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
자존감은 나 자신을
어떤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어젯밤, 여느 때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에 폭 안겨
잠을 청하고 있었다.
따뜻하게 자리를 고쳐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차가운 내 손과 발을
꼭 감싸 안아주는 그의 손길 속에서
이상할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분 좋은 안정감과 함께
내 안이 충만함으로
조용히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포근한 그 상태 속에서
문득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이 충만함은,
단순히 그의 사랑표현에서 온 걸까?
그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줬기 때문일까?
이런 게 소위 말하는 '자존감이 올라가는 느낌'과 같은 걸까?
조금 더 생각이 이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그렇다면,
만약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이 충만함은 사라지는 걸까?
곧바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나?
자존감이 내려갈 수도 있는 건가?
잠깐,
자존감이라는 게
외부요소에서 결정되는 것이었나?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칭찬하거나,
부러워할 때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처럼 느낀다.
누군가 나를 좋게 봐주고,
인정해 주고,
“너 괜찮다”라고 말해주면
괜히 어깨가 펴진다.
반대로
비난을 받거나,
무시당하거나,
가볍게 취급받는 순간
자존감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눈치를 보고,
평가에 예민해진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건 자존감이 아니라
외부 평가에 반응하는
마음의 상태에 가깝다.
자존감은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오르내리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칭찬을 받아도
그건 잠깐 스쳐가는 기분일 뿐이고,
내가 나를 인정하는 상태에서는
누군가의 비난이 쏟아져도
그 말이
나의 중심까지는 닿지 않는다.
어젯밤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게 됐다.
그때 나를 충만하게 만든 건
그의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이미 나 자신을 인정하고 있던
나의 상태였을까.
잠시 그 질문 앞에 머물다 보니
조용히 알게 된 게 있었다.
그 순간의 충만함은
그가 나를 인정해 줬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이런 사랑을 받아도 충분한 사람이라고
이미 허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이었다는 걸.
그렇기에
타인의 표현과
나의 자존감은
서로를 대신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상대는
나의 가치를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상태를
잠시 비춰주는 역할일 뿐이니까.
자존감은
타인의 인정이 쌓여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타인의 인정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표현'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사랑, 존중, 칭찬 같은 표현은
상대의 자존감을 북돋아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표현을 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드러내는 언어이고,
표현을 받는 사람에게는
이미 존재하는 자신의 상태를
비춰보게 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표현한다는 건
누군가를 증명하거나 붙잡기 위한 일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존재들 사이에서
상태를 나누는 일에 가깝다.
각자가 늘 안정된 상태에 있지는 않더라도,
따뜻한 언어와 표현을 통해
서로의 상태를
다시 한번
부드럽게 순환시켜 줄 수 있다.
(마치 보일러처럼..?)
가끔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나는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지금 나는
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타인의 시선 위에 나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는 상태에 잘 머물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마 자존감은
높여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되돌아와야 할 자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