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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비 May 06. 2019

엄마 혼자 고생하는 제사

오늘은 아빠의 아빠, 할아버지의 제사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아주 어릴 적 돌아가셔서 나와 엄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러니까 모르는 분이다. 그러나 할머니도 아빠도 고모도 신경 쓰지 않는 할아버지 제사를 지금까지 엄마는 혼자 지냈다. 물론 할머니의 압박 때문이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지난해였다. 아빠와 나 동생 모두 타지에 있는 바람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엄마 혼자 할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제사를 마친 엄마가 가족 단톡에 제사상 사진을 올렸을 때 사진을 보고서야 할아버지 기일인 줄 알았던, 그럼에도 고작 수고했다는 한 마디가 끝이었던 아빠의 반응을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다행이다 싶었지만 되려 엄마는 어차피 하던 건데, 일 년에 한 번인데, 라면서 계속하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압박이 있었던 오랜 세월이 익숙해진 지금은 엄마의 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오늘이 된 할아버지 제삿날, 휴일이라 아빠와 나는 집에서 쉬었고 엄마는 출근했다. 신나게 늦잠 자고 있던 내게 전화를 건 엄마는 제사음식 몇 개를 사 오라고 시켰다. 안 씻어서 밖에 나가기 귀찮은 게 제일 컸지만 대체 왜 할아버지 제사 준비를 아빠만 쏙 빼고 하는지. 반항심에 더 나가기 싫어졌다.

아무리 내가 오늘 제사를 지내지 말자, 차라리 아빠를 시켜라,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현실을 받아들이고 엄마를 도와 제사를 지내야 하는 걸까.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고생하는, 그걸 지켜보는 게 더 고통스러워 결국 하고야 마는, 딸이 가진 이 딜레마는 정말이지 숨이 막힌다.


결국 엄마 퇴근 시간에 맞춰 제사음식과 내가 먹고 싶은 반찬 몇 개를 배달시켰다. 배달을 받아 들고 이게 뭐냐며 묻는 아빠에게 오늘 할아버지 제사라고 말하며 표정을 살피자, 역시나. 아빠는 할아버지 기일인 줄 몰랐던 게 분명하다. 물론 알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퇴근하자 국과 다른 반찬을 만들고 과일을 다듬으며 제사상을 차렸다. 이윽고 완성된 제사상 앞에서 할아버지가 음식을 드시기 전과 후, 두 번에 걸쳐 절을 했다. 일부러 절을 대충 하는 건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할아버지, 혹시 제 얘기가 들리신다면 제발 제사 안 지내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비혼을 결심한다. 결혼해서 이런 삶을 겪는 것도 싫고 내 자식이 물려받는 것도 싫다. 대고 전통이고 뭐고 다 끊겨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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