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품고 있던 마음을 끄집어냈다. 마침 내겐 2017년이라는 미지로 가득 찬 시간이 있었고 실행할만한 돈도 조금 있었다. 막상 등록하고 보니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꺼내 보인 것을 사람들은 ‘꿈’이라고 불렀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2017년 1월, 각기 다른 동기를 지녔지만 6개월간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릴 13인이 모였다. 1월은 그렇다. 좌절했던 이도 어째서인지 다들 일어서고 다이어트나 금연은 하나쯤 말해도 되고, 없으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까닭 모를 희망으로 부풀어도 괜찮은 때가 바로 새해다. 앞에 나와 자기소개를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6개월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업만 총 141시간. 읽지 않고 말하는 법, 소리는 어떻게 나오는가, 연기를 잘하는 법, 이중모음과 겹받침 발음법, 복식 호흡법 등 배운 것도 배울 것도 많았다. 선생님이나 주위 사람들의 칭찬은 모르핀 같았다. 마치 네가 지금 쓰고 있는 시간과 돈,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6월 한 달은 수강인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멤버들이 줄곧 같은 자리를 지켰다. 난 어느새 단 두 번만 결석한 꽤 성실한 학생 무리에 속해 있었다. 수료증을 받던 날, 동동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다음 달부터는 또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어디의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스쳐 지나갈지라도 매달 들어오는 정기적인 수입이 없다는,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도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다른 쪽으로 노선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가 굳이 드러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7월에는 다른 학원에 등록했다. 아래로 10살 정도 차이 나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씩씩하고 순수했으며 무엇보다 수업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성인이 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10여 년을 보내면서 자본주의의 쓴맛에 적응한 30대가 많았던 전 학원과는 사뭇 달랐다. 수업시간은 물론, 함께 밥을 먹을 때나 그룹 채팅창에서도 이야기의 내용과 분위기는 차이가 있었다. 간혹 내가 어떤 얘기를 하면 아이들은 내게서 파나마 운하나 갈라파고스의 새떼들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신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이론으로 손꼽는 ‘내가 알기론’을 시전하고 싶지 않아 가급적 말을 아끼다 보니 언제나 청취자 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지도에 등록되지 않은 섬에 도착해 새로운 인종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인류학자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중학교때 여자친구 얘기나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매운 라면을 먹은 얘기를 바로 어제 얘기처럼 하는 것을 보며 – 실제로 그들은 4년 전엔 중학생이었다 –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일대일로 얘기해보면 아이들은 지금 자신의 선택이 과연 잘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현재 대학을 다니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의 비교를 통한 불안함을 드러내곤 했다.
옳은 선택을 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지금의 내가 답할 순 없다. 내가 고민해서 결정내렸다면 그 선택의 책임 또한 내가 져야 한다. 미래에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면 지금 후회없이 하는 수밖에 없다, 는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또 어쩌면 그다지 답변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8개월 동안 시간과 돈, 마음과 애를 썼다. 그 어느 것도 쓰고 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마지막 수업을 했던 날 밤 동동주에 불콰해진 나는 맥주잔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걸 못한다고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되든 안되든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살아갈거고 그 삶은 또 그 나름대로 멋진거야” 뭔가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이 그럴싸해보이는 말이지만 실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빙자해 실은 내 귓구멍에 때려 박고 싶은 말이었다. 실체없는 불안함에 먹이를 주지 말자고 순간을 집중해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