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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금비 Oct 22. 2023

직업의 귀천은 내가 만든 거였구나

"기존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나는 과거의 타이틀로
나의 현재를 재단하고 있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본인 자녀를 유학 보낸 엄마 주변 지인분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하신다.


“그때 걔들한테 쏟아부은 돈으로 차라리 상가에 투자해서 카페나 차려줄 걸 그랬어. 교육비, 생활비로 나간 돈 몽땅 모아보면 상가 한 채 가격 나올 텐데. 그때 그 건물 샀으면 지금 그게 다 얼마야.”


그렇게 과거의 돈과 시간만을 계산해서 따져버린다면 사실 나는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다. 한 상가를 분양은커녕 월세를 낼 만한 돈은 나에게 지금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9년 동안의 유학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언어, 넓디넓은 포용력과 이해, 어딜 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과 독립성을 얻었다.


그 덕에 기존의 경로를 이탈해 새로운 경로를 개척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 가치는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퇴사 후 패기 있게 시작한 에어비앤비 사업의 희망을 한순간에 져버린 나는 한동안 무기력했다. 자본을 불릴 시드머니도 없을뿐더러,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없어 이직 생각도 없는, 한꺼번에 몰려온 슬럼프에 지쳐버린 몸뚱이 하나만 남았다. 그러나 폐업해 버린 에어비앤비 공간 월세는 계약 만료일까지 계속 내가면서 억지로 살아야 했다. 월세값이라도 벌어야 했던 나는 알바 공고가 모여있는 앱들을 깔기 시작했다. 나이, 성별, 최종 학력을 적고 맞춤 검색을 해보니 알바 경험이 전무하고 석사를 졸업한 30대 여성에게는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쿠팡 물류센터로 가는 셔틀버스 안에서(2020.08.21)

유일하게 경력과 나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뽑은 곳은 쿠팡 물류센터 알바였다. 백수였던 나는 심야수당도 받아내겠다며 호기롭게 저녁 9시부터 아침 6시까지 밤을 꼬박 새우는 새벽 시간대로 지원했다. 안내받은 셔틀버스에 올라 서울 외곽에 위치한 한 물류센터로 이동한 후 몇 가지 등록 절차를 마치고 나니, 나는 어느새 컨베이어 라인의 마지막 지점에 배정받았다.


훼손된 택배 박스를 이어 붙이거나, 새로 포장을 하고, 컨베이어 라인 중간중간 제대로 인도되지 않은 박스들을 팔레트 위에 차곡차곡 내 키보다 높게 다시 쌓아야 했다. 수백 개의 택배가 올라간 팔레트를 수동 이동 장비로 낑낑대며 다시 컨베이어 라인의 첫 지점으로 옮긴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정말 기계와 같은 일이었다. 1분이 10분처럼 흐르는 그곳에서 이를 악물고 힘을 내봤다.


사실 몸을 쓰는 것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내 파트 관리자였는데, 날 보자마자 툴툴대며 차갑게 나를 대함은 물론, 내 몸보다도 큰 이동장비 운전법도 틀린 방법으로 가르쳐줬다. 그 복잡한 센터 내에서 가는 길목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는 그 이동장비를 내 뒤에 두고 앞으로 당기면서 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관리자가 나에게 와서는, “저기요, 이렇게 당기시면 어떻게요, 앞으로 밀면서 가셔야죠!” 초짜인 나는 허둥지둥 죄송하다고 답하고 이동장비를 내 앞에다 두고 밀면서 운전하기 시작했다. 시야는 막히고, 미는 힘이 더 들고, 그러다 보니 구불구불 운전도 제대로 안 됐다. 그걸 옆에서 바라본 나이 지긋한 소장님분이 왜 그렇게 끄냐면서 뒤에 두고 당겨야 더 빨리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에게 올바른 운전법을 알려주시면서 중얼대셨다. “아니 저 관리자는 왜 맨날 새로운 사람들만 오면 저러는지 몰라.”


명백한 텃세였다. 심지어 같은 파트에 있던, 나보다 두세 번 더 와본 것 같은 경력자 친구는 그 관리자 옆에 딱 달라붙어서 일을 최대한 나에게 미루기도 했다. ‘하, 참. 이 작은 곳에서도 그들만의 권력 구조가 이루어지는구나.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라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하고 어차피 8시간 후에는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인지라 그냥 웃는 얼굴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9시간이 지나고, 무한으로 쏟아지는 택배 박스를 들었다 내렸다 하느라 얼얼하게 무뎌진 두 손으로 104,880원의 수당이 찍힌 입금확인증을 받았다. 수천 개의 택배 박스와 텃세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말 그대로 피땀 섞인 결과물이었다. 뿌듯함과 허탈함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내가 알던 10만 원의 가치와의 괴리가 크게 느껴졌다. 뉴욕에 있을 때는 친구랑 밥 한 끼 먹으면 금세 사라지는 금액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피곤한 눈으로 그 입금증을 멍하니 바라봤다.


쿠팡 근로계약서 일부발췌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됐을까,’ ‘이러려고 유학을 간 게 아닌데,’ ‘이러려고 서울대 대학원을 간 게 아닌데,’ ‘주변에선 날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한심하다,’ 등 타인의 온갖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한참 머물렀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지하 수십수백 미터까지 하락해 가는 순간, 희미한 빛을 품은 생각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렇지만 오늘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그저 불안해만 하며 나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옭매고 있었겠지,’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몸을 움직이면서 시간과 땀방울을 쏟은 만큼 벌게 된 이 일에 감사한걸.’


내 과거의 ‘뽕’에 취해 이상한 기준을 세워 감히 직업을 정의 내리고 있던 오만한 나를 마주한 순간, 그때 알았다:

‘아, 직업의 귀천은 내가 만든 거였구나,’

‘그래서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그렇게나 힘이 든 거구나.’ 


족쇄를 잘 써먹는 것도 나의 역량이지. (2018.02.26)

그동안 쏟아부은 돈과 시간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바랐고 그 대가란 [뉴욕 유학생], [서울대 MBA 졸업생],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내 미래를 평생 보장할 것만 같은 거창한 타이틀 같은 거였다.


나는 과거의 타이틀로 나의 현재를 재단하고 있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던 게 아니라 그 타이틀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갇혀 아예 다른 세상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졸업장들을 족쇄로 만들어버린 건 바로 나였다.


나의 전부를 정의 내려줄 것만 같은 타이틀은 과거 지나온 흔적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현재 내가 가진 역량과 기술들에 더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가는 매 길목마다 드리우던 뿌연 안개가 활짝 걷히기 시작했다. 셔틀버스 창밖에서 내리쬐는 바알간 일몰도 나의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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