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 후기, ‘그럼에도’ 우리는 입을 연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국가폭력에 대항하며

by 중앙동 물방개

영화 김군을 보다.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아낀다. 이 접속사 뒤에 따라오는 문장에 지나치게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아 조심스럽고 앞에 조건이 정말 힘든 상황일 경우 그것을 마치 반드시 극복해야만 한다는 강제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넘어가고 그럼에도 해냈을시엔 박수를 치면 그만이다. 영화 김군을 보면서 나는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주억거렸다.

사진 속 인물을 찾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역사 속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고 대개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배우지만, 우리는 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렇게 평온히 말할 수 있다. 당사자는 감독에게 당신이 오늘 이렇게 묻고 나면 난 또 얼마간 잠도 못 잘 것이라 말한다.

40여 년이 다 되어가도 그날은 동떨어진 점으로 존재하지 않고 점심으로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오늘 야구 경기의 라인업 따위를 살펴보는 일상과 분명 다른 하루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같이 밥 먹고 인사를 나누던 사람이 국가가 자행한 학살에 희생되어서 떠올리는 것조차 여전히 큰 고통을 동반한다. 감독과 작가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끄집어내면서까지 해야할 일인지 수도 없이 자문했다고 한다.

프리모 레비의 말처럼 과거의 일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아니 사실 지금도 계속 되는 중이다. 영화 속 노란 리본의 등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39년 전과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왜 언제나 피해 입은 사람이 자신의 환부를 헤집어 아픔을 증명해야 하는가. 진실에는 관심없고 들려줘도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사람들은 결국 이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진실에 관심 없기 때문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국가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희롱하면서 도대체 얻는 게 무엇인지 평생 주목받지 못할 인생을 살기에 자신의 비루한 미래에 대한 화를 만만한 타인에게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발소에서도 머리 감는 것조차 남에게 맡길 수 없는 피해자들에게 찾고 싶은 자존감이란 얼마나 너절한 생인가.

5월 23일 이후 사진 속에서 사라진 김군 말고도 더 많은 김군을 우리는 영화는 물론, 역사와 우리 주변에서 보았을 것이다.

초입으로 돌아가 비록 피해자의 복기가 여물지 않은 상처를 계속 드러내는 일이라도 해도 그럼에도 단순히 누군가에게 진실을 증명하고 반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의 입이 되어주기 위해서라도 영화 김군이 필요하다.



* 본 글은 브런치무비패스로 영화 김군 시사회에 초대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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