날씨 덕을 정말 많이 본 것 같다. 



신애가 구원을 얻고자 찾아갔던, 교회 장면들의 촬영지인 '밀양 남부 교회'에도 가보았다. 주차장에 든 햇볕이 영화 속 장면들을 상기시킨다. 





영화 후반부에 종찬이 차를 타고 다리(밀양교)를 건너며 민기에게 설명해주던 '영남루'.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하는데 영화에서처럼 다리 위에서 바라본 모습을 찍고 싶어 일부러 한 정거장 일찍 버스에서 내렸다. 밀양 영남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고 한다. 맑은 밀양강과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물론 누각 쪽에 가서 찍은 사진들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 여행기이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는 걸로... 



사실 밀양역에 내릴 때까지만 해도 여행 중간에 떠올리기엔 너무 무거운 영화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오히려 빡빡한 여정 중에 잠깐의 휴식이 된 좋은 시간이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 하나 없는 거리에 길게 내리쬐는 햇볕도 반가웠고, 영남루에서 느낀 시원한 강바람도 썩 좋았다.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일상성이 강한 이 지방 소도시를 그야말로 '고스란히' 배경으로 하여 밀양과 같은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낸 이창동 감독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소에 이렇게 종종 찾아가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영화의 여행'에서는 영화 속 장소에 찾아가보았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로, 2년 전에 밀양에 다녀와서 적어둔 글을 조금 편집해서 옮겨보았습니다.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보니 얼마나 업데이트될 수 있을런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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