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은 참고하되, 장면은 내가 선택하기로
결국 나는 미래를 예언받고 싶은 게 아니라,
다음 장면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로 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가까워지는 이맘때면
자연스럽게 신년 운세, 사주, 타로 이야기가 많아진다.
한 해를 다시 맞이하면서
마음가짐을 정비해보고 싶은 시기이기도 해서,
한동안 들어가지 않던
사주 앱을 괜히 한 번 켜보게 된다.
“올해는 조심해야 할 시기다.”
“상반기는 버티는 흐름이다.”
“9월에는 관계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듣기 좋은 말보다
이상하게도
듣기 좋지 않은 해석들이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말들을
그저 흘려듣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볼 땐 푹 빠져서 보다가도,
다 믿지는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는,
어딘가 애매한 태도로
매년 운세를 봐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제는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었다.
나의 내년 운세를 듣는 순간,
아직 오지도 않은 장면을
이미 마음속에서 먼저 살아버리고 있다는 게
문득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이미 조심하고 있고,
이미 대비하고 있고,
이미 긴장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알게 됐다.
신년 사주나 운세라는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무의식에 먼저 심어지는
방향성의 언어일 수도 있겠구나.
“안 좋을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흐름이 막힌다.”
이 말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나의 무의식은 그걸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장면을
조용히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방향이 정말
그쪽으로 흘러가 버리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고
사주나 운세를
아예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삶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무시하고 싶지 않고,
내가 어떤 리듬 위에 서 있는지
참고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실 운세를 보는 게
오히려 좋을지도?
듣기 좋은 운세는
그런가보다 하고 감사하면 되고,
듣기 좋지 않은 운세는
오히려 내편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 결과 그대로
내 삶의 시나리오로
가져오는 것이 아닌,
흐름은 참고하되,
장면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좋지 않은 운의 흐름은 파악하되,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여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올해는 이럴 수 있다"는 말이
"올해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로
굳어지지 않도록.
아직 열려 있는 가능성 앞에서
미리 방향을 닫아버리지 않도록.
결국 나는
미래를 예언받고 싶은 게 아니라,
다음 장면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로
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신년 사주부터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한 문장을 덧붙이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선택지도
여전히 내 앞에 있다.”
올해의 흐름을 듣되,
그 흐름에
온전히 나를 맡기지는 않기로.
방향은 참고하고,
결정은 고요한 상태에서 하기로.
이 정도의 거리감이면,
나는 아마
사주를 봐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