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바닥을 칠 때면, 나는 손바닥을 뒤집지.

기분은 대부분 무단침입이다

by 노금비
기분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대상이다.


가끔 기분이
저어기 바닥, 아니 더 밑으로
숙— 하고 빠질 때가 있지 않은가.


과거의 후회와 미련 때문일 때도 있고,
현재의 상황이 엿같아서일 때도 있고,
미래의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손바닥을 뒤집는다.


손바닥을 뒤집자마자
나의 기분은 금세 나아진다.


뒤집은 손바닥을 잘 유지하면
나아짐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다니.

거두절미하고,
그 방법을 바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걱정할 만큼 거창한 방법은 아니다.

그저, 손바닥을 뒤집듯

방향만 바꾸는 일이다.




1단계. 알아차리기 — 지금 우리 집에 누가 와 있는지 보기


기분이 늘
"똑똑똑"
하고 예의 바르게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기분이라는 녀석은
대부분 무단침입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우리 집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다.


이 단계에서 할 일은 단 하나다.

지금 누가 와 있는지만 우선 파악하기.


그러려면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내 집을 한 바퀴 둘러보거나,


그래도 숨어있다면

집 전체를 비추는 CCTV를
확인해 보면 된다.


"잉?
불안이가 언제 들어왔지?"


이렇게
내게 찾아온 기분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1단계는 이미 성공이다.




2단계. 선택하기 — 함께 있을지, 보내줄지 결정하기


이미 1단계를 통과했기 때문에
2단계는 생각보다 쉽다.


우리 집을 점령한 불안이를 보며
어떤 마음이 먼저 드는가?


"어휴, 불안이 저 녀석.
저번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또 왔네!"


그렇다면
내쫓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


반대로,


"그래…

뭔가 익숙하고 편하네..
나 그냥 잠시 바닥에

불안이 안고 누울래.."


그렇다면
함께 있는 쪽을 선택해도 된다.


중요한 건,
누굴 내보내고 누굴 들이느냐에
정답은 없다는 것.


그저 내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부정적인 기분은
무조건 없애야 하는 거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무진장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애쓰면 애쓸수록
기분은 더 엿같아지는
부작용을 겪게 되더라.


그 이후로
나는 애씀을 내려놓고
선택으로 방향을 바꿨다.




3단계. 대화하고 순환시키기 — 기분의 역할을 듣고 보내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기분들에게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딱지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정이' '불안이' '걱정이' '교만이' '불평이'...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기로 했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존중하기 시작하니

이제는 우리 집에 찾아오는

기분이들을 반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모든 기분에는
다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시간은

'다정이' '행복이' '충만이' '사랑이' 들을

불러 파티를 즐긴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웃을 일도 많고 감사할 일이 넘친다.


그들 덕분에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

그리고 내 못났던 과거까지도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불안이'가 불쑥 찾아와도

함께 시간을 보낼까?


물론이다. 다만,

'불안이' '교만이' '불평이' '걱정이'가

찾아올 때면 파티분위기보다는

고즈넉한 곳에 자리 잡아

주로 일대일로 깊은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에게도 다

나에게 온 이유가 있더라.


나 상처 덜 받으라고,

나 자신감 얻으라고,

나 성장하라고,

나 안전하라고.


대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따뜻한 포옹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한다.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서면
어느새 집 안에 '평온이'가 와 있다.


'평온이'가 올 때가

집이 가장 고요할 때다.


별말 없이

그저 미소 지은 채로

내 곁을 지켜주는데,

그게 참 고맙다.




기분을 바꾼다는 건
사실
기분을 없애거나

통제하는 일이 아니다.


단지

기분을 알아차리고,
선택하고,
제 역할을 다하게 한 뒤
다시 순환시키는 일이다.


손바닥을 뒤집듯,
나의 태도의 방향성만

바꾸면 된다.


혹시 오늘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다면,

한번 손바닥을
살짝 뒤집어보길.


생각보다
아주 쉽게
다시 숨 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