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연애

내가 왠지 더 좋아하는 것 같을 때

by 중앙동 물방개

연애를 시작한 친구 A는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사람과 사귀는 것,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한 이가 바로 나라는 것, 그런 우리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까지. A가 올린 SNS 게시물 몇 개만 봐도 쉬이 느껴졌다. 다만 A를 통해 들어간 상대방의 계정엔 그런 분위기가 조금도 전해지지 않았다.


내 모든 감정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SNS에 올리고 연애의 시작이든 이별이든 투명한 유리체처럼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적인 영역 안에서도 덜 사적인 것과 더 사적인 것을 구분해 최소한으로 아주 적게 게시하는 이도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경우, 더 표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에게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별을 결정짓는 무수한 요소 중에 한 터럭이 되기도 한다.


연애하는 양쪽이 동량의 애정을 가지는 건 불가능하며 애정의 무게를 잴 수도 없지만, 가끔 어떤 연애는 제삼자가 이렇게 몇 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 친구와 조금 더 오래 만나고 싶다면 보폭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상대가 티 내고 싶어 하지 않으면 존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냥 좀 더 오래 가는 연애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지만 나도 안다. 이런 의견을 지닐 수 있는 건 내가 그 연애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연애에 관해서만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연애 척척학사가 된다. 자기 안에 애정이 넘쳐흐르는 사람이 그것을 쏟지 않으려면 줄여야 하는데, 사랑하는 이가 정말 가능하겠는가.


연애나 결혼 관련 문제로 후배들이 반려인에게 상담을 요청해 오면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사랑하거나 그렇기 때문에 헤어지거나 둘 중 하나야.


어떤 연애가 당신의 넘치는 사랑과 표현으로 인해 마침표를 찍는다면 - 그게 상대가 원하지 않았던 잘못된 방식의 표현만 아니라면 - 어쩔 수 없으리라. 에누리 없이 사랑해야 혹여나 추후 이별하게 되어도 덜 후회하며 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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