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드런 액트, 책임도 케어도 없는 곳에 내몰린다면

선택을 신중하게 하라는 영화가 아니다

by 중앙동 물방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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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칠드런 액트를 보다. 가정법원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같은 사건을 두고도 극단적으로 상이한 감정들이 얽힌 공간이다. 그런 곳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최소화한 채, 법과 판례에 따라 최선의 판결을 내리는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가 있다. 피오나는 여호와의 증인인 미성년이 생명이 위험한데도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사건을 담당하면서 그답지 않게 소년을 직접 찾아가는 이례적인 행동을 한다. 이는 분명 남편 잭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내면의 균열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옳다고 믿었던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피드백은 피오나에게 자신이 그간 내렸던 판결과 지나온 삶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반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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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가 아담(핀 화이트헤드)을 찾아간 것은 아담에게나 다른 사람에게서도 전례 없는 일이기는 하나, 피오나 자체에게도 특이한 사건이다. 가기 전 그곳에서 예이츠의 시로 된 아일랜드 노래를 부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녀가 법정에 돌아와 내린 결론은 그러나 감상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판결이었다. 이는 아담의 마지막 말과 칠드런 액트의 결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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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 가진 힘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바꿀 만큼 막강하지만, 사실 그 판결이 주는 삶의 변화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판결은 내린 자의 몫이 아니라 받은 자가 감수할 일이다. 특히 칠드런 액트가 말하는 사건의 주요 인물인 '만 18세 이하의 미성년'은 개인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 그 결심의 무게와 상관없이 이미 미성년의 결정은 불완전하며 미성숙하다는 어른들의 확고한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때론 그 확고함이 자만 같다) 따라서 우리는 한 번쯤 미성년자의 삶에 대해 어른이 통제해줘야 한다는 당위, 또 미성년자에 대한 기준 - 만 18세를 몇 달 앞둔 아담을 보여주는 건 그 때문이다 - 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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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책임의 의무는 없다. 물론 판사는 그 판결의 무게와 가치, 사회적 파장을 분명 고려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정하고 진중하게 임하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부모도 판사도 아닌 미성년자가 오롯이 그 판결 이후의 삶을 감내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판결 이후의 아담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결심에 대해 부모는 별 관심없는 것처럼 보인다. 주말에 종교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가자고 아담에게 권하는 것이 그 증거다. 책임지는 이는 없으나 어쩌다 맞이한 국면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법과 사회가 정해놓은) 미성숙한 자아는 이럴 때만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이중적인 판단과 무관심 속에서 방황하고 어려움을 체감할 수밖에 없음을 칠드런 액트는 충실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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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지만, 모태신앙을 당연히 여기는 게 싫다. 말이야 모태지 그저 부모가 믿고 좋아하는 것을 자식에게 특별한 근거 없이 강요하는 부모의 이기일 뿐이다. 애초에 자식을 가치 판단이 가능한 주체적인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나는 이것을 좋아하지만(혹은 믿지만) 너는 종교든 스포츠든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알려주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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