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비단 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부부관계를 지속하는 원료가 단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 인정, (인정을 가장한) 포기, 때에 따라서는 자녀가 될 수도 있다. 연인 또는 부부 관계의 동력을 하나로 꼽을 순 없지만, 내 경우엔 '이 사람과의 이야기와 침묵이 편안한가' 여부다. 결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함께 걷는 것으로 둘 사이에는 이야기와 침묵이 시계추처럼 오간다. 대화가 두렵지 않고 소재가 고갈되더라도 침묵이 어색하지 않다면 긴 여정이 그리 힘들진 않을 터.
영화 러브리스의 주인공인 제니와 보리스 사이엔 분노와 불신, 고성과 긴장 섞인 침묵이 전부다. 이는 제니의 엄마도 마찬가지, 남에게도 이럴까 싶은 폭언과 날 선 감정을 딸에게 밀어부친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사랑 또는 그것에서 파생된 유사 단어조차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아주 짧은 순간 함께 숨 쉬는 것도 고역인 그들을 마지막으로 연결하는 건 바로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알로샤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아이가 아닌 아이의 '실종'이다. 제니와 보리스가 바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묵은 때 같은 자녀가 사라졌는데 아이의 가출 원인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모로서 최소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자의 외출이 아이의 실종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하는 최초의 부모 노릇이다. 외려 자기 아이의 실종처럼 적극적인 자원봉사자의 모습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이 찾기에 대한 열망은 그나마 부모에게 남아있는 한 줌의 애정에서 비롯되나 이미 노선을 달리한 오래된 듀엣 가수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상기시킨다. 그 과정에서 그 흔한 서로를 위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둘은 하루가 끝나면 각자의 애인에게 돌아간다.
영화 내내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는 분명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으로 점철된 현실이나, 그들에겐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외면하는 실체 없는 세계나 다름없다. 아이가 없어진 세계 또한 전봇대의 낡은 전단만이 증거하는 과거일 뿐,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늘을 산다. 사랑과 책임이 자리할 곳에 놓인 무관심만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며 러닝머신을 뛰는 제니의 옷에 러시아가 크게 쓰여 있음은 비단 그 모습이 단순히 한 가족을 넘어서 러시아 전체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