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 같은 애인 _ 김광식, 2010
부도난 회사에서 3개월가량 근무한 경력이 다인 지방대 출신 여성에게, 아무리 '스펙 쌓기'에 노력을 기울여도 취업의 문은 너무도 좁다. 그런 세진 앞에 나타난 옆방 세입자 동철은 깡패의 탈을 쓴 '요정' 같은 존재다. 물론 세진의 우산을 몰래 쓰고 나가 그녀의 면접을 망치게 한 업보가 있긴 하지만, 대신 동철은 다른 면접날 빗속을 뛰어가 우산을 사다 주고, 세진이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의 진상 손님들을 쫓아주며, 그녀에게 몹쓸 요구를 한 회사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혼을 내주고, 영양실조로 쓰러진 그녀를 발견해 병원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날아간다.
면접에서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받기도 어려웠던 세진에게 겨우 찾아 온 최종면접의 기회를 지켜주기 위해 동철은 말도 안 되는 협박으로 면접장을 점거한다. 이 '취준생의 요정'이 시도한 사소한 저항은 실낱 같은 기회에 매달리는 청춘들에 대한 투박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영화 전반부에서 그가 세진 앞에서 말했던 '다 때려 부수고 개X랄을 떨' 줄도 모르는 그 '착하디 착한' 청춘들 말이다.
야, 요새 취직하기도 힘들다던데.
그래도 우리나라 백수들은 착해요.
거 테레비에서 보니까 그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X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러는 줄 알고...
야, 넌 너 욕하고 그러지 마,
취직 안된다고, 어?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어.
힘내 시바.
혹자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라 여길지 몰라도,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던 군 복무 중에 우연히 TV를 통해 이 영화를 접했던 내게 이 면접장 점거 신은 그 해 보았던 가장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틀 안에 당시 88만 원 세대라 불리던 청춘들의 절실함과 아픔을 잘 녹여냈던 이 영화가 나온지 어느새 5년이나 지났지만, 세상은 더 잔인해졌으면 잔인해졌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