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고요'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찾고 있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입력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듣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수영을 마치고,
유난히 사람이 없던 온탕에 몸을 담갔다.
물은 따뜻했고,
공간은 조용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느낀 충만한 상태가 좋았다.
감사할 일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무언가를 더 가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자리로
되돌아온다는 걸 알았으니까.
(참고 글: <그놈의 '감사의 힘'>)
따뜻한 물 속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풍요한 상태에
잠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아, 이 상태가 얼마나 귀한가.
그 순간,
아주 미세하게 익숙한 통제 하나가 꿈틀댔다.
놓치고 싶지 않다.
나의 욕심 하나가 개입되는 순간,
나의 평온의 상태는 금세 깨졌고
나는 다시
무언가를 더 가져야 하는 사람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아하,
어떤 생각이 스며드느냐에 따라서
나의 상태는
이렇게나 쉽게 바뀌는구나.
내 마음이라는 그릇에
어떤 생각을 담느냐가
이토록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생각들을 담아야 하는 걸까?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좋은 생각'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어떻게 알 수 있는걸까?
그러자 잠시 후,
마치 힌트처럼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내면의 고요.
나는 곧바로 탕에서 빠져나와
옆에 있는 사우나로 자리를 옮겼다.
생각과 질문은 잠시 내려두고,
그 힌트를 그저 따라야만 할 것 같았다.
뜨거운 증기가 올라오는 가운데
자리를 잡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생각이 오고 가는 것을
굳이 밀어내지 않고,
'어떤 생각을 해야겠다'는
의지나 의도도 내려놓았다.
다만 마음의 파장이 잦아들 때까지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동안의 정적 끝에
몸이 조금씩 덥혀질 즈음,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린 사람처럼
나는 하!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 결국 정답은 내 안에 있었어.
나는 나의 삶 대부분을
늘 정답을 찾아 헤매며
지식이든, 경험이든,
누군가의 의견이든
외부에서만 찾으려 애써왔다.
외부의 데이터를 어떤 필터링도 없이
내 머릿속에, 내 마음속에
꾸역꾸역 인풋(input)만 했다고나 할까.
마치 방 한 칸에
이미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데도
부족하다 느끼며
계속해서 쇼핑을 하고,
또다시 그방으로
물건을 들여놓는 것처럼.
내면의 고요가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가진 무한한 지성을
정작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고,
내 방에 어떤 보석이 숨겨져 있는지
이제는 시선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려야 할 때가 왔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숨겨진 보석은
고요한 상태에서야
비로소 빛을 낸다고.
그래,
내가 찾고 있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입력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듣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뭔가 든든했다.
내 안에 자리잡은
'거대한 인사이트의 장'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 혼란이나 불안이 찾아오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내면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면 될 일이다.
내면이 비추는 빛을 느끼고,
내면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을
준비만 고요히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