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만들 줄 알았던 감사가, 성공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감사는, 나의 삶의 온도를 좌우하는 불씨이다.
(이전 이야기)
나는 내 ‘상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주 새삼스럽게 깨닫기 시작했다.
기분이나 감정 그 이상의,
나의 전반적인 상태 말이다.
평온하고 고요하지만
잔잔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생명력 있는 상태.
그 상태가 유지될 때
나는 비로소 행복한 하루를 살고,
조금 더 길게 보면
행복한 삶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걸
정말이지, 아주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됐다.
사실 이 깨달음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나의 '좋은 상태'를 되돌리는 몇 가지 방법을
몸으로 익혀왔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곁에 두었던 방법은 이것이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읽었던
수백 권의 자기계발서에는
징글징글할 만큼 반복되는 한 문장이 있었다.
바로, ‘감사의 힘’.
성공한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감사를 이야기할까.
어린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그저 무작정 감사할 일을 찾아내고,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봤다.
(궁금하면 몸으로 부딪히는 타입이다.)
한동안 감사일기의 열풍이 불 때도
이미 감사를 훈련 중이었던 나는
그 흐름이 꽤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거의 20년 가까이
감사를 체화해 온 지금,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나는 과연 '성공'했을까?
※아래 목록은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성공'이라는 정의를 붙들고 살아왔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기 위해 적는다.
10년 가까이 미국 유학생활을 했다.
뉴욕에 살고 싶어 뉴욕으로 편입했다.
서울대학교 석사 타이틀을 얻었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4개월을 살았다.
브랜드 컨설턴트로 다양한 대기업과 일했다.
대학생들에게 디지털 마케팅을 가르친다.
명상지도강사이자 심사위원으로 활동한다.
네이버에 '연극배우'로 등록돼 있다.
유튜브 숏츠로 매달 소소한 수입을 만든다.
자, 어떤가.
나는 성공한 삶인가?
"저 모든 것이 '감사의 힘' 덕분이었답니다. -끝-"
이렇게 마무리 지을 수도 있겠다.
거짓말은 아니니까.
감사의 훈련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니까.
하지만 이른바 '성취 리스트'에 가까운
이 성공 목록을 보자면
나는 묘하게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마냥 뿌듯해하기에는
저 리스트 사이사이에
욕심, 집착, 긴장, 부담, 오만 등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대부분은
과거형의 나일뿐,
현재의 나는 여전히
일거리를 찾아 움직이는 N잡러다.
이 리스트는
누군가에겐 대단해 보이고,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성공'이라는 말은 이렇게 쉽게
분별과 차이, 위계를 만들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내가 경험한 감사의 힘이 남기는 감각은
이런 찝찝함일 리가 없다.
오히려 개운하다 못해
평온해져야 맞다.
물론 저 일련의 과정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기에,
저 불편한 감정들조차
감사의 힘으로 포용 중이다.
*나의 '일련의 과정들':
다시 돌아와서,
지금 내가 정의하는
'감사의 힘'이 선사한
나만의 <성공 리스트>는 이렇다:
나의 하루는 미소로 시작한다.
나 자신이 참 사랑스럽다.
평생 함께할 사람과 매 순간 사랑과 수다가 넘친다.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눈에 띄게 줄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의 대화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다.
나에서 가족, 친구, 지인, 모든 존재로 이어지는 연결감을 느끼며, 모두의 안녕을 바란다.
바랄 것 하나 없는 충만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어떤가.
누가 봐도 나, 성공한 삶 아닌가.
이렇게 자부할 수 있는 건
이 리스트를 적는 동안
나의 ‘상태’ 자체가
앞서 보았던 성공 리스트를 볼 때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상태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은
여전히 찾아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한다.
"너네, 내가 안전하길 바라는구나?"
그리고 마음속으로
빅허그(big hug)를 때려(?) 주면
그 감정들 역시 내게
폭 안기기 마련이다.
감사는,
더 큰 성취로 이끌기 위한
기분 관리 기술이 아니다.
성공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정신 승리나 자기 위로도 아니다.
감사는,
이미 지금 이 순간
내가 풍요와 사랑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상기시켜 주는
가장 효율적인 리마인더(reminder)이며,
나의 삶의 온도를 좌우하는
소중한 불씨이다.
수시로 장작을 패서 나르든,
손으로 부채질을 하든,
기름을 부어주든,
그 불씨를 돌보지 않으면
삶은 금세 차갑게 식어버린다.
불씨를 지켜낼 때
따뜻한 상태로
일상을,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 포근함 속에서
여유가 생기고,
도전할 힘이 생기고,
다정함이 자란다.
지난 영광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그저 감사하면서 사는 삶.
나에게는
이미 그것이 성공이다.
2년 전의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더랬다(<아니 뭘 자꾸 성공하래(2023)>):
'나의 여정의 끝이 과연 ‘성공’이 맞는가.' '‘성공’의 정의는 무엇인가.' '내가 가는 길이 ‘성공’이 아니라는 법은 없는가.' '나는 왜 이렇게 '성공'에 집착하는가.' '나는 대체 무엇이 두려운가.'
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찾고 있던
'성공'의 정의를.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